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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7주차] 은밀한 통치 권력, 관용2019-05-10 19: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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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브라운은 『관용』(2008)의 2장<관용 : 권력의 담론>을 통해 관용이 지배적인 규범을 유지시키는 하나의 통치 원리임을 주장한다. 저자는 먼저 통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대리 보충의 역할을 하는 관용의 모습을 설명한 후, 그것의 모델이 변화해감에 따라 통치 권력이 더욱 복잡하고 은밀하게 변모하는 과정을 짚어나간다.


관용은 전체의 “연속성과 통합성, 자기-완결성"(61)을 위해 전체를 위협하는 “내부의 타자를 편입시키고 규제하는 하나의 방식"(61), 곧 푸코가 말하는 “생권력적 성격”(60)을 가진 인구 관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관용은 “관용의 대상이 되는 요소를 주인 안으로 편입”(62)시켜 허구인 전체성과 연속성을 가리는 “대리보충”(61)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관용은 타자를 단순히 배제·부정하지 않고 내부로 편입하여 관리함과 동시에, 타자가 동화·흡수되지 않고 표지된 채 외부인으로 남게 한다. 이와 같이 관용은 “주인과 완전히 하나가 되거나 주인 속으로 용해되지 않"(63)는 문제적인 대상에게 “잠재적인 위협의 자리를 할당"(63)한다. 결국 관용이 표면에 내건 "평화주의"(58)라는 슬로건의 배후에는 두 주체, 즉 구원 대신 불완전한 형식적 평등을 갖게 된 주체와 적개심을 억누르고 ""포용"이라는 부드러운 가면"(59)을 쓰기를 강요받는 주체가 있다. 관용의 대상이라 여겨지는 전자는 경계로 몰려 “자기-비하"를 하게 되는 한편, "겸손한 우월함의 위치"(58)에서 관용을 종용 받는 후자는 공격성을 내비치게 된다. 관용이 “차이에 대한 적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관리"(64)하는 통치 원리인 한 주체들은 계속해서 이와 같은 불안정한 심리구조를 갖게 될 것이다.


관용은 여러 시대에 걸쳐 그 모습이 변화되어왔다. 초기의 관용은 “본질적인 교리들을 받아들이는 한 그들(이단자)이 교단 내에 남는 것"(66)을 용인하는 “교조적 종교 공동체들 간의 공존 모델"(72)이었으나, 점차 로크가 새롭게 정식화한 관용 모델로 대체되었다. 로크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며 “종교적 믿음을 개인화하고, 그것을 공통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68) 여기서 종교적 믿음이 사적인 것이 된다는 것은 곧 그것이 “어떤 공적 중요성도 없"는 “개인의 양심과 도덕적 자율성"(72)의 문제임을, 더 나아가 종교의 권력이 관용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기존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지 않는”(69) 선에서 “적절하고 엄격하게 제한"(70)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관용의 자유주의적 모델은 관용이 ‘믿음'에서 ‘정체성'이라는 보다 폭넓은 적용 범위를 갖게 되면서 다시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관용의 대상이 “특정한 속성을 갖춘 개인들이나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정체성"(74)들로 변화했다는 것은 “평등에 대한 자유주의적 실천의 한계"(74)를 드러낸다. “종교 및 양심의 자유"(74)를 가진 동질적인 주체의 형식적인 평등을 말한 이전의 관용은 “자유주의적 평등이 제거하거나 축소할 수 없는 차이들"(75)을 해결하지 못함을 은폐하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변모해야 한다. 이는 "대중 사회에서 개인을 규율하고 분류"(81)하기 위해 주체의 본질적인 차이, 곧 “표지된 정체성"(83)을 주체의 특정한 믿음과 행동과 등치시킨다는 푸코의 주장과 연결하여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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