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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주차 쪽글] 탈환의 지점2019-04-12 13:3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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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영점의 제2부 제9세계경제에서 노동력의 재생산과 끝나지 않은 여성주의 혁명을 중심으로 재생산이 경제 세계화에서 어떤 재구조화를 당했는지, 재생산노동이 겪은 변화들이 남녀의 성별분업과 남녀관계를 어떻게 조형해왔는지 살펴보고 삶의 통제력을 자본으로부터 되찾는 방식이 무엇일지 여성의 투쟁의 가능성을 짚어본다.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압도하고 역사의 종언 혹은 완성을 말하는 이때에 역사의 시작을 감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여성들이다. 여성주의자들은 맑스 혹은 맑스주의가 자본주의를 필연적이고 진보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문제 틀을 구성하는 데 많은 제한을 주었다고 말한다. 일상의 가치, 즉 재생산노동의 가치가 폄하 은폐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적 축적은 진행되어 왔지만, 맑스가 가사노동을 도외시하였기 때문에 노동착취의 진정한 범위와 임금이 노동계급 내, 남녀관계를 분열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투쟁자들의 이러한 오판은 자본주의가 노동력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재생산 비용을 평가절하 하는 것을 손쉽게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문제의 틀을 다시 성취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 관점에서 재생산 문제를 제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착취도 투쟁도 임금노동의 주체와 무대에서 일어난다고 하는 문제 틀의 설정이 전체 문제적 상황의 부분만을 대표한다는 것을 왜 논의해야하는가? 무엇이 노동을 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인간해방을 위한 투쟁 지점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저자는 맑스가 여성의 재생산노동을 무시한 것은 그가 혁명의 기술주의적 개념에 물들어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맑스는 자유가 기계를 통해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노동의 생산성 증가는 공산주의의 물적 기초라고 가정하며,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을 다른 모든 형태의 생산을 떠받치고 있는 역사적 합리성의 최고의 모델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맑스가 재생산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 노동을 구성하는가와 관련하여 자본주의적 기준을 받아들이고, 유급산업노동을 인간해방을 위한 전투가 치러지는 무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관점을 유지하게 되면 재생산노동부문에서 일어나는 여성들의 투쟁의 역사적 중요성을 파악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노동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누가 노동계급인지, 계급투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온전히 정의하지 못한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와중에 투쟁은 계속된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전개된 가사노동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은 노동자의 생산이 일()단위와 세대 단위로 이루어지는 가정이라는 플랜테이션농장과 조립라인의 거대한 순환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불생산노동을 떠받치고 있는 노동의 자본주의적 조직은 부불재생산노동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여성주의자들은 노동력의 재생산이 상품의 소비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활동들과 관계된다는 사실도 밝힌다. 여성의 재생산노동은 노동력이 아니라 살아있는 개인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페데리치는 노동력이라는 개념이 재생산노동에 내재한 이중적인 성격과 모순을 드러내준다는 측면에서 여전히 논쟁의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가사노동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우리 자신이나 타인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제약에 매여 있다. 동시에 노동력은 살아있는 개인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한편 시초축적도 계속된다. 세계경제는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투쟁에 대응하여 재생산의 조직방식과 계급관계를 변화시켰다. 재구조화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노동시장의 확장이다. 전지구적 엔클러저 과정, 그리고 여성고용의 증가로 세계프롤레타리아트의 규모가 크게 성장하였다. 다음으로 자본의 탈영토화와 경제활동의 금융화는 시간의 지연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며 노동자들의 저항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시초축적을 영구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바탕을 다졌다. 셋째, 국가 구조조정 프로그램과 복지국가의 해체로 노동력재생산에 투자 체계가 철회되면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재생산비용을 떠안게 되고, 이로 인해 노동력재생산의 모든 절합지점에서 축적이 진행되게 되었다. 넷째, 기업들의 삼림, 해양 등을 과용하고 파괴하는 일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러한 신경제질서는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확대하고 위계구조를 심화시켰다. 이에 따라 반식민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이 약화시켰던 성별 및 국제노동분업이 다시 만연하게 된다.

 

이런 조건 위에서, “세계경제에서 젠더관계와 여성노동, 재생산노동의 지형을 그려본다. 먼저 생산과 재생산 간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상이한 양상들이 있다. 생산은 세계경제의 핵심영역에서 기술적인 도약을 통해 재구조화 되어왔지만, 가사노동영역에서 재생산 노동을 줄여주는 기술적 혁신은 없었다. 순수하게 물질적이지도 비물질적이지도 않은 재생산노동의 성격 때문에 기계화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기술적으로 발달한 나라에서조차 가사노동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시장화 되어 대부분 남반구와 구사회주의 국가 출신 이민자 여성에게 재분배되었다. 눈 여겨 봐야할 점은, “구조조정과 경제의 재전환 이후 재생산노동의 재구조화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 대도시 노동력 재생산의 많은 부분,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노동과 남성 노동자를 성적으로 재생산하는 일이 남반구 출신의 여성이민자들을 통해 수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환경은 여성 내 권력관계 혹은 분열을 야기하고 재생산 노동의 상업화로 인한 삶의 침탈을 결과했다. 지금 재생산노동의 자본적 관계의 어떤 점도 여성을 해방시키거나 재생산노동에 내재한 착취를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모든 나라에서 아직도 여성들이 부불가사노동의 대부분을 떠안고 있으며, 사회적 서비스와 산업적 생산의 분산은 가사노동의 양을 가중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적 세계화에서 비롯된 충격을 흡수한 집단은 국가의 투자 철회를 자신의 노동으로 상쇄한 여성들이었다. 공공기관에서 전통적으로 해왔던 업무의 많은 부분이 사유화되거나 가정에 떠넘겨져 여성의 부불노동을 활용한다. 산업적 생산의 분산과 비공식노동의 확대도 재생산노동을 집으로 할당하는 요인이다.” 고용주는 노조가 없는 노동력, 임금을 최저수준으로 주어도 되는 가정에서 노동을 조직한다. 집 안이든지 집 밖이든지 젠더에 착종된 재생산의 재구조화는 젠더노동의 위계를 공고화한다. 남성 실업이 증가함에도 여성은 여전히 남성임금의 일부만을 받으며,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양적, 질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여성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지 않으면서 재생산의 대상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재생산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자본과 시장의 논리 밖에서 재생산노동과 관련된 새로운 협력의 형태를 창출함으로써 재생산을 둘러싼 집합적 투쟁의 문을 다시 여는 것이라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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