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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프로이트 전집읽기]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 31. 심리적 인격의 해부2017-03-26 17: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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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프로이트전집읽기_발제문_20170326_임당.hwp (27.5KB)

프로이트전집읽기_발제문_20170326_임당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

서른한 번째 강의. 심리적 인격의 해부

 

 

프로이트는 심리적 인격의 구조를 밝히기 위해 자아를 그 중심에 두고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자아는 자기스스로를 대상으로 만들 수 있고, 다른 대상들처럼 자신을 다룰 수 있고, 자신을 관찰하고, 비판하고, 그 외에 자신을 상대로 무슨 일이든 감행”(81)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자신의 여러 가지 기능으로 분화되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아의 이러한 분열적 특성은 정신이상에서 잘 볼 수 있다. 정신이상자의 망상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의심하고 있으며, 자기가 어떤 금지된 행동을 하기를 기다리면서 그 순간에 자기를 붙잡으려 하고, 그로 인해 자기가 처벌을 받게 되리라는 망상”(82)이 있다. 이들의 망상 속에 감시자로 등장하는 심급은 정신 이상이 아닌 사람들의 안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자아에서 탄생해 외부 현실로 전이된 양심 혹은 초자아라고 불릴만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초자아라는 존재는 “특별한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그 자신만의 목적을 추구하고, 자아와 독립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84)는다. 초자아는 자아에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드리우는 역할을 하는데, 결국 도덕적 죄의식이라는 것은 자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발생하는 긴장의 표현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초자아는 성적인 쾌락을 쫓는 비도덕적인 어린아이가 부모의 처벌 위협을 내면화 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외부적인 억제가 내면화되어서 부모의 역할 대신 초자아가 등장하고, 그것은 부모들이 그전에 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자아를 관찰하고, 조절하고 위협”(86)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제지가 초자아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의 근본 토대에는 동일시가 있다. 아이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시기에 형성된 부모에 대한 대상 리비도 집중을 포기하고, 대상 상실에 대한 보상으로 부모와의 동일시를 강화함으로써 초자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초자아는 부모 그 자체를 내면화한다기보다는 부모의 초자아를 내면화하기 마련이다. 초자아는 세대를 넘어 내려오는 가치의 계승자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초자아의 특성은 집단 심리학을 해명하는 데 유용하다.

아울러 초자아는 자아의 이상적인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아 이상을 운반하는 기능 또한 갖는데, 이는 자아 이상의 근원이 부모 표상의 침전물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열등감 또한 자아와 초자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아의 또 다른 반대편에는 이드라는 것이 존재한다. 프로이트는 여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우선 분석 중 나타나는 저항으로부터 출발하고자 한다. 정신분석은 환자가 자신의 무의식을 의식의 수면위로 올리는 와중에 만나는 저항의 지각에 기초하고 있다. 억압된 주제에 다가가려 할수록 그 저항 또한 거세어지는 것을 환자는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억압이 무의식적인 것처럼 저항 역시 무의식적”(94)이기 때문에, 저항이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억압하는 것은 초자아에 의한 것이지만 그 역할은 자아에게로 돌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초자아와 의식, 억압된 것과 무의식이라는 조합은 가능하지 않는다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자아와 초자아의 거의 모든 부분이 무의식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고 보통 무의식 단계”(96)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곧 억압된 것을 의식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무의식적인 것일까? “그것이 그 순간 활동하고 있음이 틀림없는데도 우리가 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무의식적>이라고 지칭할 수 있다.”(97) 무의식은 또 두 갈래로 나뉠 수 있는데, “그저 잠재되어 있을 뿐, 쉽게 의식될 수 있는”(98)무의식인 <전의식>과 “의식에 떠오르기 힘든”(98) <무의식>이 바로 그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무의식을 정신적 지역으로 분류해왔던 이전의 체계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이드Es 라는 것을 등장시키면서, 초자아, 자아 그리고 이드로 나뉘는 인간의 정신체계를 확립하고자 한다. 이드는 “우리 성품 속에 있는, 도달할 수 없는 어두운 부분”이다. “이드는 충동들로부터 나온 에너지”로 채워져 있으며, “어떤 조직 체계도 없고 단일화된 의지”도 없다. “오로지 쾌락 원리에 따른 본능적 욕구 충족을 위한 충동”만이 존재하며, 논리적 법칙, 모순의 법칙, 시간성, 도덕성 등이 전부 부재하는 카오스적 체계라고 볼 수 있다.(101-102)

자아는 이드로부터 발생하는데, “자아가 외부 세계와의 가까움과 그 영향 때문에 변형되고, 자극을 받아들이고, 또 그 자극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위해 설치된 이드의 한 부분”(103)이기 때문이다. 자아는 충동의 만족만 좇는 이드를 보호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다. 자아는 “이드를 대신하여 충동적 힘의 발동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통제하면서, 욕구와 행위 사이”(104)에서 작용한다. 이드를 지배하는 쾌락 원리를 제어하여, 외부 세계의 현실 원리로 대체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자아인 것이다. 결국 자아의 기능은 정신적 과정을 종합하고 단위화 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이러한 활동을 수행하는 자아의 에너지는 이드에서 기원한다는 것이다. 자아는 이드의 한 부분으로써, 이드를 외부 세계에 맞게 길들이기도 하지만, 이드가 원하는 충동의 방향으로의 전개를 수행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자아는 총 세 주인을 섬긴다고 할 수 있다. 외부 세계, 초자아, 그리고 이드. 자아는 이 세 개의 서로 다른 방향의 힘 혹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위험에 대해 압박을 느끼게 되면 불안과 공포를 발산하게 되는 것이다.(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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