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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입니다!2018-10-05 16: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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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Response paper 1(규식).docx (20KB)

Response paper 1 - 규식

 

우리는 가장 심오하며 어쩌면 가장 급진적인 정치학은 바로 우리 정체성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다른 누군가가 받는 억압을 없애려 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다.’ (p.153, 『페미니즘 선언』)

  위 문장으로 대표될 수 있는 <흑인 페미니스트 선언문>, 정체성 정치학의 급진성에 대한 강조는 내게 페미니즘 이론을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고, 나는 왜 페미니즘 이론을 하는지 등의 질문들에 관한 대답을 더 이상 미룰 수 없게끔 했다. 이에 그 대답을 본고에 정리해보고자 한다. (‘페미니즘 이론을 한다는 것자체도 매우 논쟁적인 표현이나, 본고에서는 아주 단순하게 페미니즘 이론은 전방위적 해방 담론의 하나로, ‘한다는 것공부-토론-글쓰기와 같은 학문적 작업을 한다의 뜻 정도로 사용하겠다.)

 

왜 하는가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을 때 쓰던 답들은 경험적으로 다음의 세 가지로 크게 엮인다. I) 정위(定位) 시도: 페미니즘이라는 거대한 사상사적 흐름 앞에서 내가 취할 위치, 자세를 결정하기 위해서이다. II) 자기 검열: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 혐오에 무비판적이었음을 페미니즘을 통해 깨달았고, 자신과 타인에게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이다. III) 학적 유희: 페미니즘 이론의 정합성, 체계성, 설명력 등이 매우 흥미롭다.

하지만 예의 원인들로 페미니즘 이론을 하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애초에 에 대한 온전한 설명은 불가능하다. 예의 이유 찾기는 결국 내 행위를 촉발한 근거에 관한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행위 근거의 정당화 작업으로서의 이러한 이유 찾기는 행위 이전의 를 가정/규정하게끔 한다. 그런데 이 작업은 회고적인 것만큼이나 인위적이며, 어떤 계기에 대한 불확실한 특정과 해석 혹은 복합성/연속성에 대한 부분적인 포착만을 허용한다. ‘이유 찾기(행위 이전) 정체성 확립 욕구의 발로로, 찾을 수 없는 답을 가정한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이론을 한다는 것에서 왜 하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내 행위를 지금, 스스로, 어떻게 의미화하는가로 이해돼야 한다. 해방 담론으로서의 페미니즘과 그 이론을 하는 데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나는 온갖 기득권적 요소를 가졌다. 신자유주의와 가부장적 질서에서 오는 것을 제외하고 내 고통이 사회적 (구조적) 차원의 것으로 해석될 여지는 많지 않다. 나아가 이들은 나를 뿌리까지 흔들며 고통스럽게 하는, 치유 받아야만 하는 고통조차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게 해방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나의 해방을 바라는가/바랄 수 있는가? 해방과 현실 사이에 타협 가능한 지점들이 전무한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방 담론으로서의 페미니즘을, 이론을 하는 방식으로 전유하는 것은 타인의 해방을 위함일 텐데, ‘는 진정으로 타인의 해방을 위할 수 있는가? 타자화된 해방과 나를 연결할 내면화(혹은 동일시) 기제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타자화된 해방의 형태로 해방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다. 내면화를 필요로 한다는 말로서 내면화되어 있다. ‘진정으로타인의 해방을 위한다는 말에는, 나와 관련되지 않은 일에 나는 전적(全的)일 수 없다는 가정이 있다. 그러나 해방으로의 도정은 동기부여의 문제(나와의 관련성에 비례하는)가 아니다. 동기부여의 문제는 앞서 언급한 왜 하게 되었는가쪽에 있다. 해방 담론으로서의 페미니즘까지 도착하는 길은 모두 다르나 일단 (이론 등의) 페미니즘적 실천/해방적 실천을 시작했다면 그 시작은 등질적이며, 그러한 움직임은 해방에의 기여로서 이미 진정하다’. 해방에의 기여, 소위 진정성으로 매우 거칠게 소묘되는 것, ‘혁명적인 역할을 맡을(로빈 모건, 『자매애는 강하다』)가능성은 그 곳에서부터 이미 성립한다. 따라서 페미니즘 이론을 하는 것은 내게도 해방적 전진(혹은 이바지)으로 추구될 수 있으며, 이는 이론을 하는 것이전의 에 대한 규정과는 별도로 가능하다.

 

정체성 확립 욕구는 끊임없이 행위의 계기와 동기, 정당성, 토대를 찾으려 하지만 해방적 이론-실천의 현장에서 그것은 부차적이다. 현장에 진입하는 순간 페미니스트 실천, 정치학, 변혁, 해방은 당당하게 추구될 수 있다. 나는 다만 행위함으로써 앞으로의 나를 구성할 수 있으며, 페미니즘 이론을 한다는 것과 그 의미 역시 나의 (일면 페미니즘과 대립적인) 정체성과 별개로 충분히 구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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