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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 트로이카와 세 여자2020-04-06 17: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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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학교 쪽글 . 조선의 <세여자> 1을 읽고. 


트로이카와 세 여자


전주희 


조선희의 <세 여자>는 여러모로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를 생각나게 한다. <경성 트로이카> 역시 1930년대 경성에서 활동한 맑스주의자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의 삶을 다룬 팩션이다. 이 시대는 ‘트로이카’들의 시대였나 보다. 허정숙, 주세죽, 고명자가 <신여성> 트로이카로 불렸고, 이들의 남자들인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도 역시 ‘트로이카’로 불렸다는 것을 보면. 

하지만 이들 세 여자는 ‘트로이카’ 였을까?

<경성 트로이카>의 이재유, 이현상, 김삼룡은 조선공산당 재건을 위해 마치 ‘트로이카’처럼 한 방향으로 질주했다.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역시도 그러하다. <경성트로이카>에서도 여성 혁명가들이 등장한다.(이들도 세 명이다.) <경성트로이카>나 <세 여자>나 조선의 여자들이 ‘맑스-껄’이 되는 계기는 결정적으로 이미 완성된 맑스주의자인 남성 혁명가들이 등장한다. 그들에게 매혹되거나 혹은 설득되거나 어쨌든 여성들은 남성혁명가의 길을 쫓는다. 

<경성트로이카>에서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하우스키퍼’ 역할을 여성 혁명가들이다. 당시 유명 고등학교를 졸업한 최고 엘리트 여성들이 맑스-걸이 되자마자 주어진 임무는 혁명가 남성의 뒷바라지와 부부로 보이기 위한 위장전술로서 ‘하우스키퍼’였다. 고등학교 시절에 남성과 대당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던 여학생들은 본격적인 직업혁명가가 되자마자 다시 부엌에서 남자를 위해 밥을 짓는 역할을, 이번에는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정숙이 ‘아지트키퍼’를 수용하는 세죽을 향해 “넌, 밥하는 거 배우려고 유학 갔니?”라고 하는 나무람은 내가 <경성 트로이카>를 읽었을 때 하고 싶은 말, 하지만 뱉지 못한 말이었다. 대신 나는 이재유와 이현상에 몰두하는 것으로 대신했었다. 

<세 여자>는 당시 풀리지 않았던 ‘하우스키퍼’를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여전히 이미 이론적, 실천적으로 무장된 남성 혁명가들이 먼저 그녀들 앞에 당도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왜 여성 혁명가들이 남성 혁명가들의 뒤에 나오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남성들의 단발과 여성들의 단발이 달랐던 것처럼, 여성들은 우선 ‘집안’에서 벗어났어야 했다. 남성들이 식민지 조국의 암울한 현실 앞에 자본주의를 건너 뛰고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을 향해 질주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여성들은 우선 봉건제적 울타리를 뛰어넘어야 했다. 즉 혁명적 주체로 나아가기 위한 조건이 달랐다. 하지만 여자들의 단발과 남자들의 단발령이 달랐듯이, (일제는 남자들에게만 단발령을 내렸을 뿐이다!), 여자들의 단발은 단숨에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혁명가의 표상을 뛰어넘는다. 

“망국의 청년이라는 암담함에 가위눌려 한밤중에 깨어나 혼자 울었던 경험은 세 남자가 공유하고 있었다. 정숙 자신은 그런 기억이 없었다. 다만 모든 걸 알고 싶고 모든 걸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풍선처럼 부풀다 조선이 식민지라는 사실에 피시식 바람이 빠지면서 백일몽을 꾼 뒤처럼 허탈해지곤 했다.” 레코르 가게 앞에서 엔리코 카루소의 목소리를 듣다가 길거리에 선 채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는 정숙의 감정은 단지 부르주아의 감성이어서만은 아니다. 엔리코 카루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부유하고 고상한 환경 덕분이지만, 세 여자는 각자의 순간에서 길거리에 가다가 울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남성 ‘트로이카’들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에 대비해 세 여자의 감정들은 복잡하다. 

하우스 키퍼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주세죽이나, 그 따위 혁명은 필요없다고 당차게 말하는 허정숙이나, 3.1 운동 당시 두 팔을 힘차게 올리면서 만세를 하기에는 저고리의 밑동이 너무나 짧았다. 그리고 이것은 세 여자를 맑스보이가 아니라 맑스걸로 나아가게 만드는 공통의 자리다. 

그래서 “상황이 우리를 같이 살게 만들었다.”는 세죽이나, “우리 남경으로 갑시다.”라고 세 번째 남자를 선택한 정숙에게 ‘자유연애’냐 ‘혁명’이냐의 구분, 부르주아적 유한마담의 삶을 쫓는 신여성이나 혁명을 택한 맑스주의자냐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의 맑스주의자들은 민족주의자이기도 했다는 모순적인 결합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듯이,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이 하나의 모호한 덩어리인 상태로 세 여자들을 살게 만들었다.

그리고 세 여자들은 ‘트로이카’가 아니라 세 여자로서의 삶을 산다. 

정숙이 맑스주의자로 결심한 것은 박헌영이나 임원근의 박식함이나 신념이 아니라 “가냘픈 허리를 굽히고서 가축처럼 일하는 조선의 며느리들” 때문이다. 정숙은 박헌영이나 임원근의 뒤를 따른 것이 아니다. 

세죽은 어떨까? 세죽이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가장 먼저 버린 것은 겨울 외투였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버린 것은 <공산당 선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까지 <공산당 선언>과 함께 톨스토이의 <부활>을 간직하고 있었다. 김단야가 총살되고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그녀는 <부활>을 함께 챙긴 것이다. 수용소로 가는 길에 갓 낳은 아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를 무릅쓰고 아들과 함께 떠났다. 오래 전, 첫째 딸을 고아원에 맡기자는 박헌영의 뜻을 따르고 ‘잘한 결정’이라고 말했던 세죽의 선택이란, 잔혹할 정도로 다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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