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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교연 2020 겨울강좌] "폭력의 해체" 강사 인터뷰 part 1.2019-12-20 2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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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교연 2020 겨울강좌] '폭력의 해체' 강사 인터뷰 part 1.





 

 Q. 작년에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 대한 강독 강좌를 여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와 달리 지금 데리다 강좌를 여는 느낌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데리다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이 달라지신 것이 있는지요?

 

작년 강의 이후에 올해 12월까지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세미나를 통해서 다시 읽었습니다. 강의 준비를 할 때는 핵심을 정리하면서 읽었고, 세미나에서는 다양한 쟁점을 토론하며 읽었죠. 그러고 보니 거의 2년 가까이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중심으로 공부를 했네요.

 

처음에는 데리다의 사상적 계보를 이루고 있는 현상학과 구조주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특히 현상학은 잘 모르는 분야이기도 해서 어떻게든 데리다의 기초를 이해하기 위해서 힘들게 따라갔습니다. 그러다가 현상학의 세계가 깊고도 넓다는 것을 깨닫고 이대로 가다간 지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상학말고도 데리다가 박사논문으로 헤겔의 기호론을 쓸 것을 권유받을 정도로 독일철학에 대한 지식이 박식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적어도 철학사의 맥락에서 데리다를 읽기 위해선 헤겔, 후설, 하이데거, 레비나스를 잘 아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주파하려면 한세월 걸릴 것을 깨닫고 기초공사는 천천히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사상적 계보보다는 데리다가 다루는 테마에 관심을 두었죠.  

  

공부를 하면서 데리다가 당대의 프랑스 사상가들 예컨대 들뢰즈, 푸코처럼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경험을 구성하는 초월론적인 영역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쓰기 혹은 기록으로도 번역되는 에크리튀르(écriture)가 바로 이런 영역 속에서 가공된 개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죠. 강의 때에도 에크리튀르가 데리다의 중요한 테마라는 점을 강조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다만 그때에는 이론적인 초기 데리다의 테마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에크리튀르가 후기 정치 철학까지 이어지는 주요한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Q. 방금 말씀하신 에크리튀르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에크리튀르는 다소 복잡한 맥락이 있는데요, 이는 우선 서양 철학사에서 논의된 로고스와의 연관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습니다. 데리다가 보기에 서양 철학의 중핵인 로고스(logos)라는 개념은 이성, 말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고스의 어원을 이루는 ’은 단순히 어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로고스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것이라고 보았죠. 여기서 데리다는 하이데거를 참조하면서 로고스의 어원으로 들어갑니다. 간단히 말해 철학에서 다루는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리스 철학자들은 진리가 말을 통해 전달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여기서부터 말은 진리의 매체이자 근거인 로고스로 개념화됩니다. 사유가 로고스에 의해 규정되고 이 사유에 가장 적합한 매체가 되는 것이죠. 따라서 철학에서 ‘쓰기와 같은 매체는 말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 되는 겁니다. 이런 철학사의 메트릭스를 데리다는 로고스 중심주의로 명명합니다. 

 

반면 데리다는 사유의 매체를 이 아니라 지금까지 잊혀져왔던 쓰기’(écriture)에 의해 파악한다면 어떻게 될지를 묻습니다. 논의를 단순화시켜 보자면, 말이 로고스를 낳았다면 쓰기는 무엇을 낳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 것이죠. 직접적으로 데리다가 답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이를 데리다의 유명한 개념인 차연(différance)에서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차연에 대한 정교한 이해는 강의시간에 하기로 하고, 이 자리에서 로고스와 대비하여 간단히 설명하면, 차연은 간격을 함축하는 개념입니다. 반대로 로고스는 '가까움'을 함축하는 개념이죠. 로고스를 통해 사유하면 진리의 척도는 '가까움'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가장 가까이에서 재현해줄 수 있는 말, 진리에 가장 가까운 생각, 혹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내면의 목소리 등등 로고스 중심의 사유에선 사유의 대상에 가깝게 다가가려고 합니다. 무엇과 가까워야지만 그 무엇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반면 차연을 통한 사유에서는 얼마나 가까운가를 따지는게 아니라, 간격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예컨대 나의 생각은 내면의 목소리라는 단일한 자아 속에서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나와 듣는 나의 분열 속에서 이해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따라서 진짜 나의 생각은 진정한 나에게 더 다가간다고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다고 간주되는 수많은 나 자신에 대한 의식적 순간들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죠. 즉, 나는 나를 이루는 간격 속에서만 동일한 나 자신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데리다의 제자였던 장 뤽 낭시는 이를 자기동일성의 광기라는 인상적인 표현을 썼는데요, 동일하지 않은 것을 동일하다고 간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기동일성은 이성적 사유라기보다는 광기에 가깝다는 것이죠. 

