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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주차 쪽글] 그 놈의 생물학적인 여성 [+ 개념어정리]2018-10-12 16:5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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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쪽글, 이정욱 

-테레사 드 로레티스(1987), 젠더 테크놀로지를 읽고


그 놈의 생물학적인 여성


 

  언젠가의 명절에 ‘여자다움’이라는 말이 식탁 위에 오른적이 있다. 환갑을 바라보는 어머니 아버지와 20대 초반의 남동생이 있는 자리였다. 나는 여자다운게 어딨냐고 했고, 아버지와 동생은 ‘아무리 그래도 타고 나는 영역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타고 나는 것, 그것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신분에 따라, 인종에 따라 인간이 아니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합리적이었던 이론들에 근거하여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지였다. 그에 따라 실제로 천민은, 흑인은, 인디언은 모두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에는 (여전히 차별은 존재하지만) 그들도 인간이고, 당시에 사회를 지배했던 그 이론들은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는 궤설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에도 타고 나는 영역은 있다고 했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인 ‘여자다움’은 여성의 매력을 구분 짓는 척도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성성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머리 긴 여자가 예쁘다(아버지), 잘 모르겠지만 학교의 여자애들이 모두 비슷하게 행동하고 생각하는 걸 보면 여자다운 게 있긴 한 것 같다(동생)며, 자신이 생각하는 ‘여자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럼 만약 당신이 믿고 있는 합리성이 정말 절대적 진리라면,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타고났기 때문에 평생 차별과 억압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물었더니 요즘 세상에 여자가 무슨 차별을 받느냐고 했다. 끔찍한 대화였다. 아버지가 나름 자기 비판적 의식이 있다고 믿었던 내가 몹시 한심스러웠다. 계속되는 언쟁을 듣다 못 한 어머니가 나섰고, 결국 대화는 ‘서로 사랑합시다’로 끝이 났다.

 

  젠더는 구성되어졌다. 이 명제를 이해하고 받아드리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렇다면 실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구성됨 없이,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가? 정말 그것이 가능한 일인가?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 까지 단 한 번도 자연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구성된 사회 시스템 안에 존재하지 않는, 알려지지 않은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원시 부족을 제외하고, 소위 말하는 지구촌 사회에서 사회를 일구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어진다. 개인이 말하고 생각하는데 사용되는 언어부터 의식주를 포함한 모든 생활양식은 구성된 것이 아닌가? 인간이 원래 그래서 그런게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 서로 관계 맺어온 일이다. 그리고 시대마다 인간이 가진 원래의 내용도 조금씩 변한다. 

  구성된 젠더가 젠더를 재현하고, 재현하는 젠더가 젠더를 구성한다. 무엇이 먼저랄 것 없이 서로 이뤄지는 작용이다. 단지 여성 혹은 남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정체성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국가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부유한지 빈곤한지에 따라 각기 다른 정체성을 갖는다. 보편적인 여자다움은 주로 성적인 매력, 섹스 어필을 이야기할 때만 단결되는데, (실제로 아버지가 매력 있는 여자에 대한 궤변을 늘어놓은 데서 이 논쟁이 시작되었다) 그건 결국 여성은 남성의 섹스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비남성의 존재로서 성적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당연한 것을 의심해보자. 끔찍한 저녁식사 시간을 마치며 남동생에게 몰래 이야기했다. 너 스스로 의심을 해보다가 그럼에도 ‘여자다움’이라는 것이 있다고 정의내린다면 더 할 이야기가 없겠지만, 그래도 "여자는~ 남자는~" 으로 시작되는 말들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젠더가 무엇이고 그것이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왔고 나를 어떻게 재현해내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세상에 원래 그렇고, 그래서 차별받아도 괜찮은 것들이 있다면 너무 불쌍한 세상이 아닐런지. 내가 사는 세상이 그렇게 가난한 세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네가 사는 너의 세상도 그렇게 구성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이야기했고, 우리 남매는 다시 화목해졌다.





개념어 정리


테레사 드 로레티스 - 젠더의 테크놀로지

 

젠더

인간에게 내제된 요소가 아니라 복잡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효과의 집합체다. 

 

성적 차이로 구별짓는 젠더 개념(남/여)에 페미니즘을 가두지 말자. ‘적 차이’ 개념은 한계를 가지기 때문.

