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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4주차 쪽글] 신자유주의가 구성한 새로운 국가와 주체2019-04-19 18: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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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가 구성한 새로운 국가와 주체


단감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2017)는 신자유주의가 개인과 정부를 새롭게 재구성함으로써 민주주의 원칙을 몰아내고 민주주의 기구를 무력화하며 근대 유럽의 민주주의적 상상력마저 짓밟는 핵심 과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다.(p. 31)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그저 경제 양식이 아니라, 존재의 모든 측면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독특한 통치 이성 형식이라는 점을 밝히며, 그리하여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요소, 즉 민주주의의 용어, 정의의 원칙, 정치문화, 시민의 관습, 법 관행은 물론 민주주의적 상상력마저 해체해버리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살펴본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신자유주의 이성이 행정, 직장, 법정, 학교, 문화를 비롯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민주주의 구성요소의 정치적인 특성, 의미, 실행을 경제적인 것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1장 “민주주의 해체하기: 신자유주의에 의한 국가와 주체의 재정립”은 이 책의 중심 내용을 담은 장으로, 신자유주의의 기본 성격과 그것이 개인과 정부에 미치는 핵심적 효과를 간명하게 제시한다.


브라운은 먼저 신자유주의를 80년대부터 삼십여 년에 걸쳐 인간의 모든 영역과 활동을 경제 성장, 경쟁력 제고, 자본 축적 등 특정 경제적 이상에 맞춰 변형시킨 통치 합리성이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이성 체계에서는 모든 행위가 경제적 행위이며 인간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면 직접적으로 금전화할 수 없는 공간조차도 모두 경제적인 관점과 지표에 의해 규정 및 평가된다.(p. 8) 이 이성 체계가 구성하는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돈과 아무 상관이 없는 영역과 활동에까지 경제화를 확산시킨다는 점이 고유한 특징이다. 이렇게 모든 영역과 활동에 시장 모델을 퍼뜨리면서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영혼을 재정립하고 국가를 재구성한다.


신자유주의 이성 체계 속에서는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언제나, 오로지, 어디에서나 철저한 시장 행위자로 규정되기에 금전화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기업가나 투자자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인간,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만들어진다.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기업가화하여 모든 활동과 장소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자신의 (금전적·비금전적) 포트폴리오 가치를 향상시키는 과제에 의해 집중적으로 규정되고 통치되는 인적자본 단위이다.(p. 8) 이는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이전 경제 체제의 인간과 차별화된다. 첫째, 고전 경제 자유주의와 달리 인간은 어디에서나, 오로지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존재한다. 둘째, 신자유주의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교환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인이 아닌 경쟁력 제고와 가치 상승을 추구하는 인적자본이라는 형태를 띤다. 셋째, 그리고 이는 오늘날 특히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인적자본의 구체적인 형태와 활동 공간이 생산 자본이나 기업 자본이 아닌 금융 자본이나 투자 자본과 연동된다.(pp.38~39) 즉, 인적자본으로 재규정된 인간 존재는 이익을 극대화하던 초기의 호모 에코노미쿠스에서 기업의 일원이자 기업 그 자체로서 기업에 적합한 행정 관행이 그대로 적용되는 경제인의 모습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합리성은 모든 영역과 활동으로 퍼져나가는 만큼, 새로운 인간 존재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의 목적과 성격 및 관계를 급진적으로 변화시킨다. 그 중에서 브라운은 정치적 삶의 공간으로서 국가에 주목한다. 신자유주의는 정의라는 민주주의 정치 원칙을 경제 용어로 바꾸고 회사를 모델로 삼아 국가에서 민주 시민과 국민주권의 핵심을 지우고 그저 국민의 관리자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자유와 평등의 의미와 범위가 정치적인 것에서 경제적인 것으로 재정립되면 인간은 정치권력을 그 둘 모두를 방해하는 적으로 취급하게 되는데, 이러면서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자유민주주의 이성과 민주적 상상력은 소거되고 국가는 오직 국가의 경제 성장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해 존재하며 그것을 통해서만 정당화되는 기구가 된다.


인간이 인적자본이 되는 현상과 국가가 경제기구가 되는 현상은 서로 맞물리며 더욱 가속화된다. 먼저 인적자본이 된 인간은 다음의 다섯 가지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며 국가를 탈정치화한다. 첫째, 인간은 인간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회사, 국가, 기타 우리가 속한 후‐국가집합체를 위한 인적자본이 되고, 둘째, 불평등이 자본들 간 소통의 매개체이자 관계의 지배 논리가 되며, 셋째, 모든 것이 자본이기에 노동과 계급이 사라지면서 소외, 착취, 노동자 연대의 분석적 근거도 사라지고, 넷째, 정치 영역 자체가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되면서 공공재 및 공통재와 관련된 시민권의 토대도 완전히 소거되며, 다섯째, 국가 정당성과 국가의 업무가 경제 성장, 글로벌 경쟁력, 높은 신용 등급의 유지에만 집중되면서 자유민주주의적 정의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경제화 형식을 도입한 신자유주의 국가는 인적자본을 개발하고 재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면서 불평등을 심화한다. 그리하여 보편적으로 제공되던 것들을 개인적으로 조달해야만 하는 신자유주의화된 국민은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진다.


이와 같이 웬디 브라운은 신자유주의를 새로운 국가와 주체를 만들어내는 통치성으로 해석하며, 이것이 경제적 체제를 재편할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 걸쳐 아주 정교하고 세련된 상식으로써 제도와 인간을 재구성하는 현실 원칙 구성하여 통치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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