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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주차 쪽글] 페미니즘이 정신분석학을 사용하는 방법2018-10-19 10: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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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은 이론의 성차별적인 함의에도 불구하고 이성애-남성 중심의 젠더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게일 루빈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진입하는 시기에 남성과 여성이 팔루스를 중심으로 다르게 분화되는 것에 주목한다. 주지하다시피 남아는 어머니에 대한 근친상간의 욕망이 아버지의 의해 팔루스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거세 콤플렉스에 의해 극복된다. 루빈에 따르면 거세 콤플렉스는 단순한 위협이 아니다. 아버지로부터 남성에게 팔루스가 양도되는 지연의 과정이다. 남아는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지연시킴으로서 자연스럽게다른 여성을 욕망할 수 있는 젠더 체계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여아의 경우 어머니에 대한 애착은 자신에게 팔루스가 결핍되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버지와 달리 자신은 팔루스가 없으니 어머니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팔루스를 선망하게 되면서 (팔루스를 가진) 아버지와 같은 남성을 수동적으로 욕망하게 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정신분석학에서 설명하는 이성애 남성/여성의 분화의 구조다. 여기서 루빈은 이러한 성적 분화가 자연적인 영역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영역을 사회적인 영역으로 체계화하는 가운데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이성애 남성/여성이 성차별적으로 분화되는 것은 팔루스의 유무 때문만이 아니라, 여성이 양육을 전담하는 가족 구성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여성 교환이 이루어지는) 친족 체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루빈은 친족 체계에 대한 역사유물론적 분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러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구성되는 이성애 주체를 주디스 버틀러는 흥미롭게도 우울증과 연결시킨다. 정신분석학에서 우울증은 상실된 리비도의 대상을 애도하지 못한 채, 리비도의 에너지가 자신에게로 복귀하여 자아를 징벌함으로써 상실된 대상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우회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신질환으로 설명된다. 버틀러에 따르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발생하는 이성애 주체는 필연적으로 우울증을 통과할 수밖에 없다.


여아의 경우 어머니라는 애착의 대상이 상실되는 경험을 하는 동시에 리비도 투자의 대상이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뀐다. 남아와 달리 여아는 어머니와 다른 여성으로 리비도의 투자 대상이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실되는 것이다. 여아는 리비도 투자 대상이 남성으로 향하기 위해, 즉 이성애 주체가 되기 위해 다른 여성을 향한 리비도 투자가 상실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성애 젠더 체계에서 동성애는 허락되지 않는다. 즉 여아는 상실할 수 없는 대상(리비도 투자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상실해야지 만이 이성애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울증의 핵심이 대상을 떠나보내지 못한 리비도가 자기에게 복귀한 채로 잔존한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성애 젠더 체계에서 이성애적 여성 주체는 동성애적 리비도가 우울증적으로잔존한 채로 구성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남아의 경우는 어머니로부터 풀려난 리비도가 남성으로 향하는 것이 미리 폐제되면서 이성애 주체가 된다. , 남아는 불가능한 것(남성에게 리비도를 투자하는 것)을 부정하는(나는 남성에게 리비도를 투자한 적이 없다) 이중부정으로부터 이성애적 주체가 된다. 마찬가지로 이성애적 남성에게도 상실될 수 없는 대상의 상실을 겪는다는 점에서 우울증적으로 동성애적 리비도가 잔존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버틀러는 이성애 젠더 체계에서 이성애 주체는 잃어버릴 수 없는 대상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우울증적이고, 그리고 그 주체 안에는 언제나 동성애 리비도가 잔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루빈이 정신분석학에서 설명하는 이성애 주체의 발생 과정이 이성애 젠더 체계를 전제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면, 버틀러는 정신분석학 메커니즘 내부로부터 이성애 주체의 불완전성과 전복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버틀러에게 흥미로운 지점은 이성애 주체가 당연하지 않고 복수적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성애 주체의 억압적 상황을 정신분석학적인 우울증으로 분석했다는데 있다. 이성애 주체가 되기 위해선 동성애를 거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동성애적 리비도가 자신에게 복귀하여 자신을 징벌해야 한다. 즉 동성애적 리비도를 투자할 수 있는 자아는 우울증적 주체가 자아를 파괴하듯 파괴의 대상이다. 이러한 이성애적 주체의 우울증은 동성애를 단순히 부정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혐오라는 강력한 정서를 투자하게 만드는, 이성애 주체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리비도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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