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단감 1주차 쪽글입니다2018-10-05 15:18:39
작성자
첨부파일단감 쪽글_해러웨이_181005.pdf (66.8KB)

단감쪽글⓵   도나 해러웨이 저, 민경숙 역,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동문선, 2002.

제7장 마르크시즘 사전 속의 ‘젠더’: 한 단어의 성정치학


  도나 해러웨이의 「마르크시즘 사전 속의 ‘젠더’」는 사전에 싣기 위해 개념의 ‘정의’를 내려야 하는 글의 형식과 젠더라는 개념을 ‘탈개념화’하기 위해 싸워 온 페미니즘의 궤적을 탐구하는 내용의 길항이 매우 흥미진진한 긴장을 만들어내는 글이다. 어떤 용어를 사전적으로 정의한다고 하면 우선 그 용어의 개념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결정해준다는 기대를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젠더’라는 개념을 탐구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이다. 따라서 ‘젠더’를 ‘정의’해야 할 때, 우리는 사전적 정의가 지닌 ‘비객관성’, ‘비중립성’, 맥락의존성을 성찰하는 일과 ‘젠더’의 의미를 계보학적으로 검토하고 정리하는 일이 반드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해러웨이는 내용을 서술하기에 앞서 정의를 내리는 주체로서의 자신이 가진 특수성과 편향(20세기 말 미국 백인 여성 학자 페미니스트), 이 정의를 요구하고 배치하는 문서(맑시즘 사전)의 성격, 이 문서가 작성되고 제출되는 사회 및 그것을 읽는 독자들의 특수성을 명확히 밝힌다.

  이러한 출발점에서부터 젠더 개념을 탐구하며 해러웨이는 일단 미국 영어 체계에서는 섹스와 젠더를 구분한다는 점에서부터 시작한다. 타고나는 특성으로서가 아닌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여성을 착취하는 구조 속에서 구성되는 여성성이 있다는 점을 밝히며 ‘젠더’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게일 루빈, 「여성거래」). 그러나 이렇게 섹스/젠더 이항 대립 구도를 도구로 삼아 여성 억압을 분석하고자 할 때,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는 균열 지점이 있다. 1) 자연/문화의 근대적 인식 구도(즉 착취 제도)를 그대로 답습한다는 점 2) 섹스 및 젠더 개념의 ‘본질’을 상정한다는 점(비판을 한다 해도 개념을 해체하지 못하고 강화하면서 기능주의적 남성성/여성성 구축과 결합) 3) 일관적이고 성별화된 주체를 구축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남성 주체의 권력을 해체하지 못함) 4) 섹슈얼리티 이분법으로 연결되며 이성애 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러한 균열을 곳곳에서 대면하면서도 6~80년대 유럽-미국 백인 페미니스트들은 섹스/젠더 이분법의 구도를 해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초두에서 해러웨이가 분명히 밝혔고 또 글의 중간중간에도 꾸준히 지적했듯, 섹스/젠더 구도를 비판하는 페미니스트들 역시 그들이 처한 입장의 편향이 있고, 그에 따라 이 제도 안에 스스로를 능동적으로 자리매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착취당하는 존재(타자 혹은 대상)이지만 비-존재는 아니었던 그들은 착취에 대해 탐구하고 비판할 수는 있었지만,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못하거나 않았고, 이렇게 존재를 상정하며 비-존재를 배제하는 제도가 서구-근대-이성애-남성 중심사회의 근원임은 방치하였다.

  결국 이 작업은 비-존재들, 즉 퀴어와 유색 인종 여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들은 섹스라는 범주 하에서 ‘태어나는 여성’, 젠더라는 범주 하에서 ‘만들어지는 여성’의 여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할 뿐 아니라, 페미니즘의 범주 하에서 ‘억압당하는 여성’ 혹은 ‘해방된 여성’ 개념의 단일성과 일관성에도 적극적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이 글의 말미에서 해러웨이가 정리한 대로 이들이 밝혀내는 ‘타자성’과 ‘차이’야말로 ‘젠더’가 다루는 내용이며, 페미니즘을 주인 이론에 대한 논쟁과 반복된 거부로 규정된 정치로 만드는 지점이다.

  해러웨이의 이 글은 현재 우리에게도 억압받는 여성을 단일하고 공통된 집단으로 상정하는 것은 논의의 필연적 귀결이 아니며, 그렇다면 이것이 누구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고 어떤 사람들을 배제하는 효과를 낳는지 점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