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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7주차 발제문] 로라 멀비_물신과 호기심2019-12-01 16: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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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 멀비 물신과 호기심Fetishism and Curiosity(1996) 발제문 

소영

 

이 글은 물신fetishism’ 개념한편으로는 마르크스 물신 개념과,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이트 물신 개념을 톺아볼 수 있게 쓰였다. 이 두 개념은 어떻게 서로 조응하면서 영화사에(또 스크린에) 나타나는가?

두 물신 개념은 동일하게 ‘fetish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이 두 용어가 똑같은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물신 개념이 노동력이라는 보이지 않고 측정될 수 없는 가치가 어떻게 화폐라는 형태로 나타나는가, 그리하여 노동자는 어떻게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는가에 주목한다면, 프로이트-물신 개념은 성적 차이라는 상징적 체계를 확인하는 것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프로이트가 설명한 물신 개념에 대해 조금 부연하자면, 프로이트가 fetishism을 언급한 것은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에서다. 1905년 글에서 프로이트는 절편음란증을 이렇게 설명한다: 성 대상의 부적절한 대체물(“물신은 페니스의 대체물이다”). 이 절편음란증에 대한 설명이 속해 있는 절은 전반적으로 성욕 도착을 다루고 있는데, 성욕 도착은 해부학적인 의미로 성적인 결합을 위해 마련된 신체 부분들의 범위를 넘는 확장된 성행위, 또는 정상적으로는 최종적인 성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신속히 지나가야 할 성 대상에 대한 중간 단계에서 지체하는 성 행위이다.” 절편음란증은 이 중 전자, 즉 해부학적인 의미에서의 성욕 도착에 속한다. “성 대상을 대체하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성 목적을 위해서는 매우 부적절한 신체의 일부(발이나 머리칼 같은) 또는 성 대상을 대신하여 그 사람이나 그 사람의 성행위와 연관지을 수 있는 무생물(, 옷이나 속옷 등)이다. 이러한 대체물은 야만인들이 자기들의 신을 구현시킨 것이라고 믿는 물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요컨대 프로이트-물신 개념은 (‘페티시라는 단어가 흔히 알려진 뜻대로) 어떤 이미지가 성애화된 기호로서 작동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두 사람 모두, 한 사람은 사회적인 것의 차원에서, 다른 한 사람은 정신분석의 장에서, 가치의 상징적 체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의 거부나 장애, 혹은 정신의 공포증적 불능을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이 물신 개념을 활용했지만 멀비는 이 두 개념이 스크린 위에서 (그 둘의 유사성보다는 차이점이) 융합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페미니즘의 정신분석 이론 전유가 프로이트 쪽에 기울어져 있었음을 언급하면서, ‘이미지가 더 이상 페미니즘만의/정신분석학만의 문제가 아니며 자본주의 역시 연결된 문제임을(달리 말해서 마르크스주의적인 물신 개념이 함께 읽혀야 하는 문제임을) 언급한다. 요컨대 우리는 물신으로부터 사회적이고도 성적인 구성물을 볼 수 있다. 부인과 소외의 과정은 사물의 과잉-가치화를 만들어내며, 이 과잉-가치화는 사물의 미적·의미적 차원 위로 흘러가며 이들을 변용시킨다(다만 여기서 헷갈리는 건 마르크스-물신 개념과 프로이트-물신 개념이 정확히 어떻게 얽혀 있는지인데, 적어도 이 글에서 멀비가 설명할 몫은 아닌 듯하다).

상품 물신은 볼거리로서 승리한다. 볼거리로서 대상은 이미지와 믿음이 되고, 종교적 아우라보다는 에로틱한 아우라에 의해 보장된다. 상품의 물신은 의미와 볼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즉 보드리야르가 제기했던 기호 가치sign value(가령 명품과 같은 상품에서 그것의 위신 혹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생겨나는 가치)는 자기 자신을 시장이 추동하는 수요로서 실현될 수 있는 욕망으로 만든다. 기호 가치의 의미는 생산물의 의미이거나 그 경제적 중요성이 아니다. (아마도 여기서 의미라 지칭하는 것은 기호를 이루고 있는 사회적인 층위를 말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두 층위에서 전치가 작동한다. 우선 첫 번째 경제적 층위에서는 노동력이 부인되고, 두 번째 의미론적 층위에서는 구매욕의 내포의미들을 투사한다. 상품 물신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작동 아래에 있는 사회에 특수한 정치적 징후이며, 또한 인간의 상상을 소비하는 이미지들과 사물들의 끊임없는 매혹을 목격하는 일과 표상의 상상적 체계 및 그 환등상 속에서 믿음을 가짐으로써 얻게 되는 쾌락에 의존하고 있다.

