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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4주차 쪽글] 성을 사유할 때2018-10-28 1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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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사유할 때



게일 루빈의 성을 사유하기(1982)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미국 사회의 정치적 탄압을 비판하면서 그것이 구성해내는 섹슈얼리티 개념의 허상을 논파하고, 섹슈얼리티에 대한 급진적 관점이 정립되어야 할 필요성과 그에 필요한 방향을 제시한 시론(試論)이다. 루빈은 성행위 탄압은 사회 곳곳에 만연한 불안을 대체하고 이에 수반되는 강렬한 정서를 방출하기 위한 정치적 보조수단(p. 282)이라고 밝히며, 아무리 성범죄, 매춘, 외설 단속, 아동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워도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동성애자 및 성판매자 탄압일 뿐이었으며, 특히 이 글이 써진 80년대에는 극우논리(성소수자 차별뿐 아니라 반공, 인종차별, 여성차별, 성장주의까지)를 강화하는 구실로 활용되었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탄압은 섹슈얼리티 개념의 차원에서 성을 사회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적 힘으로 보는 성본질주의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주장했듯, 사회형벌체계 내에서 섹슈얼리티와 성억압이 동시에 구조화되기에, 성을 사회적 분석과 역사적 해석의 관점으로 이해해야 더욱 현실적인 성정치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단일하고 이상적인 섹슈얼리티의 개념이 근대 서구 사회에 의해 설정된 내용이라는 것을 알면, 성 경험 역시 성 이데올로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점, 그리하여 성행위의 정의와 평가도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격렬한 경합의 대상(p. 327)이 된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결국 성행위는 성적 가치의 위계질서에 따라 평가(p. 300)되고, 이를 통해 성적 상층민의 호강과 성적 하층민의 역경이 합리화(p. 303)되며, 선은 지배집단, 악은 하층민들에게 배분된다. 이런 섹슈얼리티의 구성(위계화)이 성도덕을 계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성애 집단을 배제, 착취하고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실제로 게이, 창녀, 복장 전환자 등은 광범위한 법적 규제의 대상이 되었으며, 실업 및 저임금으로 인해 도심 주변부로 밀려나 빈곤에 시달리다 다시 재개발로 인해 쫓겨나는 과정을 겪었고, 도덕적 공황의 타겟이 되었다. 이렇게 성 계층화 체계는 자기방어력이 결여된 희생자들을 공급하고, 그들의 운동을 통제하고, 그들의 자유를 축소하기 위한 기존 장치들을 제공한다(p. 332).


그러나 당시 페미니즘은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무능한 모습을 보였다. 본래 페미니즘이 성과 맺고 있는 관계는 복잡하다. 섹슈얼리티는 젠더들 간의 관계의 접점이며 여성 억압의 상당 부분이 섹슈얼리티로 인해 발생했고, 그것을 통해 매개되고, 그 내부에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p. 338). 이 접점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내에서도 여성의 성 행동을 제약하는 것을 비판하고 성해방을 주장하는 쪽과 성해방은 남성 특권의 확장일 뿐이라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쪽이 모두 존재했으나, 반포르노그래피 운동을 기점으로 사도마조히즘을 암시적, 노골적으로 비난(p. 333)하는 페미니스트가 결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여성 탄압의 원인을 성교, 매춘, 성교육, 사도마조히즘, 남성 동성애, 트랜스섹슈얼리즘에 대한 생생한 묘사 탓(p. 340)으로 돌리며 여성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이 사도마조히즘을 제거하는 것(p. 334)인 듯 주장했다.


그리하여 루빈이 마침내 성을 사유할 때가 왔음을 선언한 것이다. 페미니즘은 젠더 억압에 대한 이론(p. 293)이기에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조직을 온전히 망라할 관점이 없다(p. 352). 섹스와 젠더가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같은 것이 아니며, 뚜렷이 변별되는 두 가지 사회적 관습계의 기초를 형성(p. 350)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독립된 사회적 존재를 한층 더 정확하게 반영하기 위해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분석적으로 분리하는 것이 긴요하다(p. 350)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섹슈얼리티에 대한 급진적 관점의 개발이 시급하다”(p. 293)고 선언한 루빈은 성과 성정치를 사유하기 위한 기술적 개념적 체계의 요소로서 섹슈얼리티 이론에 필요한 내용, 즉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치밀한 개념적 도구인 사회와 역사에 존재하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풍부한 서술과 잔학한 성적 학대를 전달할 수 있는 설득적이고 비판적인 언어를 마련하고자 한다(p. 294-295 참고).


이 글은 페미니즘 운동과 퀴어 운동이 연대하기 위해 마련해야 할 원칙 중 한 가지를 매우 명징하게 제시해준다. 여성과 퀴어가 남성중심(젠더)/이성애중심(섹슈얼리티) 체계로 인해 공히 억압을 받고 있지만, 여성이라는 젠더가 이성애를 근거로 정의되고 구성되는 개념인 한, 그들은 자신의 존재근거를 비판할 수 있는 만큼이나 옹호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젠더 억압에 대한 관점으로서의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 억압에 대해 한 가지 필연적 입장을 제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 억압(퀴어 운동)에 대해 어떤 입장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그 방향은 다시 한 번 섹슈얼리티 탄압의 정치적 메커니즘에 주목하며 모색해볼 수 있다. 이 사회가 섹슈얼리티 탄압을 통해 구성하고자 하는 정상 섹슈얼리티는 무엇인가, 그것을 통해 구축하고 보호하려는 체제는 무엇인가, 그 체제 속에서 여성은 어떤 지위인가. 80년대 미국이 섹슈얼리티를 탄압하면서 결국 양성평등 수정조항 무산, 낙태 금지, 10대 여성 순결 강요, 여성학 강좌 공격 등의 성과를 함께 이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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