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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교연 2020 강독강좌] '상징폭력과 계급: 부르디외의 계급사회학' 강사 인터뷰 part 2.2020-01-02 0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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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연 2020 강독강좌 시리즈6] '상징폭력과 계급: 부르디외의 계급사회학' 강사 인터뷰 part 2.



Q 4. 맑스와 베버는 사회학이라기보다는 정치학에 가깝다는 인상이 듭니다. 부르디외의 이론은 사회학과 정치학 중에서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질문자의 입장에서는 정치와 사회는 무관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학문의 분류체계가 다르다보니 분석하는 대상·현상 등이 다를 거 같다는 어렴풋한 인상은 있어요. 부르디외에게 있어서 정치학 또는 정치란 어떤 것일까요?
 

     아시다시피, 맑스와 베버는 뒤르켐과 더불어 사회학의 ‘3대장’(선조)인데요, 우리가 ‘정치’를 어떻게 정의하거나 이해하느냐에 따라, 맑스나 베버, 또 부르디외의 ‘정치학’에 대해서 말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맑스는 물론이고 베버 역시 사회학이나 정치학이라는 분과체제 내에만 갇혀있는 사상가들은 아니지요. 부르디외의 경우는 어떨까요? 많이 알려진 사실대로, 부르디외는 처음에 철학을 공부하다가 알제리에서 인류학적 연구를 수행했고, 프랑스에서는 본격적으로 사회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었습니다. 

     질문자께서 ‘정치학’과 ‘사회학’을 어떤 의미로 사용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맑스와 베버, 또는 부르디외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핵심적 문제의식이 ‘지배’와 권력’, 그리고 이를 통한 사회변동을 사유하는 것에 있었다고 한다면 정치학이 맞겠습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사회학 고유의 탐구 주제이기도 합니다. ‘해방적 실천’이라는 의미에서 정치(학)을 정의하신 거라면, 그 어떤 정치적 실천이라도 그것의 사회적 조건이나 일상적 실천에 대한 이론적인 동시에 경험적인 분석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사회학은 정치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 ‘현실’을 이론과 경험을 통해 구성하는 사회학적 작업은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그 이상의 ‘이론적 실천’, 즉 ‘지식정치’인 것입니다. 또한 해방을 추구하는 정치적 전망(또는 가치)이 정당화되는 것도 사회적인 과정이지요. 그래서 부르디외는 학자들 역시 이론 또는 지식을 통한 사회적 투쟁(상징투쟁)에 개입하며 따라서 이점을 사회학적으로 성찰해야 한다는 ‘성찰적 사회학’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매우 도식화시켜서 저는 정치학이 (불)가능성을 전망하는 학문이라면 사회학은 (불)가능성의 조건을 탐색하는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부르디외의 사회학을 ‘상징지배의 사회학’, ‘상징폭력의 정치학’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은 바로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서로의 조건으로서 내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배나 정치의 문제를 사유할 때 반드시 따라나오는 개념들이 바로 ‘질서’, ‘권력’, ‘해방’, ‘주체화’ 등인데, 아시다시피 정치(철)학의 아주 기본적이고도 전통적인 개념들이지요. 부르디외 역시 지배가 어떻게 관철되고, 또 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지배는 ‘정당성’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정당성이란 것은 물리적 강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경제적(또는 공리주의적)이며 심지어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의미를 통해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권력)입니다. 베버는 이러한 정당성을 갖춘 지배의 사례로 ‘카리스마적 지배’를 말합니다. 


Q 5. 부르디외의 정치학이 상징적 지배, 상징적 폭력의 정치학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오늘날의 사회문화적, 정치적 불평등과 관련하여 상징폭력 개념이 어떤 의의를 갖는건지요?

