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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 세 여자2020-04-06 18: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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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여자>1,2권 쪽글

길혜민 


  식민지 상태에서는 신체와 정신의 양면으로 예속의 상태에 빠지도록 인도되고 강요받는다. 마치 자신이 식민지배자의 민족이 되어야만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에 맞춰 말과 태도를 바꿔야만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세 여자’는 마르크스주의로 돌파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성 동지들과는 다르게 세 여자는 부녀들의 해방의 길이 모색되어야 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식민지 조선에서의 여성이 처한 상황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과 독립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혁명가로 알려진 세 여자가 살았던 시대는 “역사의 가장 음침한 골짜기, 비유가 풍자가 아니라 말 그대로 ‘헬조선’, 조선이라는 이름의 지옥”(2권,377쪽)이었다. 그녀들 자신이 믿고 동지들과 나누었던 사상을 현실로 만들어가기 위해 조선의 지하와 그 바깥에서 살았던 시기는 이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도 조선은 마찬가지로 지옥이었다. 세죽, 명자, 정숙이 활약했던 상해, 러시아, 북한, 조선, 만주라는 공간에는 혁명가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이주민이 존재했다. 

  한편 우리는 조선 출신의 직업이 혁명가인 여성에 대한 상상은 빈약하기만 하다. 남성 혁명가와 여성 혁명가는 무엇이 다를까. 흔히 ‘아지트 키퍼’, ‘하우스 키퍼’라 불렸던 혁명가의 ‘여자’는 이 소설이 거부하는 존재 방식이며 혁명이 아닌 남성 혁명가에게 복무하는 여성의 모습이다. 이러한 성별 이분법적인 접근으로만 여성 혁명가를 이해하기에 거리를 두면서 점차 소설 읽기는 믿음과 상실 그리고 ‘길을 잃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세죽, 명자, 정숙이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자신의 혁명이 좌절될 때마다 다시 길을 만들어내려고 하는 과정은 ‘길을 잃어가는 과정’이면서 혁명가가 살아가는 삶으로 보인다. 

  사상에 대한 믿음과 혁명을 향한 투쟁이 ‘길을 잃어가는 과정’으로 되어가면서도 이들이 얻는 것은 성찰이었다. 자신을 더 닦아 내세우는 성찰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동료를 잃고 또는 동료를 얻어가는 과정에서 길어올리는 성찰이다. (그 성찰이라는 것이 세계를 탈식민화할 수 있는 특효약은 아니지만) 특히 허정숙이 가졌던 김일성에 대한 인상은 그녀가 살아온 삶의 반영의 한 장면이었다. 


이 서른네 살 청년의 자신만만한 태도에서 소련군정의 후광이 어른거린 건 사실이지만 정숙은 등 뒤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사람 자체에 호감을 느꼈다. 그는 활달하고 말도 많고 허세와 과장도 섞여 있으며 나이 탓인지 어딘가 유치하고 촌스러운 구석도 있었는데 그런 채로 친화력이 있었다. 정숙은 소련군정이 김일성을 내세운 이유를 알 만했다. 하지만 정치적 수완은 미지수 아닌가. 그녀는 소련군정이 일회용 카드로 김일성을 간택했다는 감이 들었다. 그는 음모가로 보이지는 않았다. (<세 여자> 2권, 106쪽)


허정숙은 조선과 러시아 상해 등지에서 만났던 혁명 운동가들에 대한 경험에 기대어 김일성에 대한 인상을 평가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따라 연안에서 북한까지 갔으며 그곳에 남아있기까지 그녀는 자신의 실패까지도 바로 보았던 존재로 표현된다.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해방된 국가를 맞이하려던 희망이 북한에서 실현되어 나타날 때, 그리고 그것이 결국 1인 독재의 수준에 머물고 말아버릴 때 혁명은 멈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과정에 있었던 허정숙은 자신이 멈춘 자리를 솔직히 바라본다. 


하지만 정숙은 무의식중에 자신이 수상을 응원하고 있음을 깨닫고서 놀랐다. 정숙은 어느 쪽이 이기든 자기가 내놓아야 되는 것이 자리 정도지 목숨은 아닐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녀는 자리라면 언제든 던져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수상 쪽으로 기우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수상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회의 외에 다른 것도 있었다. 판을 깨고 다시 짤 때 생기는 혼란이 싫다는 마음, 이건 무엇인가. 변화를 싫어하다니, 이미 나는 혁명가가 아니란 말인가.

(……) 이건 가장 저급하고 비겁한 보수주의자의 사고방식인데 자신이 어느 결에 이토록 회의주의자가 되었던가, 하고 정숙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에 대한 믿음, 역사에 대한 믿음, 한때 태산도 옮길 것 같았던 그 믿음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세 여자>2권, 298쪽)


여성 혁명가의 생각과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은 전투에 참여하고 투사로 참여하는 것을 재현하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건강하거나 전투로 인해 상처입은 육체의 생생함과 더불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혁명가의 마음일 수도 있어야 할 것 같다.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해방된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허정숙과 그녀의 동료들의 욕망이 최후로 좌초된 곳에서의 곤란, 명자와 세죽의 외로움 그 모든 것이 기억되는 것 또한 여성 혁명가의 역사와 인간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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