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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봉쥬-들뢰즈] 마지막 시간(18. 3. 31(土) 11:30) 공지2018-03-30 16: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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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간에 저희는 강도들의 감성론과 이념들의 변증론을 살펴보면서

-개체적인 것, 그러니까 개체화에 대해서도 살펴봤습니다.

들뢰즈가 말하는 개체화의 과정 또한 잠재적인 이념과 마찬가지로

지금의 경험적 차원에서의 우리가 직접적으로 알 수 없지만 판명하게 있는 것이기에

이해하는데 참으로 애먹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시간 공지 합니다.

저희가 차이와 반복읽어올 범위는 <결론 차이와 반복> 3~5(582~633)입니다.

발제는 형희와 정민셈이 맡으셨지요.

<서론 반복과 차이>도 참조하면서 읽어 오셔도 괜찮습니다.

이미 차이와 반복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 결론 또한 니체의 영원회귀와 '존재의 일의성'이 중심입니다.

 

덧붙이자면 저희는 17번에 걸쳐서 [봉쥬-들뢰즈 시즌1]을 마무리 합니다.

시작은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에 수록된 논문들이었고,

끝맺음은 차이와 반복이었습니다.

이것들을 눈으로 다 읽었다고 하지만

들뢰즈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읽고서 모르는 것아예 읽지도 않고 모르는 것

다른 차원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서문에 나는 나의 개념들을 만들고 주조하고 부순다.”(21) 라고 밝혔듯이

우리가 차이와 반복을 읽기가 어려웠던 것은

이러한 들뢰즈 본인의 성향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다시 차이와 반복처음으로 돌아가 <서문>을 다시 읽는데

읽어내는 느낌이 확연하게 달랐습니다.

아마도 개인적인 예감이지만

들뢰즈가 철학사 연구와 해설에 대한 마무리를 짓는 날까지

뭐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면, 펠릭스 가타리를 만나기 전까지의

그의 다른 저서들을 읽으면서도

차이와 반복을 쭉 참조할거 같네요.

 

아무튼 저는 이번 차이와 반복을 읽은 것을

다음과 같이 차이와 반복, 사유, 경험론 세 가지로 정리 할 수 있겠네요.

   

1. 차이와 반복은 두 가지의 탐구 방향을 갖는다. 하나는 부정 없는 차이[즉자적 차이]이다. 우리는 차이 그 자체를 사유하고자 해야 하며, 차이나는 것들의 상호성을 사유하고자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차이를 같은 것으로 환원하거나, 부정적인 것들로 만들어버리는 재현의 형식으로부터 우리의 사유는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반복의 개념이다. 같음의 반복 속에 숨어 있는 숨어있는 반복 즉 차이짓는 것들이 스스로 위장하고 자리를 바꾸는 그 심층적인 반복에 우리는 발견해야 한다. 요컨대 차이가 탈중심화와 발산의 운동이라면, 반복은 전치와 위장의 운동이다. 이러한 두 운동은 서로 갈마든다

.

2. 모든 사유는 침략이다. 때문에 순수한 차이들을 우리가 불러들일 때에는 그것을 이른바 아름다운 영혼의 표상으로 전락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대립하지 않는다…….”(19) 라는 형식으로서 차이들을 연합하고 화해할 수 있으리라고 우리는 믿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운 영혼을 파괴하는 힘을 규정하는 문제틀과 미분적 차이 속에서 사유는 침략한다. 허상은 모상이 아다. 오히려 원형들마저 전복하는 가운데 모든 모상들을 전복한다. 그러한 전복의 과정 속에서 사유는 발생한다.


3. 들뢰즈의 경험론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광적인 개념 창조를 시도한다. 그래서 그의 경험론은 외면적인 경험에 대한 호소가 아니다. 또한 그것은 개념들에 대한 반동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경험론은 개념의 발생과 그 기반을 다룬다는 점에서 신비주의이자 수학주의다. 개념을 어떤 마주침의 대상으로, 항상 새롭고 항상 다르게 분배되는 지금들여기들, 개념들을 자유롭고 야생적인 사물들 자체로 경험주의자 들뢰즈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나의 개념들을 만들고 주조하고 부순다.”

차이와 반복(머리말, 17~23)


    

저희는 2주간 방학하고

달라진 책들과 시간으로

또 만나도록 해요.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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