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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서교연 강독4] 라클라우&무페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강독 강사 인터뷰!! Part.22019-03-27 11: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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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클라우 & 무페의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강독 강사 인터뷰 Part.2




Q. 라클라우와 무페가 극복하려고 했던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의 문제나 한계는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이들의 이론이 담론의 비물질성이라는 오해에 섞인 비판과 함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자, 가장 민감하고 가장 논쟁적이며, 가장 무겁고 힘든 질문입니다. 그만큼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라는 책을 시점으로 하는 라클라우와 무페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누구의 이론이 더 마르크스주의에 가깝거나 그 이론을 현실에 맞게 정교하게 다듬고 있는지, 혹은 누구의 철학이 사회주의 혁명과 노동해방을 위해 더 급진적이고, 두려움을 무릎 쓰고, 더 비타협적인지를 평가하거나 발전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중요한 이유를 정치의 위기그 자체에서 찾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추구하는 대문자 R의 혁명, 노동계급 중심의 보편적 사회변혁과 인간해방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정통성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결과가 좌파의 무능력과 신자유주의화였다고 봅니다.

 

사실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와 보수주의 정치가 민주주의를 왜곡하면서 정치를 독점하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혐오와 차별을 대면하는 개인을 무기력하게 하는 동안 소위 마르크스주의 좌파들은 이러한 정치사회적 악화에 무능력하거나 혹은 타협하면서 정치를 엘리트주의로 축소하거나, 총파업 신화 속에 빠져 대중적 지지를 잃어가고 변질되어왔다는 것이 이들이 비판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현실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위기가 소위 정통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고수한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론에서 기원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경제결정론은 사실상 정치의 자율성을 제약하고 통치전략에 대한 분석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계급환원론은 보편적이고 특권적 정치 주체를 강조하면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하고, 엘리트 정리를 넘어서 대중의 정치를 복원하는 것을 제약하는 원인입니다.

 

이 두 개념에 갇힌 마르크스주의는 1960년대 이후 사회 수면으로 떠오르는 다양한 권리담론들과 새로운 정치주체의 출현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인정하기를 주저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소위 전투적인(하지만 사실은 정치적이지 않은)’ 노동운동이 다양한 권리담론들과 결합하기를 주저하고, 그러면서 반민주적인 지배권력에 맞서기 위한 대중적 지지를 확장하는데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할 것입니다. 결국 라클라우와 무페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교조성과 정치적 주저함이 오늘날의 좌파를 무능력하게,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우파 포퓰리즘이 사회적 신화로 부상하도록 했다고 봅니다.

 

이론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부족함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론 그 자체가 실천의 위기를 주었다는 것이 그 비판의 핵심입니다. 이들의 이러한 마르크스주의 내적 비판은 해방담론의 해방, 자본주의 권력을 넘어선 정치의 복원이라는 마르크스주의와 조화가능한 목적에도 불구하고, 변절자라는 낙인과 함께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됩니다. 이들은 어쩌면 자신들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전형적인 비판/비난조차 마르크스주의 위기의 한 측면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살펴봐야 하는 것은 라클라우와 무페가 주목하는 현실입니다. 서구 마르크스주의가 주목하고 있는 현실은 유럽이라는 맥락입니다. 이 맥락에서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은 일종의 변종이자 예외성입니다. 하지만 라클라우와 무페에게이 변종과 예외성은 그 자체로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지난번 간략히 소개한 라클라우와 무페의 생애와 관련해서 볼 때, 라클라우의 아르헨티나 페론주의와 군부 쿠데타의 경험, 그리고 무페에게서는 어쩌면 콜롬비아를 포함한 중남미 정치와 서구 마르크스주의의 충돌의 경험이 주는 직접성은 유럽이라는 보편성이 더 이상 보편성이 아닌 또 하나의 특수성이게 만듭니다. 이 특수성/특수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모든 다양한 맥락에서의 정치적 현상은 중심과 주변, 정상과 예외가 아니라 다양성과 차이에서 파악되어야 하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이 위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역적 맥락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지구적 맥락이 얽혀있는 지점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나아가 정치를 생각해야 하고, 이것은 기존 학문적 경계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지적-실천적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이 맥락은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우리는 냉정히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정의당의 각축이 보수 대 진보의 구조인듯하면서도 여전히 대의제 기반 의회-정당 정치에 모든 정치적 가능성이 흡수된 채 진행되는 상황을 봐야 합니다. 이 제도적 프레임에서 노동당과 녹색당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또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그리고 수많은 NGO들과 정부주도민관협치의 영역에 들어있는 집단들, ‘사회적 경제사회혁신을 특정한 담론에 결합시키는 주도적인 세력들에 대한 분석과 비평이 필요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준 중요점과 함께 그 한계를 넘어서 현실에 개입하고 현실을 변화시킬 이론과 실천적 노력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책에서 다루겠지만, 일단 이들은 초기 서구 마르크스주의 위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대응과 그 한계를 살펴봅니다. 그 위기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고민으로 드러났고, 카우츠키, 베른슈타인, 소렐 등의 정치 실험이 그 대응이었지만,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다고 봅니다. 이후 라클라우와 무페는 1970년대 말 서구 복지국가의 위기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출현 속에서 또 다른 판본의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분석합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본질주의와 보편주의에 기반한 이 두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개념으로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혹은 넘어선 새로운 정치이론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레닌에게서 기원을 찾고 그람시에게서 확장 가능성을 발견한 헤게모니 개념입니다.

