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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5주차 쪽글] 민주주의의 독미나리: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거버넌스2019-04-26 05: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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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독미나리: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거버넌스

 

민주주의 살해하기(2017) 3장과 4장에서 웬디 브라운은 푸코철학을 확장시켜, 현대적인 신자유주의 방식을 분석한다. 3장은 푸코가 간과한 개념인 호모 폴리티쿠스호모 에코노미쿠스에게 잠식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4장은 새로운 정치 합리성으로 부상한 거버넌스와 그 대표적 예시인 모범사례를 다룬다. 브라운이 두 장에 걸쳐 선보이는 것은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거버넌스가 신자유주의와 교차할 때, 민주주의는 교묘하게 재정의되고 파괴된다는 것이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분명히 북미·유럽권의 근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 영역을 확장했다. 하지만 호모 폴리티쿠스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그 시대에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 또 호모 폴리티쿠스는 푸코가 말하는 호모 주리디쿠스호모 레갈리스로 대체될 수도 없다.”(128)

 

브라운은 3장에서 서구 정치 이론사에 기록된 호모 폴리티쿠스와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지위를 대조한다. 둘 사이의 관계는 시대를 막론하고 후자에 대한 전자의 명백한 종속의 성질을 띤다. 전근대를 장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의 논리를 호모 폴리티쿠스의 자급자족 외에는 적용하지 않았고, 따라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존재론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부정당했다. 스미스나 벤담, 밀 등 근대 학자들에 의해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의 본질적 측면에 관여하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본질 그 자체로는 확립될 수 없었다. 브라운은 그 이유로 자기-주권의 필수 조건인, 결코 쉽지 않은 합리성의 체화”(126)를 꼽는다. 근현대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협상(스미스쾌고 계산(벤담, 충동(프로이트) 등 다양한 욕구에 이끌리는 것을 긍정하면서도, 이성을 통해 스스로를 제어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호모 에코노미쿠스와 동시에 존재해온 것은 푸코가 말하는 권리의 주체”(109)같은 것이 아니라, “국민주권의 실현에 의해 그리고 그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이자 스스로를 통치하는 주권적인 존재인 호모 폴리티쿠스이다.(110-111)

 

문제는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면서 발생한다. 신자유주의 이성이 국가와 주체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을 경제화하면서, 호모 폴리티쿠스와 개인 주권의 동치관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전방위적 경제화로 형성된 신자유주의적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시장 원칙 이외의 다른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다. 이러한 대체 과정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여성이다. 호모 폴리티쿠스조차 항상 남성적인 기질과 활동 공간을 전제로 했지만, 주체가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완전히 대체되면 필수적인 자원 봉사에 동원되는 가정의 노동력 그리고 시장과 가정 간 젠더화된 노동 분업에 대한 분석이 사라진다.”(139) , 신자유주의적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확산은 돌봄과 재생산에 관한 노동을 암묵적으로 여성에게 떠넘기고, 그러한 강요에 대한 구조적 분석은 경쟁하는 인적자본들 사이에서 떠오를 수 없게 된다. 세 장에 걸쳐 신자유주의 이성의 정의와 양태를 분석한 브라운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성이 전파되는 방식으로 논의를 진전시킨다.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거버넌스 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다. (...) 거버넌스는 그 속성이 본래 신자유주의적이지도 신자유주의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지만, 신자유주의는 거버넌스의 형성과 발전을 동원하는 동시에 점점 더 그것에 포화상태가 되었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거버넌스를 동원하고 그것에 집중하여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명확히 표현해서 신자유주의 합리성을 동시대의 존재 전반에 전파하고 정치의 속성과 의미를 탈바꿈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번 장의 초점이다.”(161)

 

4장에서 신자유주의 이성의 나팔수로 꼽히는 것은 거버넌스정치 합리성이다. 정치 합리성은 푸코가 사용한 용어로, “규범적 이성의 헤게모니 질서”(158)로 정의된다. 정치 합리성은 우연적이면서도 완전무결한 것처럼 가장하며, 인간 삶의 모든 것과 관계를 조직하고 양산하는 지식이며 권력이다. 거버넌스는 이러한 정치 합리성의 일종으로, 신자유주의와 동일하지 않되 신자유주의 이성의 전파에 동조하는 역할을 하였다. 폭넓게 쓰이는 거버넌스 개념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은 통치 중심의 탈중심화”(165)이다. 통치 체제나 명령은 사라지고 여러 조직이 권력을 나눠갖게 되어, 주체는 기존의 통제 대신 관리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거버넌스의 이런 특성이 신자유주의 이성과 결합하면서 낳는 영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영역이 경제화되어 목적이 경쟁 우위의 점유로 고정된다. 그 결과로 내부적인 논의와 투쟁은 권력이나 정치라는 이름으로 묶여 부정적이고 적대적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탈정치화현상은 협력과 실행을 대안으로 내세우지만, 갈등은 그 이면에 상주하기에 거버넌스의 정치는 정치에 대한 멸시를 더욱 부추기는 술책과 거래로 움직이게 된다. 둘째, 중앙집권적인 공동권력은 유명무실할 정도로 쪼개져 개인이나 개별 부서에 이임된다. 하지만 이임된 권력은 뒷받침할 자원도 없이 전달되어 유명무실한 것에 비해, 개인과 개별 부서는 자신의 생존 뿐 아니라 신자유주의 이성의 절대적 목표인 경제 성장까지 책임져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러한 과정을 브라운은 책임화라고 명명한다.

