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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 명자의 고통이 사적인 ‘한’으로 느껴지는 이유2020-04-06 19: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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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자의 고통이 사적인 ‘한’으로 느껴지는 이유


명자가 겪었던 고초는 역사적이며 또한 혁명적이다. 그러나 그가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종종 매우 사적이고 여성적인 ‘한’의 성격으로 느껴진다. 그가 특히 신의주에서 전향서를 작성한 후 아무의 돌봄을 받지 못한 채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고통을 제대로 내색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혼자 좌절하거나 자책하거나 낙심하는 방식으로 감내할 때, 그가 고통을 겪는 방식이 ‘동등한 인간임을 전혀 인정받지 못했던’ 조선 아낙의 방식과 과연 많이 다른지 질문하게 된다.


명자는 처음 혁명운동에 들어오면서부터 그러한 연속선을 역설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부잣집 고명딸이라 투철한 혁명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언니들은 철부지 남편 받들어 모시면서 아침저녁으로 시부모 문안드리고 진종일 수틀 앞에 앉아 병풍에 십장생 새겨넣는 거 생각해봤어요? 그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에요.”(1권 2장)라고 답하며 구식여성 역시 삶 속에서 일상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으며 따라서 얼마든지 의식적으로 혁명에 투신할 수 있는 모순을 담지하고 있는 부류이자 연대의 기반을 가진 집단임을 보여주었다. 


또한 명자는 혁명운동 내 성별분업의 차원에서도 계속 ‘공적 활동’보다는 ‘사적 활동’의 영역에 매여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의 고통이 사사화되는 측면이 있었다. 특히 비슷하게 혁명의 집안일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해도 세죽은 정식으로 결혼한 남편과 자식을 통해 제도적으로 공인될 수 있는 여성의 위치에 있었다면, 명자는 단야든 여운형이든 현장에 남자의 보조로서 활동을 하는 순간 외에는 제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안사람”의 위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활동은 매우 불안정하고 임시적이었으며 그의 공적은 철저히 비가시화되는 상태에서 그의 고통 역시 역사적인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명자는 다른 여성의 ‘사적인’ 고통과 긴밀한 연관을 맺어가는 구심의 역할을 한다. 먼저 그는 유부남인 단야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선언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지독한 고통에 처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물론 명자는 모친이 고통받는 이유에 사상적으로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끝까지 그 고통에 뜻을 굽히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전 세대 여성이 자신이 굳게 믿고 있던 가치관을 도저히 관철시킬 수 없는 시대를 맞아 딸조차도 인정해주지 않는 혹독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그 순간에 같이 있었다. 그리고 내색하지 않아도 그 고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민한다. 또한 명자는 남편과 자식을 잃은 주인집 아낙이 빨래 방망이질을 하며 우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아낙 역시 명자와는 달리 일제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최대한 따르는 방향으로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 하며 생존을 도모했으나 역시 시대는 그를 내팽겨친다. 마지막으로는 신분제시대 말미에 명자의 몸종으로 지내다 식민지시기에 장사운 있는 남편을 만나 팔자를 고친 듯하지만, 625 전쟁에 다시 재산을 잃는 역경을 겪는 삼월이와 인생의 고비마다 고락을 함께 하기도 한다. 그렇게 명자는 나름 진취적으로 시대에 대응하다 또 실패한 여성의 고통을 목격하며 그들과 다양한 여성들이 겪어가는 고통의 의미망을 만들어간다.


결국 명자는 끝끝내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운동을 하다 아무도 모르게 죽어간다. 주목해야 할 것은 그렇게 고통을 인내하면서도 명자는 끝까지 신념을 지키고자 했고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목숨을 끝까지 부여잡고 최후의 최후까지 싸운 그의 역사적 투쟁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되었다.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그의 고통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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