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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7주차 쪽글] 구조주의적 법과 법 이전의 의미, 그리고 가면 개념의 활용 가능성2018-11-16 12: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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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문

가부장제 이전에 대한 탐구는 가부장제의 역사성, 우연성, 자기-물화를 폭로하기 위한 전략으로 페미니즘 내에서 활용되었으나, 법 이전의 기원에 대한 가정 및 회복에 대한 주장은 또다른 종류의 물화로서 페미니즘 내부에 배타적 실천과 파편화를 야기한다.

법의 자기 정당화는 법 출현 이전을 전제하고 법의 등장이 필연적이었음을 입증하는 서사로 이뤄지며, 이 서사는 법 이전을 설명할 유일한 권위를 확보한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제시되는 법 이전의 진정한, 순수한 여성성에 대한 의존은 바로 또다른 종류의 물화의 예시이다. 이러한 이해는 보편 금기의 결과로서 문화를 설명하는 구조주의 인류학과, 섹스-젠더 간 단절을 지지하면서 그것을 수용한 페미니즘 이론에도 적용 가능하다. 그러나 물질, 의미화 수용자, 자연으로서의 섹스 역시 담론적 구성물이며, 예의 구분은 (그것이 담론의 효과임은 은폐된 채) 섹스-젠더, 자연-문화, -정신 간 위계관계를 발전시킨다. 법 이전을 대안으로 전제하지 않는 관점은 어떻게 가능한가? ‘발화 이전에 몸을 표명하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수행적으로 스스로에게 역행하면서 자신의 대안을 양산하는가?’(p.159)

 

1. 구조주의의 비판적 교환

법의 단일성을 전제하는 구조주의 담론이 제기하는 보편적 금기와 그에 의해 금지되는 문화/금기 이전의 더 자연스러운것으로서의 이성애적 근친상간은 어떻게 담론적으로 구성되는가?

구조주의 인류학에서 여성은 씨족 간 부계 계승의 교환 대상으로서 남성 중심 경제를 안정화, 재생산하는 관계어로서만 기능한다. 구조주의 언어학에서 기표-기의 간 관계의 자의성은, 이미 성립된 언어 체계의 내적 자기완결성을 넘어서지 못한다. 레비-스트로스, 쏘쉬르와의 후기구조주의적 단절은 구조주의적 총체성, 보편성에 반대하면서 이분법 구조가 억압하는 언어적(문화적) 의미의 개방성, 모호성을 (차연을 통해) 보이고자 한다. 이리가레는 레비-스트로스의 남성 중심 경제를, 언제나 전제되나 드러나지 않는 차연으로서의 여성에 의존하는, ‘남성 간-섹슈얼리티로 명명한다. 이 억압/비난 받아야 할 섹슈얼리티는 여성의 교환, 분배를 통한 남성 간 유대 강화로 실현된다. 이리가레의 이러한 분석과 유사한 흐름에서, 스스로의 보편성/고정성을 전제하는 구조주의적 법의 역사성, 우연성, 자기파괴적인 생성력은 계보학적 분석 하에서 폭로될 것이다.

 

2-(1). 라캉, 리비어 그리고 가면의 전략

가면의 작용을 거부된 사랑의 대상에 대한 우울증적 해결로 해석한 라캉도, 남성성/여성성이라는 가면을 방어기제로 해석한 리비어도 여성 동성애를 탈성애화된, 사실상 섹슈얼리티를 거부하는 존재로 위치 짓는 한계를 보이지만, 그들이 제시한 가면 개념은 우울증적 (젠더)정체성 형성의 분석 하에서 활용될 여지가 있다.

라캉은 존재론 이전에 존재를 성립시키는 의미화 구조에 주목하면서 아버지 법, 주인 기표로서의 팔루스 개념을 제시한다. 라캉의 상징계는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팔루스과 팔루스가짐의 위치를 할당한다. 그러한 상징질서(언어질서)로의 진입은 주체의 성립 조건으로, 이 주체는 (이성애적)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를 일차 억압으로 수용함으로써 (억압 이전의 완전한 쾌락으로서의 모성의 몸으로부터 분리되고) ‘배제를 정체성 형성에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남성 주체는 자율성을 추구하지만 그것을 (팔루스’) 여성에게서 확인 받으려(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성은 일차 억압 이전의 모성의 몸의 위치 변경이기도 하므로 이는 주이상스 회복의 시도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남성 주체 자율성의 이중성으로 인해 주체의 일관성은 흔들린다. 나아가 여성은 남성 주체를 위한 존재이며, 완전한 팔루스은 불가능하고, 남성 주체는 팔루스이 아닌 가짐이므로 결코 팔루스의 위치에 설 수 없다. 그러므로 라캉적 주체는 결핍, 실패를 그 핵심으로 한다. (이 부분은 아래에서 더 자세히 다뤄진다.)