 

탈정치화와 책임화는 각각 민주주의 재정의와 모범사례라는 현상을 낳게 된다. 탈정치화는 민주주의에서 권력심의라는 지표, 한도와 제약 설정에 대한 적당한 지배력과 근본적인 가치관과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169)을 제거한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거버넌스가 남은 지표인 포함참여만을 가지고 새롭게 정의한 민주주의는 순전히 절차적이고 공허한 것으로 변질된다. 이와 동시에 모범사례, 그리고 모범사례를 받아들이는 벤치마킹은 모든 조직의 궁극적 목표가 똑같다고, 즉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의 확보에 있다고 추정”(182)한다. , 모범사례 개념의 근저에는 국가와 비영리기관과 같은 공공의 영역도 민간기업처럼 시장 가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뒤따르는 것은 호모 폴리티쿠스를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대체한 것과 동일한 현상이다. 여타 가치는 시장 가치로 환원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시장 가치로 환원되었기에, 모범사례는 이전까지의 공적 가치를 대변하고 수호하던 법과 규제를 축소시키고 대체해나간다. 이러한 모범사례의 확산이 거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이성을 위해, 미시적으로는 모범사례를 생산하고 주도하는 업계 리더들을 위해 작동한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신자유주의 거버넌스 하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두 과정은 정치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민주주의와 이를 수호하는 법 모두가 유린되는 현장이다.

 

신자유주의 분석 틀에서는 서로 경쟁하고 자기 가치를 제고하는 인적자본만이 존재하며 복잡하고 지속적인 성적 불평등은 성적인 차이에서 기인하는 걸로 본다. (...) [책임화된 신자유주의 주체가 되는 기획의] 실패만이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약화시킨 자유(국가 규제와 필요 충족으로부터의 자유)는 여성이 시장 밖에서 보상받지 못하고 지원받지 못하는 돌봄 업무의 주요 제공자 역할을 계속 담당하면서, 그러면서도 점차 자신과 자기 가족의 유일한 소득원이 되면서 문자 그대로 새로운 형식의 성 종속으로 전도되었다.”(141)

 

이제 개인은 스스로 자립할 것을(그리고 개인적 실패에 대한 비난을 떠안을 것을) 요구받는 동시에 사회의 경제적인 번영을 위해 행동할 것을(그리고 사회적 번영 실패에 대한 비난을 떠안을 것을) 요구받기 때문이다. (...) 아마도 가장 중요한 사실은, 제 아무리 이들이 책임화의 규범들에 맞춰 잘 처신해 비난을 받지 않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거시경제의 건전성이라는 이름으로 수행되는 긴축정책은 이들의 생계 또는 생활을 합법적으로 황폐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177-178)

 

3장과 4장은 서로 다른 개념어와 접근을 취하지만, 같은 결론으로 수렴한다. 신자유주의 이성은 인간이 누리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시장과 경제의 논리로만 재단하여 재구성한다. 역사적으로는 호모 폴리티쿠스의 말살로, 정치 합리성으로는 신자유주의 거버넌스의 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표면적으로 유지되지만 점차 내용물이 비워지고 연관성을 갖는 범위가 줄어들게 된다. , 신자유주의는 스스로 자유주의를 계승하여 명명되고 정의됨에도, 자유주의가 고질적으로 간과한 여성차별을 악화시키고 그 위에 개인 일반이 인적자본으로서 져야할 책임까지 부과하였다.

 

더없는 자유를 외치는 이념이 자유를 점차 제한하고 있다면, 합리적 개인은 스스로에게 다시금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내가 당신 없이는 얻을 수 없는 게 도대체 뭡니까?” (에인 랜드, 아틀라스 3, 민승남 역, 휴머니스트, 2013, pp.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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