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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문학이론세미나] 9월 12일 세미나 공지2022-09-11 16:3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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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는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 1부의 1-3장을 읽었습니다. 

1장 완결된 문화들에서는 총체성이 가능했던 시대로서의 '그리스 문화'를 살펴보았고, 

루카치가 과연 흔히 비판 받듯 '그리스 문화'를 황금시대로 설정하기만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특히 다음 구절 때문입니다. 

"우리의 세계는 무한히 커졌으며, 어느 모로 보든 그리스 세계보다 선물과 위험이 더 풍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풍부함은 그리스인들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긍정적 의미, 곧 총체성을 파기한다."(34) 

이 말을 뒤집어본다면 그리스 세계는 우리의 세계보다 무척이나 작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형식들에 의해 포괄되기 전에 이미 동질적"일 수 있었고, 따라서 "존재의 총체성"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2장에서는 "작은 규모의 서사적 형식들"(54)의 '서정성'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여기서 '서정성'은 어떤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인가가 관건이었습니다.

세계에 대해 "겸손과 응시"로 대하는 "대 서사문학"과 달리 작은 서사문학의 형식에서는 "주관의 의지와 앎으로 이루어진" "선별과 구획"(55)이 뚜렷하므로 그 주관성을 루카치는 '서정성'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아닐까라는 방식으로 논의가 우선은 일단락되었습니다. 


3장에서는 역자께서 임의로 붙인 소제목 "주어진 총체성과 부과된 총체성"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주어진"과 "부과된"은 무슨 차이일까...그래서 "자체적으로 완결된 삶의 총체성을 형상화"하는 서사시에서는 총체성이 "주어져" 있고, "숨겨진 삶의 총체성을 형상화를 통해 드러내고 구축하려고 추구하"(68)는 소설에서는 총체성이 "추구된"('부과된'이 아니라 말입니다)다고 보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 밖에도 삶과 거리를 두기 위해 일부러 운문을 사용하는 비극의 장르적 특성도 흥미로웠습니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인 9월 12일 월요일 오후 7시 30분에는 <소설의 이론>의 다음 장을 읽습니다. 


1부 4, 5장(79-108): 발제 - 김재순 님 

2부 1장(111-131): 발제 - 이준엽 님


Paul Klee, Kanon der farbigen Totalität, 1931. Drawing from “Bildnerische Gestaltungslehre” © Zentrum Paul Klee, B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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