  

여기서 데리다의 기획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체적 사유는 자기동일성이 불가능하다고 폭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해체적 사유에서는 자기동일성이 낭시의 말마따나 어떻게 광기로 유지되는지, 어떻게 간격을 은폐하면서 자기동일성'인 것처럼' 작동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흔히 데리다의 사유 방식을 설명할 때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라는 현학적인 표현을 쓰는데요, 이를테면 자기동일성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과 메커니즘은 무엇인지를 따져묻는 것이 차연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려는 태도입니다.

 

강의 때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데리다는 이를 공간적 혹은 시간적 간격에서 찾았고, 그리고 이 간격은 자기동일성을 가능하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간격 때문에 자기동일성이 해체된다는 점에서 불가능성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가능성의 조건이 곧 불가능성의 조건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데, 데리다는 이러한 사유 방식을 유사-초월론이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가능성의 조건만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조건까지 함께 파악한다는 점에서 철학에서 말하는 초월론’과 겹치면서도 갈라지는 사유 방식인 것이죠. 

 

 

 


Q. 그렇다면 말씀하신 데리다의 에크리튀르, 해체와 같은 철학적 사유가 이번 강의에서 기획하신 법과 폭력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아시다시피 데리다는 1980년대 후반에 <법의 힘>이라는 텍스트를 출간하죠. 미국의 카도조 법대 대학원에서 있었던 콜로키엄의 개막 강연을 정리해서 책으로 발간한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글쓰기와 차이>와 같은 초기 저서들의 번역이 좋지 못해, 진태원 선생님이 충실한 각주를 붙인 <법의 힘>이 또 다른 후기 저서인 <마르크스의 유령들>과 함께 데리다의 입문 저서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이 책들은 흔히 데리다의 정치적 전회라는 평가가 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정치철학보다는 기호학이 더 익숙한 영역이었기 때문에 저는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에서부터 데리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데리다가 법과 폭력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를 읽을 때부터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폭력은 초기의 해체론에서부터 주요한 테마입니다. 해체는 특정한 담론에서 폭력이라고 명명한 것을 면밀히 독해하는 것에부터 출발하니까요. 예컨데 소쉬르와 루소의 언어이론을 해체한 것으로 알려진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의 핵심은 간단히 말해 쓰기(에크리튀르)의 폭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Q. 에크리튀르의 폭력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소쉬르와 루소는 인간 언어의 핵심을 이라고 보았습니다. 생각을 가장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는 언어가 말이라고 본 것이죠. 반대로 문자 혹은 쓰기는 순수한 말에 침범하면서 인간의 언어를 오염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 말은 자신의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는 직접적인 매체이지만, 문자는 이러한 말을 적어두는 것에 그치는 간접적인 매체에 불과합니다. 말이 인간에게 딱 붙어있는 언어라고 한다면, 문자는 인간에게 떨어져 있는 언어인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문자의 소외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들, 즉 문자가 원래의 말을 대신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고 변형되는 일련의 과정을 소쉬르나 루소 모두 문자(에크리튀르)의 폭력으로 정의내립니다. 말은 인간 내면에 위치하는 순수한 언어인 것이고 문자는 인간 바깥에 위치한 언어이기 때문에, 바깥의 언어가 내면의 언어를 침해하는 것은 폭력인 셈입니다.

