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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신자유주의적 축적과 ‘이주-여성’이라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탄생2019-04-12 15: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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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축적과 ‘이주-여성’이라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탄생


신자유주의는 대체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페데리치는 <혁명의 영점>에서 신자유주의야말로 여성을 대상으로, 혹은 여성을 둘러싼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고, 무엇보다 정치적인 관계들이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가 여성의 부불노동을 포함한 노동일반을 착취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약한 주장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은 기껏해야 여성도! 착취당한다는 것, 혹은 더 많이 착취당한다는 것을 이야기할 뿐이다. 

페데리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여성이라는 것이다. “세계화는 여성들에게 특히 큰 파국을 몰고 온다. 여성의 필요에 무지한 남성중심의 기관들이 세계화를 관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화가 성취하고자 하는 그 목표 자체 때문이다.”(154) 다시말해 페데리치의 주장은 신자유주의는 곧 ‘여성에 대한 전쟁’이며, 여성을 중심으로한 착취체제로의 전환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페데리치의 통찰은 지구화의 맥락에서 이뤄지는 신자유주의가 야기한 전지구적 분업이 남반구와 북반구간, 1세계와 3세계간의 불균등한 분업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성별분업을 주목하며 신국제노동분업의 반여성주의적 성격을 드러낸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생산체제일 뿐만 아니라 재생산의 관점에서, 즉 생산과 재생산의 관점에서 파악할 때만이 드러날 수 있는 것이며, 빈곤의 여성화의 신자유주의적 형태를 본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페데리치의 글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여성은 자본주의 이래 늘 자신의 노동이 가치절하되어 왔으며, 가사노동이라는 부불노동이 자본주의적인 재생산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기존의 유물론적 페미니즘적 주장을 반복하는 것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을 대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이렇게 논지가 전개될 경우, 빈곤의 여성화라는 신자유주의에 특징적인 현상은 그저 통계지표상의 더욱 악화된 숫자의 증가로만 환원된다. 

반면 페데리치는 지구화에 따른 신국제분업에서 ‘여성의 이동’에 주목한다. 이러한 대규모적이고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여성 이동은 역사적으로 전무한 사례이며, 이러한 현상을 중심으로 세계화가 바로 재생산에 대한 공격을 목적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생산영역에서의 축적이 아니라 바로 노동력재생산의 모든 절합지점이 직접적인 축적지점”(179)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복지정책의 축소를 통한 노동자들 개인이 떠안게 되는 재생산비용의 증가,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에 따른 여성들의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이주노동의 정책, 제3세계 저임금의 여성이주노동의 수입(이중적인 가치저하의 과정을 거친 저임금 노동력)을 통한 재생산을 둘러싼 젠더갈등의 봉합, 제3세계 여성들의 공동체, 삶, 가족관계의 붕괴 등 이 모든 지구적 차원의 축적체제는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차원에서 여성의 신체와 삶, 그리고 관계들을 겨냥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지구적 시스템하에 놓인 여성 일반의 삶을 ‘이주-여성’이라는 존재론적 지평을 갖는다. 한쪽에서는 이주-여성의 수탈과 착취에 기반한 삶을, 그리고 다른 면에서는 ‘이주-여성’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로서 착취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갈등적인 상황은 ‘적대’라기 보다는 ‘모순’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1세계의 여성일지라도 지구적인 차원에서의 여성노동의 가치절하에 연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페미니즘 제2물결 이후에 여성주의 운동은 보다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다. 낸시프레이져가 지적하듯이 여성운동 내부의 ‘발전’으로 지금을 파악할 것이냐, 여성운동 내부의 ‘변화’를 중심으로 지금을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각각 다른 분석과 해답이 도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운동 내부의 발전으로 바라본다면 여성의 삶은 나아지고 있다. 영원성의 시간을 도입하다면 더더욱 여성의 삶을 진보적으로 전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부의 변화-대체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에 주목한다면 후퇴냐 진보냐의 기술적 차원이 아니다 보다 복잡한 정치의 문제가 들어오게 된다. 

낸시 프레이져는 이를 페미니즘 제2물결로 촉발된 인정정치의 정체성정치로의 퇴행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수행하면서, 그리고 페데리치는 지구화에 따른 여성노동과 재생산을 둘러싼 근본적인 변화에 주목하면서 각각 오늘날 페미니즘적 정치의 복잡성을 사유할 것을 촉구한다.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은 어떻게 도래하는가. 그 질문을 구성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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