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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교연 2020 겨울강좌] '폭력의 해체' 강사 인터뷰 part. 22019-12-30 15: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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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교연 2020 겨울강좌] '폭력의 해체' 강사 인터뷰 part. 2




Q. 데리다는 법을 어떻게 다루는가요?

 

A. 데리다가 본격적인 법철학 저서를 집필한 것은 아니지만 법에 대한 사유를 이러저러한 텍스트들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법의 본질에 가장 깊게 들어가는 텍스트는 카프카의 단편 법 앞에서를 독해한 데리다의 법 앞에서입니다. 다만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법에 관한 논의로 바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란 어떻게 판별되는가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법을 다루고 있는 카프카의 텍스트는 왜 단지 하나의 문학으로 분류될 뿐이며, 이를 통해 법을 사유하는 것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상사적으로 칸트, 헤겔이 아니라 카프카로부터 법을 사유하려는 것이 데리다의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이야기는 법에 입장하려는 한 시골남자와 이를 막아서는 문지기에 관한 내용입니다. 워낙 짧은 단편이라 주의 깊게 읽어보지 않으면 여기에 별다른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법에 접근하려는 민중과 이를 막아서는 관료 시스템 정도가 눈에 들어오는 정도죠. 그런데 데리다는 특이하게도 이 텍스트에서 지연이라는 키워드를 읽어냅니다. 법은 접근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것이 아니라, 접근이 끊임없이 지연되는 방식으로 효과를 미친다는 것이 데리다가 카프카의 텍스트에서 포착한 법의 본질입니다.

 


Q. 지연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죠?

 

A. 강의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데리다의 핵심 개념인 차연(différance)’은 지연과 관련이 있는 단어입니다. 데리다가 만든 신조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아무튼 데리다의 테마 중에서 반복되는 것이 자기동일성으로 간주되는 것에서 차연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시간적으로 현재라고 간주되는 것, 어떻게 찰나라는 순간이 시간적 간격으로 이루어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를 테면 프로이트를 인용하면서 자극의 흔적을 보유하는 뉴런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의 어떤 뉴런은 자극-반응 도식으로 자극을 즉각적으로 수용하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정도 자극의 흔적을 보유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특정한 국면에서 흔적으로 보유된 그 자극은 다시 어떤 반응을 위한 원천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러한 뉴런의 메커니즘은 프로이트가 히스테리를 설명하는 방식에 사용되죠. 잘 알려져 있다시피 히스테리의 원인은 직접적인 현재의 자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사건에 대한 이미지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트라우마에 있죠. 특정한 사건에 대한 자극이 즉각적이지 않고, 한참 뒤의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사후효과(Nachträglichkeit)라고도 합니다. 데리다는 프로이트의 흔적을 보유하는 뉴런의 가설을 통해서 히스테리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현재는 간격을 통해서, 그리고 원칙적으로는 사후효과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으로 보았죠. 프로이트 뿐만 아니라 소쉬르, 후설 등등 다양한 사상가를 통해서 데리다는 지연이라는 테마를 뽑아냅니다.

 


Q. 그렇다면 법의 지연은 무엇인가요?

 

A. 법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현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실현이 지연되는 방식으로 효과를 미친다는 것입니다. 우선 문지기를 통해 법과 관계를 맺는 시골남자처럼 우리는 법의 무수한 대리인들을 통해서만 법과 관련 맺습니다. 우리가 법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또한 법의 권위는, 이는 데리다의 생각을 이어받은 주디스 버틀러에게서 더 자세히 설명되는데요, 오로지 자신의 권위의 토대가 무한히 소급되는 방식으로만, 즉 권위의 토대에 대한 정착이 무한히 지연되는 방식으로 권위가 설립됩니다. , 법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무한소급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강의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이러한 무한소급으로 인해 법의 기원은 법적인 것이 아니라, 법을 정초하는 어떤 강제성 혹은 폭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법은 자신의 체계 내에선 내재적으로 정당화되더라도 그 기원은 법 바깥을 요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또한 법은 주체에게 기대의 형식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지연의 효과입니다. 법의 힘은 법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작동한다는 것이죠. 법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법이 언제가 실현되기를, 또한 법을 막아서는 문지기들 때문에 접근이 불가하기에 법에는 무언가 내밀한 진실이 있을 것이기를 기대합니다. 법적 주체는 법이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법의 효력을 상상하는 방식으로 법을 물질화합니다. 역사적인 산물인 법이 마치 법적 주체에게 불변의 법칙이자 초시간적인 것처럼 효과를 미치는 방식이죠.

