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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4주차쪽글 ]신자유주의라는 이성형식과 민주주의의 공동화(空洞化)(수정본)2019-04-19 15: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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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연 페미니즘 이론학교 시즌02 | 신자유주의와 교차성페미니즘 4주차 쪽글. 취생몽사. 20190419.


신자유주의라는 이성형식과 민주주의의 공동화(空洞化)

-웬디 브라운, 『민주주의 살해하기』,(2018) “1장 민주주의 해체하기”를 읽고-



1.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는 신자유주의를 통치합리성으로 규정하는 푸코의 논의에 입각해서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살피는 저작이다. 신자유주의는 단지 경제정책, 제도, 이데올로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치합리성, 혹은 이성형식이다. 신자유주의는 무엇보다 사회를 구성하는 행위자-개인부터 공공기관, 결사체, 정부 등에 이르기까지-의 품행(conduct)을 지도/지휘/인도(conduct)하는 이성의 형식이다. 브라운에 따르면 이러한 이성형식이 지배적인 것이 될 때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주체성인 데모스는 해체되며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그 내용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난다. 즉 브라운 기본 논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나는 오늘날 행정, 직저장, 법정, 학교, 문화를 비롯한 광범위한 영역에 만연한 신자유주의 이성이 민주주의의 구성요소의 명백하게 정치적인 특성, 의미, 실형을 경제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 (16)


신자유주의는 정치적인 것의 독특성을 규제하는 합리성을 경제적인 것의 합리성에 의해 식민화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사실상 공동화한다는 것이다. 이 쪽글에서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공동화하는지를 브라운의 논지를 따라 정리해보고자 한다.



2.신자유주의적 이성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공동화하는가? 그 핵심에는 통치성으로서 신자유주의가 놓여 있다. 사회전반을 통치하는 합리성의 형식으로 신자유주의 핵심은 경제의 원리에 따라 사회전반을 구성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통치란 근본적으로 ‘행위에 대한 지휘/지도’(conduit de conduit/conduct of conduct)를 의미하는 것인데, 신자유주의 통치성이란 개인의 영혼에서부터 국가의 운영원리에 이르기까지 경제가 합리성의 기준이 되어 개인과 국가의 행위가 규정되는 사태를 의미한다. 즉 영혼과 국가가 경제적 합리성에 의해 재정립되는 것이다.

이는 ‘비경제적 공간의 경제화’라는 사태로 이해할 수 있다고 브라운은 논평한다. 그러나 브라운이 강조하는 것은 이때의 ‘경제화’가 금전적 이윤/이익의 추구를 넘어선다는 점이다. 반드시 금전적 이익의 창출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통치성은 모든 행위자들이 시장의 행위자, 즉 기업을 모델로 행위하도록 지도하고자 한다. 경제적 합리성에 따라 행위하는 호모 에코노모쿠스의 신자유주의적 형태는 기업가적 주체, 혹은 인적자본인 것이다. 

특히 브라운은 푸코가 통치성이란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분석하던 1970년대말과 달리 오늘날 신자유주의 통치성은 기업가적 주체성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금융화된 인적자본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드시 금전적 이익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투자를 통한 자신의 가치를 상승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행위하는 주체가 금융화된 인적자본이다.


따라서 금융자본의 시대가 빚어낸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주체성 및 행위는……인간이라는 존재를 인적자본으로 재규정하고 있으며 이익을 극대화하던 초기의 호모 에토코미쿠스는 기업의 일원이자 기업 그 자체인 그리고 그 둘 모두에서 기업에 적합한 관행을 답습한 행정 관행이 적용되는 경제인의 모습으로 대체되고 있다.(40~41)


즉 신자유주의적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벤담이나 밀 등의 고전적 자유주의가 말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와도 다른 모습이다. 이제는 사회의 모든 행위자가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되며, 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교환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아니라 경쟁력 제고와 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인적 자본의 모습을 띄며,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주활동영역이 금융 자본, 투자 자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적 주체, 금융화된 인적자본로서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무엇보다 시장의 합리성에 입각한 행위자인데 이때 시장의 합리성이란 푸코의 주장대로 교환이 아니라 경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적 주체(인적자본)는 다른 주체(인적자본)와 경쟁하는 주체이다. 기업과 개인은 동일한 경쟁에서의 승리를 추구하는 합리성에 의해 동일하게 지도된다.


3.신자유주의 통치성의 헤게모니에 의해 사회구성원들이 개인에서부터 정부까지 기업화되면 이 사태는 정치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브라운은 다섯가지 결과를 주목한다.


⓵개인은 자신만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기업이나 국가 등의 집단을 위한 인적자본이 된다. 이는 개인은 스스로의 가치상승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개인이 속한 기업이나 국가의 관점에서 그 개인이 기업이나 국가의 가치상승에 방해가 된다면 정리될 수 있음을 뜻한다.


⓶불평등이 경쟁하는 자본들의 소통을 매개하는 원리가 되며, 경쟁의 장 자체를 지배하는 원리가 된다. 더 이상 평등은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⓷모든 존재가 자본으로 규정되어 노동자도 인적 자본이 되면 노동계급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도 사라지게 되며, 계급불평등을 분석할 수 있는 지적 근거도 무의미해진다.


⓸정치영역도 경제화되면서 시민권의 토대가 되는 공공재/공통재의 영역이 사라진다. 이는 근본적으로 시민권의 정치적 유의미성과 그것이 작동하는 현장 자체가 사라지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민주주의 주체인 데모스가 해소되는 것을 의미한다.


⓹국가의 일이란 국가 자체의 경제적 가치평가 상승이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고전적 관심사였던 정의의 문제는 더 이상 국가의 일이 아니게 된다. 신자유주의 통치성 하에서 추구되어야 할 정의가 있다면 그것은 경쟁의 보장이나 경제적 가치평가 상승을 지원하는 것이다.


4.이 모든 논의는 결론은 무엇인가? 이는 민주주의의 공동화, 혹은 형해화이다. 공공성의 영역과 가치가 축소되고 이 영역에 대한 정치적 시민의 참여는 감소되며 기업들이 국가의 법과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사태가 도래하게 된다. 이는 근본적 시민의 정치적 삶(bios politikos)의 쇠퇴이며 정치적 삶이 사라진 곳을 그저 생명체에 불과한 삶(zoe)이 채우게 된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가 필수적 상업화나 수익 중심 확장 같은 장치가 아닌 자본주의적 평가 방식이라는 형태로 인류를 마침내 삼켜버리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합리성이다. 자본주의적 평가 방식의 보급으로 자유민주주의 내용은 비워지고 민주주의의 의미가 순식간에 변하며 민주주의적 열망은 퇴색하고 민주주의의 꿈도 사라진다. (54)


즉 민주주의의 조용한 죽음이 도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에서의 경쟁이라는 원리가 사회전반을 지배하게 되면 데모스에 근거한 정치의 자리는 사라진다. 그것도 강압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합리적 주체들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란 호모 폴리티쿠스의 안락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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