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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6주차 쪽글] 신자유주의 대리보충으로서 희생?2019-05-03 18: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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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차 쪽글] 신자유주의 대리보충으로서 희생?


제물이 된 시민은 제의를 걷어치울 수 있을까? 웬디 브라운은 <민주주의 살해하기>의 결론 부분에서 신자유주의의 대리보충으로서 희생을 다룬다. 그 이전 과정에서 브라운은 신자유주의 통치이성이 가져온 결과로 정치적인 것의 경제화와 이에 상응하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시민(호모 폴리티쿠스)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대체되었다는 점을 상세하기 서술하였다. 그리고 나서 신자유주의의 용어는 아니지만 그 운용에 핵심적인 대리보통 기제를 필요로 한다면서 시민의 희생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브라운의 ‘희생’개념은 자발적 복종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치적 예속화라는 정치적 테제와는 유사하면서도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을 제기한다. 즉 정치적 예속화의 경제화된 버전 혹은 국가화된 버전(그래서 파시즘과 신자유주의의 수렴)을 희생이라는 대리보충으로 설명하려고 하며, 정치적인 것이 전면적으로 경제화된 시대, ‘정치’는 어떤 모양새를 갖고 회귀하는 가를 다루려고 한 시도로 읽힌다. 이는 신 우익의 시대, 국가주의와 애국주의의 신자유주의적 판본을 암시한다. “오늘날 우파와 좌파 모두가 한 목소리로 권하는, 상류 시민도 긴축정책을 수용하면서 ‘희생분담’에 동참한다는 관념은 기존에 전형적인 정치-군사적인 영역에서 나온 애국심의 제스처를 경제적인 영역으로 이식한다...하지만 탈정치화된 경제와 경제화된 정체는 경제가 정치적인 목적이 되는 것을 막지는 않는다.”(289) 이는 국가주의로 동원된 인민, 데모스가 아닌 국민, 혹은 “책임화된 시민”(290)의 도래를 예고한다. 


그리고 이러한 희생분담 이데올로기는 고통분담이나 허리띠 졸라매기와 같은 수준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작용하고 있다.(290) 여기에서 브라운이 본격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희생분담론이 가지는 규범적 이상성(ideal) 혹은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무엇인지를 탐색하면서, 모이쉬 할버탈의 ‘종교적 희생과 도덕-정치적 희생이라는 개념을 탐색한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고전적 희생담론에 대한 전도가 발생하는데, “외부의 희생양을 제물로 삼아 공동체를 보호하는 대신 공동체 내부의 특정요소를 구하기 위해 공동체 전체가 희생하도록 요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296) 라는 질문의 형식을 빌어 공동체 전체가 희생양이 되어 희생의 이상성을 무한대로 추구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현실을 지적한다. 


이렇게 신자유주의의 지배력을 전일적인 것으로 설명하면서 그에 대한 해법은 매우 단순하다. “희생을 찬미하길 거부”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희생제의에 기꺼이 자기자신의 희생을 제물로 바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 제의의 판을 걷어치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브라운의 제안이 용기를 잃지말자는 다짐이 아니라 정치적 제안이 되기 위해서는 대리보충으로서 ‘희생’에 대한 분석이 더 많이 필요할 듯 보인다. 이것이 정서의 차원인지, 혹은 또 다른 애국주의의 억압적 이데올로기적 효과인지, 그리고 이러한 ‘희생’ 담론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등 말이다. 이러한 분석을 결여한 자리 대신 브라운은 문화인류학적 개념을 끌어와 신자유주의적 희생의 차원을 탈맥락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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