     다시 말해 사람들은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의심하지 않는 정당한 것에 대한 당연시하는 태도를 통해서 이 세계의 질서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받는 선물이나 시혜를 매우 감사히 여기고 그 은혜를 되갚으려고 합니다. 이 부채감은 권력자에 대한 감정적 인정과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권력이나 물리적 세력관계는 어떤 사물(상품)에 대한 선호(취향), 또는 인격적 관계(호혜성)나 도덕성이라는 관계적 의미를 통해서 지배(권력관계)를 재생산합니다. 그리고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객관적 위상차는 (은폐된 채로) 권력자의 인격적 속성이나 도덕적 정당성으로 변환되지요. 이 과정에서 권력자는 명예라는 상징자본(상징권력)을 얻습니다. 즉 지배의 힘이 명예나 도덕, 능력이라는 (인격적, 상징적)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겁니다. 우연적 지배권력이 필연적 정당성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거지요. 

     이러한 설명은 오늘날 능력주의의 형태를 띠고 재생산되는 계급/학벌사회의 논리를 잘 보여줍니다. 가장 똑똑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도덕성까지 전유하는 겁니다. ‘공정’ 역시 가장 '정당한' 사회적 규칙으로 인정되고 있지만, 결과적인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작동할 뿐입니다. 특히 <구별짓기>를 통해 잘 알려진 문화취향 분석은 (계급)정치가 단지 공적 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생활세계의 사적 영역에도 중요한 것임을 보여줍니다. 정치가 도덕 및 문화취향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부르디외는 또한 구체적으로 정치 영역에서 정당화된 정치적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치적 의견이나 여론(조사)이 어떻게 구성되는 것인지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부르디외는 여론조사와 같은 정치공학적 기술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지요. “여론은 없다”라는 에세이가 있습니다. 이른바 ‘대표자의 효과’와 정치언어의 독점과 분업에 의해서 정치적 의견들이 체계적으로 왜곡되고 유권자들이 전문가들에게 판단을 위임하고 정치적 문외한으로 전락하게 되는 현상을 비판한 것입니다. 부르디외는 이를 ‘정치적 물신숭배’라고 표현했는데요, 한 마디로 정치적 소외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그는 많은 정치적 에세이들을 남겼습니다. 소위 ‘폴리페서’들이나 ‘미디올로지스트’들을 정치-미디어-학문의 경계를 흐리는 학문 장의 ‘트로이목마’라고 비판하며 지식인에 대한 비판적 정치/사회학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본 강독강좌의 결론부 마지막 주차에 다루려고 합니다. 저는 이러한 부르디외의 지식정치학을 ‘순수성의 정치’에 의한 ‘이중적 상징투쟁’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렇게 부르디외는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정당화된 사회적-상징적 인지체계나 범주를 문제삼고, 사회학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폭로와 비판의 정치를 실천했던 것입니다.

강사 인터뷰 part 1. >>>

강사소개 _ 김현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사회학 연구자. 서강대, 서울과기대, 말과활아카데미, 서교예술실험센터, 연구집단 카이로스 등 대학 안팎에서 다년간 현대사회이론, 문화이론, 사회과학철학/방법론, 과학/지식사회학, 문화/종교사회학 등을 강의했으며, 부르디외를 활용하여 사회 및 정치, 종교현상을 설명하는 논문들을 썼다. 극우정치와 혐오동학을 연구하고 있다.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강좌정보 

일시: 2020년 1월 11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3시(10강) (1월 25일 휴강) 

장소서교인문사회연구실 강당(마포구 잔다리로 60. 합정역 2번 출구 부근, 중화요리 '시향' 건물,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3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원: 20

회비: 20만원

입금계좌3333-07-4776628 카카오뱅크(정우준)

*강의 시작 후 회비 환불이 어렵습니다. 서교인문사회연구실 프로그램 회비는 연구자들의 재생산과 연구실 유지에 사용됩니다. 함께 공부하는 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상세안내 >>> http://seogyo.net/lecture?board_name=lecture&mode=view&search_field=fn_title&order_by=fn_pid&order_type=desc&board_page=1&list_type=list&board_pid=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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