라캉 이론에서 여성이 팔루스것처럼 보이게 강요하는 것은 가면의 작용으로 제시된다. 가면(으로서의 젠더)은 순전히 수행적일 수 있는 가면 자체의 외양적 작용, 혹은 가면에 선행하며 그것을 쓰고 있는 선험적 여성성에 대한 부정의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어 흥미로운데, 이 지점에서 라캉은 여성이 가면의 작용에 의해 여성성의 모든 본질적 부분을 거부한다고만 밝히면서 서술 상의 무경각성을 내보인다.

가면의 작용은 또한 (사랑의 거부에서 발생하는 상실에 대한 우울증적 합체 전략의 일부로 여기면서) 여성 동성애와 연결 지어지기도 한다. 라캉의 관찰에 따르면’ (이성애적) 사랑의 거부에서 오는 실망의 결과 여성 동성애자는 그 상실을 자신에 우울증적으로 합체함으로써 가면을 쓴다. 그러나 그는 이 지점을 지나치게 편리한 방식으로 기술할 뿐만 아니라 여성 동성애를 섹슈얼리티가 거부되어 탈성애화된 관계로 읽히게 함으로서, 자신의 가면 작용에 대한 논의가 이성애 남성인 관찰자가 그 관계에서 소외되면서 부리는 몽니에 불과함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

리비어에서 가면은 기본적으로 갈등 및 불안 해소를 위한 방어기제이다. 동성애자 남성은 자기 방어를 위해 이성애 과장의 가면(남성성의 가면), 남성성을 갖고자 하는 여성은 남성의 보복을 피하기 위해 여성성의 가면을 쓴다. 그러나 남성성을, 기호 사용자의 위치를 가지려는 여성은 여성성의 가면을 쓰지만 남성적 동일시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만 동성애적이지, 욕망의 관점에서 동성애적이지는 않다. 라캉에서와 마찬가지로 레즈비언의 탈성애화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라캉과 리비어의 가면 개념은 우울증적 (젠더)정체성 형성의 맥락에서 수용될 수 있다. 라캉에서 사랑의 거부와 연관되는 우울증적 합체로서의 가면 개념은 젠더 형성을 보다 깊게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리비어에서도 여성성의 가면은 여성의 남성적 동일시를 지배/해결하는 기제이지만 동시에 이는 여성적 동일시의 거부로 해석(강제적 이성애 하에서 거부된 사랑의 대상인 여성 타자와의 우울증적 합체 효과로서의 가면)될 수 있다.

 

2-(2). 라캉, 리비어 그리고 가면의 전략

  보편적 의미화 구조/주체 생산 기제로서의 아버지 법, 그에 의해 실패로 운명 지어진 주체, 법에 대한 영원한 접근 불가능성은 라캉 이론의 노예 도덕적 징후를 여실히 드러낸다.

  (문화 이전의) 본능적 양성애의 전제는 억압-배제를 통한 젠더 정체성 형성을 암시한다. 그러나 전담론적인 것으로 상정되는 양성애적 기질역시 담론(이분법적 섹슈얼리티, 규범적 이성애) 구성물이다. 라캉에서도 분리는 법의 작동 결과이지, 그 작동 조건은 아니다. 분리 이전의 이중성/양성성은 라캉 이론 내의 저항 가능 지점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실상 이 대안점, 저항점으로서의 상징계 이전은 일차 억압과 전제된 이분법적/이성애적 섹슈얼리티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이 법 이전은 라캉 내에서 회귀 불가능성으로 이미 특징지어져 있다. 결론적으로, 결핍이 그 본질인 여성, 팔루스가 되는 데 실패할 수 밖에 없으며 일관적이지도 못한 남성 주체, 접근 불가능성으로 그 충만함을 확증하는 주이상스 등은 라캉의 주체를 보장된 실패에 묶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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