 


 


Q. 이런 법에 대한 사고방식이 기존의 법에 대한 이해방식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A. 제가 법학을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는 수업시간에 같이 논의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수준에서 말씀드리면, 법을 지연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법을 그 자신의 내적 체계로 정당화 혹은 형식화하려는 일부 법철학들과는 갈라질 수밖에 없고요, 또한 법을 억압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그 기원에 폭력이 있다는 것을 고발하는 태도와도 갈라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을 정당화하려는 것은 당연 아니지만, 그렇다고 법을 기만적인 것으로 폭로하려는 것이 데리다의 기획은 아니죠. 데리다는 지연 효과로 작동하는 법의 작동방식과 기원에서부터 힘이 개입하는 구성의 요인에 주목합니다.

 


Q. 그렇다면 데리다는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법을 긍정하나요?

 

A. 정확히 말하면 법이 집행될 때 언제나 자신을 재창설하는 한에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법은 보편적인데, 법이 적용되는 국면은 개별적인 사례이기 때문이죠. 보편과 개별 사이의 간격을 뛰어 넘어야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은 원칙적으로 마치 창설과도 같은 힘을 요구한다는 것이죠. 심지어 법의 보존을 위해서 법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라도 해석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죠. 따라서 정의는 이러한 해석 속에서 구현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데리다의 생각입니다.

 

이는 벤야민의 생각과 갈라지는 부분이기도 하죠. 벤야민은 법과 폭력의 관계를 주의 깊게 사유하며, 잘 알려진 대로 법 정초적 폭력법 보존적 폭력을 구분하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벤야민에게 두 경우 모두 폭력과 연계된다는 점에서 온전한 의미에서의 정의 실현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벤야민은 정당화될 수 있는 모든 폭력은 자신이 다스릴 체제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법을 만드는 법 정립적 폭력으로 간주합니다. 법 정립적 폭력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폭력이죠. 벤야민에게 정의는 이러한 수단으로서의 폭력과 달리, (다소 수수께끼 같지만) ‘발현되는 힘 그 자체인 신적 폭력에 달려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해석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여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거칠게 말해 벤야민은 법 정립적 폭력의 역사 바깥에서 새로운 우발적인 힘을 통해 진정한 정의를 사유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굉장히 논쟁적인 부분이나, 데리다는 이런 벤야민의 발현으로서의 폭력이 가스실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절멸적인 방식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고 주의를 합니다. 벤야민을 제대로 이해했는가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맥락에서 데리다가 강조하는 것은 법 바깥의 힘에 정의를 위치시키는 태도에 대한 비판입니다. 법이 곧 정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법 바깥으로 나가서 정의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데리다는 법과 폭력을 경계에 두고 정의를 사유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법의 무한한 해체 가능성 속에서 정의를 사유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요약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은 강의에서 길게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수강 신청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데리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법과 폭력이라는 테마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모두 추천 드립니다. 무엇보다 데리다를 입문하시려는 분들께도 추천드립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데리다에 입문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은데요, 하나는 구조주의와 현상학을 공부하며 철학사의 맥락에서 데리다의 철학을 접근하는 (고생스러운) 방법과 다른 하나는 특정한 테마를 해체적으로 다루는 데리다의 기획을 살펴보는 방법인데요. 입문으로서는 후자가 좀더 괜찮은 것 같습니다. , 이 강의는 데리다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후기 정치철학을 다루는 고급 강좌가 아니라, ‘법과 폭력이라는 테마를 통해서 데리다의 사상을 이해하는 입문 강좌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시면 됩니다.



  

  강사조지훈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연구실에서 데리다의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수행성의 시간적 형식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에서 시간의 문제이미지의 영도를 개념화하기롤랑 바르트의 아마추어적 실천슈레버의 사례에 대한 분열분석적 진단」 등을 썼다.

 

기간 : 2020년 1월 8일 ~ 2월 5일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

회비 : 10만원

입금계좌 3333-09-2104809 카카오뱅크(김현준)

정원 : 25

*강의 시작 후 회비 환불이 어렵습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프로그램 회비는 연구자들의 재생산과 연구실 유지에 사용됩니다. 함께 공부하는 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강좌신청은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s://forms.gle/7BZ2Lmir9qJLm8jV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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