소비 자본주의로의 전환 속에서 현대 상업은 기묘하게도 이중적 사업에 종사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판매행위가 산업으로 변형되며(백화점), 다른 한편에서는 산업이 상품 진열장으로 변형된다. 상품 판매가 볼거리로 변형되는 일은 사실상 최초의 백화점인 영화가 나타난 이후 50여 년간 발전된 산업과의 유비관계를 제공한다. 초기 영화는 볼거리로서 청중들을 사로잡았고, 합리적 지식과 믿음을 마주 세웠다. 17세기에 최초의 카메라 옵스큐라를 제작했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는 관객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계몽시키기 위해 영사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영화적 환영은 믿음 속 쾌락을 딛고 번창해왔다. 혹은 불신의 유예모두를 동시에 갈망할 수 있는 인간 정신의 능력을 딛고.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는 다시 한 번 합리적 세계를 의문에 부친다.

영화, 특히 산업적 영화, 아니 특히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처음으로 지배했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영화는 상품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러한 생산양식 속에서 영화들은 상품이며 또한 상품들을 전시한다. 그리하여 서로 다른 물신 형식이 영화 스크린 위의 한 지점으로 모여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집중점은 스타 여배우라는, 프로이트의 페티시 개념에서 어머니의 신체라는 자리를 상기시키며 여성성의 완벽하고 늘씬하게 빠진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그런 성애화된 형식 속에서 특징적으로 물질화된다. 페미니즘 영화 이론은 영화의 성적 자극을 영화의 물신화된 신뢰성을 성공적으로 지탱시켜주는 가장 주요한 요소라고 주장해왔다. 또한 가장 분명한 버팀목으로서 여성성은 물신의 경제에 의지하고 있다. 그 자체로 상품인 대중 영화는 볼거리로서 상품과 스크린 위 볼거리로서 여성 형상 사이에 가교를 놓을 수 있다.

1970년대 동안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 모더니즘 미학은 할리우드의 환영의 신뢰성에 도전하기 위해 연합했었다. 물신은 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반할리우드 대항-영화와, 정신분석학에 영향을 받은 반할리우드 페미니즘 영화 이론의 정치적 미학에 있어 핵심적인 개념이었다. 70년대 영화 이론은 정치적이고 논쟁적이었다. 70년대에 물신 개념은 부인의 궁극적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서 언급됐다. 아마 이러한 혼동은 70년대 동안 환영에 대한 할리우드의 투자가 더 혼란스럽게도 사실주의 논쟁과 혼합되어버렸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영화의 사실주의적 전통은 엔터테인먼트와 에로틱한 볼거리, 그리고 환영의 유약성에 관한 일반적인 형식인 스타 시스템에 의해 특징지어지지 않는다. 사실주의는 고도의 영화 상품화로부터 한 발짝 물러서는 일을 대표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미적 전략으로서 사실주의를 거부하는 일과 여성 이미지에 대한 페미니즘의 비판 사이에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페미니즘 미학에서 기호와 지시체 사이의 간극을 개념화했던 이론들(기호학, 정신분석학)은 해방의 원천이었다. 단지 의미에 내재하는 간극을 열어젖히는 것뿐만 아니라, 스크린 위에 주어지는 기표를 분명한 사회적 세계 속 기의로부터 분리시키는 전치의 언어를 해독하는 이론을 제공하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페미니즘 정신분석 이론에서 이미지는 자신이 지시하는 것과의 닮음이 필연적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시한다.

의미를 불안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 아래에서 지시의 문제는 길을 잃는다. 그와 동시에 페미니즘에서 기호학과 정신분석 이론의 영향은 포스트모던 미학의 광범위한 영향력 및 의미의 불안정성과 의미의 무한한 지연이 주는 쾌락에 부합하게 된다. 역사가 담론의 구성이라는 결정적인 지점을 만들어내는 와중에 포스트모던 이론은 표상의 체계들을 사회적 생산의 장소와 다시 연관시키는 일을 곤란하게 만들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시에 대한 거부는 아마도 포스트-산업 경제 형성체라 불리는 오늘날의 변화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이론들이 정치적·경제적 현실성들의 베일을 벗기는 데에 치중했던 동안, 정신분석학과 기호학의 영향력은 질문 속으로 실재를 현실적으로 접합해낼 가능성을 제기했다. 분석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담론들과 표상들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적이고 미학적인 전환이 그 자체로 자본주의적 기술과 경제학의 물질적 현실을 포함하는 변화와 발전을 반영하고 있음 또한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한때는 어떤 부정적인 이데올로기적 내포의미들을 실어나르는 것이었던 물신이 다시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다. 프로이트가 페티시즘의 특징으로 여겼던 부인의 구조는 정신분석학과 기호학 이론의 문제틀을 버리지 않고도 지시의 곤경을 재형성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정신분석 이론은 페티시적 부인과 무의식의 언어 속 전치의 과정을 구분하고 있다. 양자의 경우 모두에서 기호와 지시체 사이의 연결은 사라지지만, 부인 개념은 지시체가 전치되는 동안에도 지시체에 관한 질문을 함축하고 있을 수 있다.