 

 


Q. 라클라우와 무페가 말하는 헤게모니개념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주세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헤게모니 개념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이론의 영역과 특수한 현실들이 보편성에 도전하고 있는 실천의 영역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지점에서 이것을 조화롭게 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입니다. 따라서 헤게모니 혹은 헤게모니적 실천은 바로 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우연성차이의 세계에서 특정한 목적을 내세우고 참여자들을 설득하여, 그 특정한 목적이 사람들에게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목적, 즉 그 목적이 보편적인 윤리와 신념체계로 받아드려지도록 하는 대단히 복잡하고 정치적인 실천입니다. 따라서 헤게모니는 정치, 정치의 우위성을 사고하는 핵심개념이며, 특수한 맥락에서 특수한 내용이 도달불가능한 완벽함을 실현가능한 완벽함으로 사고하도록 하는 기능을 합니다.

 

헤게모니에 대하여 그들은 종중 두 가지 사례를 제시합니다. 하나는 러시아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의 대처주의입니다. 이후 이들은 다양한 우파 포퓰리즘과 관련해서도 헤게모니 실천의 사례를 연구합니다. 강좌 때 함께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지만, 러시아 혁명은 부르주아의 필수 역할을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 비해 덜 성숙했던 프롤레타리아트가 대신했고, 이 미성숙했고 다수가 아니었던 집단이 사회의 보편계급이자 해방의 주체로 부상하면서, 기존 마르크스주의 이론이 제시한 발전경로를 이탈하면서 사회주의 혁명을 완성한 사례입니다. 그래서 예외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이런 예외성이 가능했던 것을 레닌에서 시작한 헤게모니때문이라고 봅니다.

 

대처주의와 관련해서는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대처는 자신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대중을 납세자’, ‘소비자’, ‘복지 구걸자등으로 재편하고, 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와 결합시키면서 정치를 엘리트화시키고 독점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대처주의는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으로까지 이어지는 헤게모니 실천의 끝판왕을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 경제’, ‘사회혁신’, ‘민관협치’, ‘민간위탁등에 얽혀있는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 분석도 중요한 사례일 것입니다.

 

라클라우와 무페는 경제결정론과 계급환원론을 넘어서 헤게모니적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기반을 탐구하고, 이론화를 위한 다양한 개념들을 발전시킵니다. 이들은 이를 위해 소쉬르로부터 시작하는 구조주의 언어학, 반본질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을 연구하고, 하버마스, 소쉬르, 비트겐슈타인에서부터, 알튀세르와 그람시, 그리고 데리다의 탈구축과 라캉의 정신분석학 이론에 기대어 자신들의 포스트 구조주의적 담론이론을 발전시킵니다. 여기에서 이들은 접합’, ‘탈구’, ‘등가와 차이의 논리’, ‘비어있는 기표’, ‘떠다니는 기표’, ‘결절점’, ‘정치의 우위성’, ‘주체와 주체화’, ‘정체성과 동일화’, ‘정치적 경계’, ‘헤게모니’, ‘신화’, ‘사회적 상상와 같은 개념들을 구체화합니다.

 

이와 함께 이후 라클라우의 경우 중세 신비주의 신학, 프루스트의 문학, 파스칼의 철학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불가능한/부재하는 완벽함/보편성이 가진 정치적 의미와 이를 재현하는 헤게모니적 실천의 관계를 은유나 환유와 같은 수사학적 이해 속에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동개념도 중요하게 부상합니다.

 

 



