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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5주차 쪽글] 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와 여성의 ‘책임화’2019-04-26 18: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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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와 여성의 ‘책임화’


전주희


웬디 브라운은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행정적 형태로 거버넌스를 지목한다. 거버넌스는 신자유주의와 접합되면서 특정한 행정적인 형태일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주체들을 지휘하기 위한 환경을 구성하며, 주체에 특정한 구조적, 정치적 제약을 가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행위하도록 유인을 제공하는 정치적 양식(161)이 된다. 브라운이 거버넌스를 통해 주목하는 것은 정치와 권력을 민주주의와 분리시켜, 민주주의를 형식화, 절차화시키는 메커니즘이다. 또한 이를 통해 ‘책임화’의 문제가 제기되는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독특한 ‘책임화’는 “인적자본화의 징후”(175)로서 책임의 전가와 책임의 비가시화를 통해 가장 말단에 있는 주체를 국가와 기업에 예속하는 주체로 재정립한다. 이러한 웬디 브라운의 문제설정은 신자유주의하에서 여성의 ‘빈곤화’와 더불어 여성의 ‘책임화’라는 새로운 차원을 해석할 수 있는 이론적 자원을 준다. 

우리는 통상 수직적 위계구조와 지배관계 보다는 수평적 네트워크가 보다 민주주의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권력의 집중 보다는 권력의 분산을 선호한다. 신자유주의하에서 민주주의가 확대되었다고 여기게 되는 기시감은 이러한 통념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되었지만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전세계적인 자본의 위기, 저성장 체제의 문제로 환원한다. 하지만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분리야 말로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일면이다. 웬디브라운은 이러한 현상, 절차적이고 수평적인 민주주의적 형식의 증대가 바로 신자유주의가 정치합리성을 구축하는 원리이며, 이것의 구체적 형태로서 ‘거버넌스’를 분석한다. 

브라운은 “신자유주의는 거버넌스를 동원하고 그것에 집중하여 거버넌스의 중요성을 명확히 표현해서 신자유주의 합리성을 동시대의 존재 전반에 전파하고 정치의 속성과 의미를 탈바꿈”(161)한다고 말한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민관협력’이라는 의미에 포함되어 있듯이 ‘관’과 ‘협력’할 수 있는 ‘민’을 한정한다. 즉 국가 및 통치의 탈중심화를 의미하는 것과 동시에, 주체(민)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 주체를 관리(conducting)한다.(165) 이때 중요한 것은 인민 즉 호모폴리티쿠스가 ‘민간부문’ 혹은 민간파트너로 대체되면서 주체가 “시장과 국가, 시민 사이의 관계들을 재인식하고 권력과 통치의 작동을 재인식하고, 그에 따라 민주주의도 재인식”(166)하게 된다. 결국 거버넌스는 정치를 경영 또는 행정의 영역으로 대체하면서 민주주의를 절차와 협상의 문제로 대체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는 허물어진다. 

브라운의 논의에서 보다 주목해야할 점은 ‘책임화’의 문제이다. 거버넌스의 민주주의의 형식화에 따른 비판은 그동안 꾸준이 비판되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들은 거버넌스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인지, 실행과정상의 부족함인지를 규명하는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반면 브라운은 신자유주의적 거버넌스가 왜 민주주의를 허물게하는지를 ‘책임화’의 문제로 포착한다. “신자유주의 거버넌스에서 그러한 통합과 합의는 결코 책임을 공동의 것으로 돌리지 않는다.”(171) 이것은 단순히 책임의 전가라는 도덕적 차원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책임화’는 구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주체가 개인화되는 것과 동시에 어떻게 국가와 기업에 복종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핵심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이면서 근대적 사회계약론적 주체와는 다른 주체화의 경로를 제시한다. “통합과 개인화, 집산화가 배제되는 협력”(171)이라는 특징은 신자유주의가 ‘전체화하면서 개별화하는’ 주체화에 조응한다. 

이 때 발생하는 것이 권한의 위임으로 가정된 책임의 위임, 즉 ‘책임화’의 문제이다. 이는 주체에게 책임이라는 도덕적 명령으로 전달되며, 동시에 국가와 개인의 수평적인 네트워크의 ‘지하관로’를 통해 권한과 책임의 비가시화(“은폐술”)가 이뤄진다. 

이를 통해 인적자본으로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 여성은 국가와 기업에 복종하고 가족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된다. 브라운은 거버넌스의 장에서 여성의 책임화를 논하지는 않았지만, 브라운을 따라 질문을 추가할 수 있다. “거버넌스는 성별에 따라 어떻게 작동되는가? 책임화는?” 책임화는 거버넌스의 정치적 효과로서 정의될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정책과 공공성의 전반적인 후퇴로부터 야기된 재생산의 ‘책임화’로서도 분석될 필요가 있다. 재생산 영역이야말로 민관협력이라는 프로세스로 재구성된 신자유주의식 복지전략이 강력하게 추진되는 장소이자 여성의 노동력이 가장 값싼 형태로 활용되고 동시에 여성의 돌봄이라는 책임감을 시장화시키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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