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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5주차 쪽글] 신자유주의 거버넌스가 국가와 자본 간의 경계를 지우는 과정과 수단에 대하여 (민주주의살해하기, 제4장)2019-04-26 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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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신자유주의 거버넌스가 국가와 자본 간의 경계를 지우는 과정과 수단에 대하여 _민주주의살해하기_제4장_쪽글.hwp (31.5KB)

민주주의 살해하기, 웬디 브라운(2015), 내인생의책

4쪽글

 

신자유주의 거버넌스가 국가와 자본 간의 경계를 지우는 과정과 수단에 대하여

 

오경진

 

웬디 브라운은 2015년의 저서 <민주주의 살해하기>에서 신자유주의 이성이 정치, 문화, 교육, 법 등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민주주의 구성요소들의 정치적 의미와 특성, 실행을 경제화시키는 현상을 이론적 검토와 사례 적용을 통해 분석한다. 이 글에서는 신자유주의가 통치의 수단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하는 규범적 이성인 정치 합리성의 작동 방식에 관한 설명과 함께, 이를 위한 대표적인 도구와 기술인 거버넌스, 권한의 이임과 책임화, 모범사례(best practices)가 어떻게 사회의 각 영역에서 규범으로 자리 잡는지에 관한 과정을 제시한 제4장의 내용에 주목하고자 한다. 저자는 위에 열거된 신자유주의의 통치 수단과 기술들이 통합적으로 작용했던 미국의 포고령이 이라크의 농업에 끼친 변화에 관한 예시를 통해, 정치와 경제 권력의 효과적인 제휴를 촉진하는 신자유주의 거버넌스의 전형적 작동 방식과 과정을 설명한다.

 

정치 합리성은 특정한 이성의 규범적 체계가 존재의 삶과 활동 전체를 조직하는 동시에 이를 합법적으로 통치하는 방식이다. 푸코는 목적 달성을 위한 효율성의 원칙에 따라 순전한 계산으로 이루어진 도구-합리성이 그 자체로써 통치력으로 변신되는 가능성에 대한 마르쿠제 등의 성찰을 기반으로 하여, 정치 합리성을 주체와 시장, 국가, , 법학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양산하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규범적 이성의 헤게모니 질서라고 개념화한다. 저자는 이러한 푸코의 논의를 바탕으로, 정치 합리성이 통치 실천의 수단이나 도구가 구축되는 밑바탕인 규범적 이성의 영역이라고 설명하며, 신자유주의가 통치하는 정치 합리성으로 변모하는 단적인 수단인 거버넌스의 개념과 그 영향에 주목한다.

 

거버넌스는 신자유주의가 주체들을 지휘하기 위한 환경과 제약, 유인을 제공하는,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행정적 형태이자 정치의 양식을 일컫는다. 거버넌스는 명령과 통제의 위계적 질서에 의한 통치에 대비되는 수평적 네트워크와 파트너십, 협력적, 동반자적이고 자기조직적인 통치의 특징들로 흔히 설명된다. 거버넌스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치 및 경제와 별개의 것으로 재개념화함으로써, 진보적인 민주주의나 정의에 대한 관심사들을 문제의 기술적 형태로, 권리의 문제를 효율의 문제로, 심지어 적법성 문제를 능률의 문제로 대체한다. 거버넌스 개념이 사회 각 영역에서 폭넓게 침투하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공통의 가치관이나 목적에 대한 정치와 갈등, 심의의 과정이 제거된 채, 단순히 참여와 파트너십, 포함등의 절차적 의미로 축소되고 권력과 분리되기에 이르렀으며, 정치를 포함한 사회의 비경제적 영역들은 비즈니스 모델과 매트릭스로 포섭되었다.

 

위와 같이 탈중심화와 민관 파트너십, 반정치를 표상하는 신자유주의 거버넌스는 권한 이임과 책임화의 방식을 통하여, 실제로 재정 위기, 실업, 환경 등과 같이 중앙 권력의 틀에서 다루어져야 할 대규모의 문제들을, 기술적, 재정적, 정치적으로 대처할 수 없고 자치권과 자주권을 행사할 자원이 없는, 작고 약한 단위들에게 떠넘긴다. 책임화는 노동자나 학생, 소비자나 가난한 사람에게 경제적 번영과 생존을 위해 자기-투자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전략들을 파악하고 실행하라는 임무를 부과함으로써, 주체를 신자유주의 질서에 맞게 개조하고 새로운 환경에 순응시킨다. 권력이행과 책임화가 서로 결합되었을 때, 개인은 소모적이고 무방비 상태가 되어 개인의 자립에 대한 실패 혹은 사회의 경제적 번영의 실패에서 오는 비난과 책임을 오롯이 떠안게 된다. 이는 곧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복지 국가논리의 해체나 자유민주주의적인 사회계약의 해체 그 이상을 나타내는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점을 의미한다.

 

1980년대 초 민간 부문에서 탄생하여 공공과 비영리, 비정부 부문으로 확산된 개념인 모범사례(best practice)와 벤치마킹은 표면적인 포괄적 적용가능성과 목적이 아닌 실천의 성격을 갖는 형식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 지금까지 비시장화 되었던 영역과 행위, 가치 그리고 정치적 문제들을 시장의 영역으로 통합, 흡수시킨다. , 다양한 영역의 구체적인 상황이나 다양성의 고려를 배제한 채, 모든 조직의 궁극적 목표는 생산성과 비용 효율성 향상을 통한 시장에서의 경쟁 우의 확보에 있다고 추정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정권에서의 기업과 정부, 지식의 목적과 목표를 경제 지표로 일치시키며, 나아가 신자유주의 이성에 대한 규범적인 도전 혹은 이견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한다.

 

신자유주의 거버넌스가 권한 이임과 책임화, 모범사례 등의 통치 수단을 통해 국가 목적과 적법성을 투자 환경과 경쟁 성장 등 기업의 목표들과 중첩되도록 변화시키는 과정은 2003년 사담 후세인 실각 후 미국이 이라크에 단행한 각종 신자유주의 개혁 조치와 그 결과를 통해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 비옥한 땅에서 수천 년 동안 다양한 품종의 밀을 생산·자급해 왔던 이라크 농부들은 브레커 포고령으로 인해 해외 대기업의 이윤 창출의 도구로 전락하고 이들에게 영구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경제의 탈규제화, 민영화, 경쟁의 구축의 내용을 담은 브래머 포고령의 목적은 이라크의 민주화가 아닌 신자유주의화였다. 포고령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법은 모범사례를 성문화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고, 모범사례는 법/정책 생산의 기반을 제공함과 더불어,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의 제휴를 순화하고 비가시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정치 합리성이 구축한 신자유주의 규범적 이성의 토대 속에서, 공공 분야와 비영리, 사회, 문화, 학교 등 사회의 광범위한 영역에서의 신자유주의 통치 기술과 수단의 확산은 결국 국가의 역할과 목적이 경제 목표로 수렴되고, 국가와 자본 간의 경계는 지워진다. 이는 곧, 국 정치와 사회 공간의 축소를 통해 신자유주의 이성에 대한 도전과 저항의 가능성을 차단하며, 결국 민주주의 시민성을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책에서 사례로 제시된 이라크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이미 그 참혹한 결과를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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