Q. 그렇다면 기존의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계급투쟁과 라클라우와 무페가 말하는 헤게모니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결국 이들에게 헤게모니적 실천은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마르크스주의에게 제안하는 중요한 제언입니다. 이것은 이 책의 2판 서문 마지막에서 강조되기도 합니다. 계급투쟁이 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다른 반자본주의, 반권위주의, 반남성주의, 반인종주의, 생태주의 등 다양한 해방적 주체들의 권리담론과 정치적 주체성을 인정하고 수평적 관계를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은 특권적 주체로 부상할 수도 있고, 다른 특권적 주체나 가치를 지지하고 해방 기획을 추구하는 강력한 기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계급투쟁이 또 다른 전체주의로 빠지지 않고,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으로 가는 가장 중요한 길이기도 합니다. 즉 헤게모니 실천없는 계급투쟁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계급투쟁은 보편성과 거대역사의 목적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회 내 주체위치/정체성들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노동계급이라는 정체성, 비어있는 기표, 결절점을 중심으로 대중을 동원하고 구성하는 가입니다. ‘노동계급자리에는 헤게모니 투쟁의 결과에 따라 여성’, ‘생태’, ‘복지’, ‘정의’, ‘공정성’, ‘반유태인’, ‘민족’, ‘안보’, ‘경제성장’, ‘환경위기’, ‘글로벌 스텐더드’, ‘청년’, ‘커먼즈/공유재’, ‘민관협치’, ‘사회혁신등 다양한 주체성이나 가치가 대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어떤 가치들이 배제되고 결합되는가에 따라 좌, , 중도 어느 것이든 특정한 헤게모니적 구성체/역사적 블록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결론적으로 헤게모니는 계급투쟁을 넘어서, 모든 정치를 포괄하는 정치원리, 포퓰리즘은 좌, , 중도, 개량, 수정, 저항, 혁명, 직접민주주의, 호헌철폐 직선제 개헌 등 이미 담론화 또는 제도화 된 다양한 정치 형태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Q. 라클라우와 무페가 헤게모니급진 민주주의는 어떤 관계가 있나요?

 

이 또한 제 개인적인 견해인데, 라클라우와 무페의 사상이 가장 가장 핵심적인 목표는 민주주의의 영역에서 모든 전체주의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폐쇄와 차별, 특권을 강조하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전체주의를 맞설 때, 민주주의는 특정한 가치, 제도, 집단에서 멈추지 않고 드러나지 않았던 목소리를 찾아서 끊임없이 확장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급진 민주주의, 또는 급진 다원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헤게모니 실천을 통해서 민주주의는 시장자유화와 탈규제, 노동유연화를 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고, 이민자와 난민, 장애인과 빈곤층을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소모적으로 만드는 불필요한 존재로 낙인 찍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 민주주의는 엘리트와 관료주의, 대의제의 한계를 드러내고, 전문가에 의해 왜곡되고 독점화된 지식을 대중에게 돌려주고, 사적 소유권을 앞세운 투기적 개발에 맞서 시민적 소유권을 제시하고, 목소리와 을 빼앗긴 자들에게 그것들을 돌려주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유지해나가는 자기 자원을 스스로 생산해 나가면서 다양한 해방이 얽혀있도록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급진 민주주의는 헤게모니 실천과 불가분의 관계이면서, 그 내용 또한 우리 스스로 만들고 채워야 하는 몫일 것입니다.

 


Q. 오늘날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다시 읽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책을 훈고학적 낭만주의의 태도에서 읽는 것을 저는 개인적으로 반대합니다. 지적 유희는 동기부여 뿐만 아니라 자기존엄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적 유희가 그 유희를 방해하고 개입하는 현실을 차단하는 지점으로까지 흘러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 책은 현재 우리가 현재의 입장에서 보는 우리의 문제를 과거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또 하나의 작은 거울일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처음 소개되었던 19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일종의 금서처럼 여겨졌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저는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어떤 정치적인 위기의 이유는 대적자의 강력한 힘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어떤 늪에 빠져있거나, 끈에 묶여있음에도 그것에 무감각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것이 어떤 전체주의가 아닐까 생각하고, 이 책을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어떤 전체주의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또 다른 실마리로 읽으면 좋겠습니다.

 

 

Q. 수업 시간에 특별히 주목해서 다루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일단 낯선 개념, 그리고 책을 관통하는 의미에 대한 제가 이해하는 부분을 나누고,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Q. 혹시나 이 강좌를 어려워할 지도 모를 수강생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이 책은 당연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강을 넘기위해 밟고 지나가야할 징검다리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래서 이 책을 여전히 무겁게 들고 있습니다. 이 책에 담건 언어에 우리를 맞춰 이해하는 것은 어렵고 시간이 걸립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책이 우리의 언어에 맞가 다가오로록 읽고 느끼면 될 것 같고, 그래서 함께하는 강좌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좌 자체는 오늘날 우리의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정서적 공감과 정치적 위로를 나누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사소개

이승원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경희대학교 전환과 사회혁신 연구센터장영국 에섹스Essex 대학교에서 '이데올로기와 담론분석박사학위 취득민주주의포퓰리즘사회혁신사회적 경제도시 공유urban commons 운동 관련 현장 기반 연구활동에 참여해 왔으며역서로는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저서로는 <민주주의등이 있다.

 

강좌정보

일시 : 2019년 4월 1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30

장소 서교인문사회연구실 강당

* 서교인문사회연구실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3층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원 : 20

강좌회비 : 20만원 (입금계좌우리은행 1002-239-531656 김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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