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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지젝세미나_찰스테일러_헤겔 3장 자기정립하는 정신(3-6절)2017-05-19 18: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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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세미나 발제문_20170519_임당

찰스테일러, <헤겔>
3장. 자기 정립하는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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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이 주장하는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라는 공식을 정당화 하기 위해 우리는 헤겔의 정신 개념을 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헤겔의 표현주의적 주체 이론에는 두 모델이 있다. 삶의 양식을 예로 들어보자. 생명 유지에 관한 필연적인 기능들인 영양섭취, 재생산의 기능이 하나가 있다. 다른하나는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본질, 우리의 동일성을 드러내고 규정하는 문화적 표현, 이를테면 누구누구의 할머니,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한 커플 등이 그것이다. 전자는 생명체이기에 존재하는 삶-형식이고, 후자는 매체를 즉 언어를 빌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사유의 모델인 것이다. 
인간에게서 이 두 차원은 분리되지만, 정신에게서는 일치한다. 우주는 신의 '삶-기능'의 총체성의 구현, 즉 신의 실존 조건이며, 그것은 철저히 신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점이 유한한 정신인 인간과 무한한 정신인 신을 구분하는 지점이다. 여기서 우주는 필연적 구조를 가진다.
우주는 가장 낮은 무생물의 형식으로부터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를 관통하여 인간에 이르는 존재들의 위계를 포함한다. 정신은 우주의 특정한 덩어리들, 즉 유한한 매개체들을 통해 스스로를 체화한다. 따라서 우주적 정신이 완전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유한한 존재들을 통할 수밖에 없다. 우주는 곧 정신의 실존 조건들의 현실화이며, 동시에 정신의 표현, 즉 정신의 본질에 대한 진술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자기 인식은 우주가 정신의 표현이라는 인식에 도달함으로써 가능해진다. 이는 우리 자신에 의해서만 인지될 수 있다. 우리 자신은 유한한 존재이지만, 정신의 담지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한 자기 인식에 이른 정신은 완벽한 자기 표현, 즉 자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은 세계를 정립하는데, 합리적 필연성에 따라 자신의 본질적 구현체로 정립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정신의 자유이다. 인간은 특정한 온도나 성적 열망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한에서의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정신에게는 이러한 소여가 없다. 정신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출발점은 주체성에 대한 요구일 뿐이다. 이러한 주체성의 본질은 합리성으로,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 이런 필연성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우연은 꼭 필요한데, 모든 단계가 독립적으로 실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연성 또한 절대적 주체성의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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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합리적 필연성의 본성은 무엇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정신의 실존을 출발점에 둘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선험적인 것이므로 경험의 구조는 붕괴되고 추론에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유한한 사물의 실존을 출발점에 두면 어떨까? 하지만 세계의 상은 합리적 필연성의 완전무결한 상을 보여줄 수는 없다. 여기서 우리는 정신이 스스로에 대해 가지는 상에 절대적 출발점은 없고, 오히려 순환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변증법적 논증 속에서 이를 볼 때, 우리는 정신에 도달할 수 있다. 주체는 자기 자신과의 대립 혹은 모순 속에 놓여 있고, 세계를 합리적 필연성에 따라 정립해 나감으로써 우주적 정신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다. (상승하는 운동) 그러나 또한 자기 정립하는 정신은 인식에 다다르기 위해 유한한 사물들의 구조를 정립해야만 한다.(하강 운동)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서로를 출발점으로 확립하는 두 계열의 비순환적 논증이다. 상승운동에 의한 존재론적 필연성의 추론과 하강 운동에서 볼 수 있는 세계 속에서 구체화되는 우주적 정신의 전체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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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정립하는 신이라는 헤겔의 이런 생각은 어떤 종류의 사유인가? 헤겔은 유신론과 자연주의의 모습을 결합한데서 그것을 찾는다. "유신론자처럼 그는 세계를 설계된 것으로, 어떤 전망들을, 정신을 위한 체현의 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해 실존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자연주의자처럼 그는 이 세계가 외부의 존재-세계에 앞서, 세계와 독립해서 실존하는-인 신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실존 조건을 영원히 만들어 가는 신이라는 생각을 다듬어 간다."(191) 
헤겔의 관점에서 근본적인 것은 신이나 세계가 아닌, "정신이 존재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정신은 존재할 뿐 아니라 존재해야 하며, 정신의 실존 조건들은 이 필연성에 의해 만들어"(192)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으로 인해 헤겔의 입장은 범신론과도 구별된다. 합리적 필연성은 유한한 사물의 집합체인 세계가 없이는 실존할 수 없지만, 자신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구조를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이 세계 그 자체보다는 훌륭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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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성과 차이의 동일성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인간 주체는 자신의 실존 조건과 본질적 목적 사이의 내적 갈등에 놓여 있다. 절대적 주체 또한 동일한 갈등에 놓인다. 왜냐하면 절대적 주체는 유한한 실재들 속에서 체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절대적 주체의 삶은 무한하고 한정이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갈등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 정신에게 가장 큰 대립의 지점은 정신이 자신과 상충하는 세계에 체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 사람들은 원시적 통일의 지점에 놓인다.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대립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려 할 때 대립의 지점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을 넘어서 나아갈 때, 화해가 이루어 진다. 인간 더 큰 합리적 필연성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동일성과 대립의 변증법은 존재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절대적 주체의 삶은 본질적으로 과정이자 운동이다. 이 과정과 운동 속에서 절대적 주체는 자신의 실존 조건을 정립하고, 자기 인식을 위해 대립을 극복한다. 
어떤 것은 다른 것과 필연적인 관계에 놓인다. 모든 것들은 매개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것들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에 내적 모순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모순은 곧 모든 삶과 운동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정신은 자신과의, 자신의 필연적 구현체와의 투쟁 속에 있으며, 이러한 투쟁으로부터만 현실화"(200)된다. 
결국, 변증법의 동력은 모순이다. 존재론적 갈등을 자신의 부정과 결합시키는 강한 의미에서의 모순은 소멸하지만, 이 부정 자체는 전체에 있어 본질적이기에 모순은 사물을 변화시키는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또한 모순을 체현하면서도, 동일성과 모순을 화해시키는 속에서 자신을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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