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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프로포절]물질적 성찰성이 포르노 이미지를 찾게 될 때/부를 때 -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날것의 이미지들의 돌발적 출현과 함께 2019-12-27 17: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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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물질적 성찰성이 포르노 이미지를 찾게 될 때/부를 때 -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날것의 이미지들의 돌발적 출현과 함께

 

브레히트가 주창한 사유와 무대화의 상호 매개 공간에서 물질화되는 성찰성이 하이퍼매개 시대에 다시금 스펙터클의 신화로 흡입되는 것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해 많은 것을 걷어낸 포르노 이미지가 호명되는 것을 영화 임신한 나무의 도깨비의 신체의 날 것의 이미지 출현과 함께 살펴보며 레이초우의 이론의 적용 가능성을 검증한다.

 

레이 초우는 [성찰성이 포르노가 될 때: 모더니즘 이론 실천의 변형]에서 그는 브레히트식의 성찰성의 양태를 고찰한다. 모더니즘 이후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서사적 총체성에 균열을 내고 싶은 충동이 반영된 브레히트의 서사극이 관객과 거리를 확보하며 그 사이의 비판의 공간을 생성할 수 있음을 서술하는 것으로 글을 연다. 이는 러시아 형식주의자 빅터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와 공명하는데, 결국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각의 물화되어버린 예술의 관습을 다시금 의식의 수면에 떠오르게 하기 위해 관객과 배우 사이, 배우와 가상의 캐릭터, 그리고 볼거리와 감정 사이의’(레이 초우, ) 유기적인 일관성을 고의로 해치는 것을 그 실천적 방법으로 택한다. 이것이 쉬클로프스키의 최종 목적인 삶의 감각을 회복하며 존재하는 예술에 도달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서 논하는 성찰성은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식의 작품에 몰입되어 초월성을 향한 정신작용의 고양을 경험하는 것과 단절하고, 사유(思惟)와 무대화된 예술 형식들의 상호 매개 과정에서 변증법적 사고를 거치면서 물질화되는 것을 말한다. 그 물질은 돌출적이고 파편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게 된다.

 

브레히트가 그의 소격이론을 통해 예술 작품과 수용자 사이에 공간을 열어 젖혔다고 해서 그가 그 공간의 규칙을 정할 수는 없다. 프레드릭 제임슨은 이 공간에서 예측할 수 없는 공격 라인이 열린다고 하였다. 루이 알튀세르는 예술의 호명은 이데올로기의 그것과는 다르게 진행되며 예술작품 내에 열린 공간을 통해 성찰성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로라 멀비는 기존의 인식론적 폐제를 열어페미니즘 비평의 성찰성을 구현했다.

 

영화의 시대에 타블로에서의 낯선 사람이 그랬듯이 영화는 이질적인 사물 카메라가 끼어들어 만들어 내는 컷과 컷 사이의 탈구와 그로 인한 잔여물들을 사유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차이 나는 감각적인 것을 배분받는 것을 목표로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너무 자주 이어 붙여진 컷 사이에 항상 성찰성이 깃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무한 복수의 무대화기술적 편재상황으로 말미암아 사유와 무대의 창발적이고 변증법적인 시간과 공간이 저당잡혀 버린 시대가 도래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고양감도 브레히트적인 성찰성도 모두 다 잃어버린 채 무한복수의 무대화인 매체에서 매체로의 끊임없는 접속만 남아 탈구 공간이 소멸로 수렴하게 되고 자본의 창조한 거대한 스펙타클의 환영에 사로잡힌 개인이 외부로의 열림 없이 그 안에서만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쉬클로프스키가 했던 상징계 질서를 잠시 멈추고 사물을 바라보기와 같은 방식으로 영적인 먼지와 더러움을 대상으로부터 걷어낸’(Bazin 1967:15) 포르노 이미지, 즉 날 것 그대로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이 하이퍼 매개된 여러 층의 무언가 덮혀져 있는 것들을 뚫는 방법으로 호명당하게 된 것이다.

위 이론과 관련하여 영화 임신한 나무와 도깨비의 첫 장면인 박인순님의 샤워 신과 고 중반부의 윤금이씨 시신 이미지가 출현하는 장면을 이 에세이에서 논하고자 한다. 첫 장면은 정말 날 것 그대로의노년의 여성의 몸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에 따르면 본다고 하는 행위는 벌거벗은 육체에 대한 투사(projection)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본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말해서 폭력의 일차적 동인(agency)이다. 그것은 수동적 희생자의 위치에 놓인 타자를 시각적으로 관통하는 행위이다.’(레이초우, 2005, 52) 하지만 영화에서 신체의 날 것의 이미지는 그 타자적 위치에 고정되지 않는다. ‘많은 비판적 담론에서 이미지는 암묵적으로 전투가 벌어지고 저항전략들이 협상되는 장소이다...비판적 담론은 대안적인 광경, 이미지를 변화시키게 될 대안적인 시각의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이 이미지의 장에 진입하려 한다. 따라서 오늘날 가장 중요한 비평적 시도 가운데 하나는 억압된 희생자로서의 타자의 주체성을 탐구하는 것이다...’(레이초우, 2005,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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