 

즉 이들에게 폭력은 고유한 내면이 바깥에서 비롯되는 무언가에 의해 침해되는 현상으로 규정됩니다. 말이 문자에 의해 침해되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면 자신의 생각이 언어라는 매체에 의해 왜곡되는 현상을 폭력으로 간주하는 것이죠. 이들에게는 내부와 외부가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이고 그 구분 속에서 외부의 충격에 의한 내부의 변화를 폭력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데리다의 지적은 이들의 구분처럼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폭력은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데리다의 생각대로 내부와 외부가 항상 영향 관계 속에서 서로를 변화시키는 것을 그만둘 수 없다면 폭력을 피해갈 방법은 없습니다. 이런 구도 속에선 물리적 변화가 모두 폭력인 것이니까요.

 


Q, 그렇다면 데리다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폭력을 사유하나요?

 

, 데리다는 물리적인 역학관계에서 벗어나 금지와 위반의 구조 속에서 폭력을 사유합니다. 지금부터 설명드릴 내용은 다소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정의하는 방식으로만 설명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우선 데리다는 구획된 내부와 외부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변형시키는 물리적 현상을, 아직은 폭력으로 인식될 수 없지만 폭력의 조건이라는 점에서 원-폭력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원-폭력으로부터 폭력을 인식하고 금지하는 행위, 즉 원-폭력을 폭력이라고 규정하고 금지하는 행위를 금지의 폭력이라고 부릅니다. 사실상 금지는 금지라고 정해지기 이전에는 금지되지 않았던 행위를 금지한다는 점에서 폭력인 것이죠. 마지막으로 이렇게 금지된 것을 위반하는 것을 경험적 폭력이라고 부르는데, 데리다가 보기에 소쉬르와 루소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폭력이라고 명명하는 것은 오직 마지막 층위에만 해당합니다.

 

이처럼 데리다가 폭력을 해체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폭력이 없다거나 어떤 현상을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경험적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금지의 폭력과 원-폭력을 함께 사유하면서 폭력의 개념을 다층화시키는 것이 목적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폭력은 법과 함께 사유될 수밖에 없습니다. <법의 힘>에 등장하는 (벤야민을 인용한) 유명한 구분법인 법정초적 폭력과 법보존적 폭력은 사실상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의 폭력론에서 발전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해체론의 중심 테마라고도 할 수 있는 법과 폭력은 단순히 법의 기원이 폭력이라는 것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법과 폭력이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얽히는 가운데, 폭력을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강의 때 더 같이 논의를 해보겠지만, 이는 우리가 어떤 현상을 폭력적이라고 명명할 때의 뉘앙스를 더 풍부하게 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폭력이 외부의 침입 같은 물리적인 규정에 그치지 않을 때, 그리고 그 자신도 폭력을 함축하는 법을 늘상 호출할 수밖에 없을 때, 어떻게 폭력을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 해체론적 관점에서 폭력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폭력을 무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폭력을 더욱 구조화시켜서 심층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데리다의 기획인 것이죠. 따라서 여기에는 폭력의 비판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입장들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강사조지훈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연구실에서 데리다의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수행성의 시간적 형식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에서 시간의 문제이미지의 영도를 개념화하기롤랑 바르트의 아마추어적 실천슈레버의 사례에 대한 분열분석적 진단」 등을 썼다.

 

기간 : 2020년 1월 8일 ~ 2월 5일 매주 수요일 오후 7시 30

회비 : 10만원

입금계좌 3333-09-2104809 카카오뱅크(김현준)

정원 : 25

*강의 시작 후 회비 환불이 어렵습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프로그램 회비는 연구자들의 재생산과 연구실 유지에 사용됩니다. 함께 공부하는 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강좌신청은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https://forms.gle/7BZ2Lmir9qJLm8jV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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