생산 과정의 가시성 혹은 비가시성은 영화 이론 논쟁에서 결정적인 장소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의 상품으로서 할리우드 영화는 또한 자기발생적인 매혹의 사물로서 시장에 나타났으며, 영화의 볼거리라는 속성은 스크린 위의 아름답게 광택이 나는 표면으로 융합된다. 영화는 이미지가 발생하는 기계적 과정 너머에, 그보다 상위에 있는 의미 생산의 체계이자, 기꺼이 믿음을 유지하면서 지식을 유예하는 정신을 가지고 유희하는 특별한 능력과 함께하는 의미 생산 체계이다. 생산 과정은 이미지를 낳으며, 이미지의 구성은 매혹을 낳는다.

 

 

클로즈업과 상품

 

클로즈업, 특히 여성 스타의 클로즈업은 산업으로서 영화 및 관습들의 집합체로서의 영화를 발전시키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스타 시스템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 영화 산업이 일제히 할리우드로 집중되기 이전 시기, 미국 영화 산업의 초창기부터 발전되었다. 다른 산업들이 구매욕을 촉진하고 광고하는 일을 화려하고 빛나게 발전시켰던 것과 같이, 영화 산업은 스타의 가시성에 투자했다.

그러던 중 1920년대에(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새로운 여성들이 출현한다. 할리우드는 이 새로운 여성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경영되었다. 동시에 이 말걸기와 인정은 소비주의 담론을 경유하는 것이었다. 이는 188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성인 여성 인구(영화 산업에서 중요한 관객이기도 했던)가 증가하고, 여성의 성욕에 관한 새로운 담론이 초기 영화의 특정 장르에서 성애화된 응시의 대상으로서 여성의 몸을 구성해내며 상연되는 일이 증가했던 속도와 맞물리는 것이었다. 할리우드가 특유의 현대성을 만들어낸 것도 바로 이 시기였지만, 1920년대가 그저 현대성의 시기이지만은 않았다. 성적 자유에 관한 담론은 새로운 여성이 생산해낸 백래시backlash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 담론적 시류의 표면적 비도덕성은 오늘날 가족적 가치라고 알려진 것의 지지자들에게 거센 도전을 받았다. 이들의 분노는 도덕을 위축시키는 주범으로서 영화에 집중되었고, 검열을 위한 기구를 조직했다. 할리우드는 이제 성애화된 화려함과 세련된 비도덕성의 동의어가 되었다.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볼 때 후기 무성영화 시대의 할리우드 영화에 나타나는 성적인 이미지는 모순적이다. 이 시기 할리우드 영화가 여성에게 말을 거는 담화들은 성을 통제하는 구식 표준과 성욕의 새로운가능성을 절충하면서 해방과 억압 둘 모두의 입장을 표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편으로 할리우드 영화들은 에로틱한 기표로서, 그리고 영화 자신의 시선을 빼앗는 잠재력의 트레이드마크로서 성적 매력이 부여된 여성 이미지에 바람직함의 치장물을 부여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성 이미지는 상품 볼거리와 융합된다. 더 나아가 할리우드는 영화 관람객의 세계를 가로지르며 구매욕이라는 희번덕거리는 기적의 빛을 투사했다. 이는 화려함의 민주주의이자 상품 구매 민주주의의 국가인 미국을 떠받쳤던 것이다.

이러한 기존의 모순적 배열 속으로 도덕적 공황이 끼어든다. 1915년 즈음, 영화는 연방대법원에 의해 자유롭게 발언할 자동적이고 헌법적 권리를 부정당했다. “표현의 자유는 영화에서는 부정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악에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판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검열의 도입은 성적인 것을 영화 밖으로 몰아내지 못했다. 검열의 효과는 성적인 것을 불확실한 현대성의 영역으로부터 성욕의 기표로서의 여성에 집중된 시각의 새로운 절정 속으로 전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들은 오늘날 대중문화,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여전히 중요하다. 영화의 첫 번째 세기가 문을 닫고 있지만, 그리고 할리우드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투자가 다각화되었지만, 할리우드는 여전히 진열장 영화들(show-case movies)을 생산하고 있다. 자유주의의 사회적 말소가 스크린 위에서의 악당들의 허구적 말소와 공명하듯이, 스크린을 점령한 볼거리로서 폭력은 또 다른 이율배반의 자리를 거의 빼앗아버렸다: 여성 이미지가 노닐었던 성적 역할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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