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아방가르드 세미나] 10월 9일 세미나 공지2022-10-06 16:03:59
작성자

[아방가르드 세미나] 10월 9일 세미나 공지

 

 

 

지난 세미나에서는 『혁명의 넝마주이』 5장과 슈타이얼의 「자유낙하」, 「당신이나 나 같은 사물」을 함께 읽었습니다.

5장에서 저자는 히토 슈타이얼이 그의 다큐멘터리 〈자유낙하〉(2010)에서 사물을 다루는 방식을 트레티야코프 - 아르바토프로 이어지는 사물론 계보에 위치시킵니다. 실제로 〈자유낙하〉에는 트레티야코프의 글이 인용되기도 하는데요, 트레티야코프는 『사물의 전기』에서 “사람들의 층을 관통해가는 사물”을 사물의 전기에 따른 대안적 서사로 제안합니다. 


아르바토프는 소유관계에서 벗어나 함께 노동하는 동료로서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주장하는데요. 저자는 이를 오늘날 객체지향관점 이론들의 선취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본문 251] 이에 세미나원들은 (사물을 포함한) 모두가 행위자라면, 객체-되기가 아닌 모두의 주체-되기에 더 가까운 건 아닐까?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했는데요, 주체와 객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부터 이미 선형적 위계를 전제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인공지능 언어 모델 GPT-3가 떠올랐는데요. 도구적 착취와 동료로서 집단 노동이 구별되는 기준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아르바토프에 따르면 후자는 완성된 사회주의에서 경험할 수 있겠죠.) 


아르바토프의 사물이 집단화를 위한, 집단의 일부로 함께하는 사물이었다면, 슈타이얼의 사물이 인간과 공유하는 지점은 “권력과 폭력을 응축한 멍”입니다. 그러나 슈타이얼은 이 부정성을 외려 자유의 기회로 삼는데요. 예컨대 멍든 이미지는 저작권으로부터 자유로운 몸으로 순환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메신저나 sns에서 이미지를 캡쳐하고 공유하는 당신은 정치(精緻)하게 정치(政治)하고 계신 겁니다!


mb-file.php?path=2022%2F10%2F06%2FF2079_%EC%9E%90%EB%B3%B8%EC%97%90%EB%8C%80%ED%95%9C%EB%85%B8%ED%8A%B8.png
 

10월 9일 세미나에서는 6장과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자본에 대한 노트』(2020, 문학과지성사)를 함께 읽습니다. 

6장 발제는 준규 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세미나는 매주 일요일 오후 9:30에 약 2시간 동안 비대면 줌zoom으로 진행됩니다.

진행중인 세미나도 언제든지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비밀글로 연락처(전화번호 혹은 카톡 아이디) 남겨주세요.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