  1. 남성 | 여성(비남성) 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밖에 존재하는 섬세한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 여성이라는 큰 틀로(본질) 규정되면 그 안에 세부적인 차이가 인정될 수 없다.
    - 성적 차이로만 젠더를 이해하면 여성은 단지 여성성을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는 어떤 것일 뿐이다.
  2. 주체는 성적 차이로만 구성되지 않고, 언어와 문화적 재현에 걸쳐 구성된다.
    - 성적 차이로만 젠더를 이해하면 그 외에 주체를 구성짓는 다른 문화적, 계급적인 차이는 무시된다.

 

따라서 성적 차이로서 젠더를 이해하고 개념화 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1 젠더는 재현이다

 

젠더는 ‘재현represent’이다. 

단순히 뭔가를 가르키는 표상, 표시으로서의 재현(represent)이 아니라, 다시 설명하는 것, 구성된 관계를 재현(represent)하는 것이 젠더다.

젠더는 한 개인을 설명하는(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가 구성된 관계(사회적 관계, 소속관계, 계급, 위치, 등)를 재현한다.

젠더는 그 구성된 관계의 재현을 통해, 개인을 재현한다.

 

섹스-젠더체계 : 사회문화적 구성물(정체성, 가치, 특권, 친족 등)의 의미를 사회 내 개인에게 지정하는 재현 체계.

젠더가 계급과 관계 속에서 개인을 재현하는 것을 섹스-젠더체계라고 부른다. 우리가 남성이나 여성으로 재현되는 것은 섹스-젠더체계안에 있기 때문이다.

 

 

2 젠더의 재현은 젠더의 구성이다

 

젠더 이데올로기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가 개인을 호명함으로서 주체로 구성한다’고 했다. (이데올로기가 주체성에 관여를 한다.)

이 말을 ‘젠더는 개인을 남성과 여성으로 호명하여 주체로 구성한다’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알튀세르나 마르크스에게 받아드려지지 않는다. 젠더는 사적 영역이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상부구조)라고 불릴 수 없다.

그 때 조운 켈리가, 사회는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으로 구분되어지지 않고, 그 두 개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회적 관계 안에 존재하는 몇 개의 집합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 관계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다르게 위치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여성의 장소’는 타고나는 별도의 영역이 아니라, 사회적 존재 속에 있고, 가부장제 사회가 만든 역사적인 형태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니 젠더는 이데올로기로서 작동한다.

다시 말하면, 섹스-젠더 체계는 사회적 존재에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의 집합체이다.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즘의 주체

개념이 아직 정의내려지지 않은 주체. 젠더에 갇혀 있지만 갇혀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순적인 관계. 그리고 이것은 가능성의 조건 ...?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정의 내리는 방식으로는 뭔가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에는 외부가 없다’고, 이데올로기는 자신의 자취를 감추기 때문에 호명된 주체들은 자신이 이데올로기 내부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만 과학적 인식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주체는 그와 다르게 젠더 이데올로기의 안팎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한, 이데올로기 안과 밖을 알고 있는 주체다. 

 

 

3 젠더는 끊임없이 구성된다(페미니즘 안에서도)

 

젠더가 우리를 여성으로 재현한다.(만든다)

 

성 테크놀로지

성적 억압을 가능케하는 사회적 기술. 성적 억압인 이유; 남성과 여성으로 나뉘어져있지만 실은 여성은 남성에 투사된 것으로, 남성이 없으면 여성도 존재할 수 없다. 여성=비남성.

푸코의 성의 테크놀로지에 18세기 후반, 권력계층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담론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성 담론을 교육학, 의학, 인구학, 경제학 등의 기술을 이용하여 개인과 가족과 제도에 퍼뜨리고 ‘이식’시켰다고 나온다.

 

이 기술과 싸우기 위해 젠더를 부인하지만, 젠더를 부인하는 것은 젠더의 사회적 관계를 부인하여 여성의 성적 억압을 구성한 젠더도 부인하는 것이고, 남성 중심주체 이데올로기 내부에 그대로 남는 것.

 

 

젠더 차이

담론 내에서 남성과 여성에게 다른 방식으로 적용되는 젠더 차별화된 의미들과 위치들이 만들어내는 차이. 두 개 이상일 수 밖에 없다. 젠더 차이는 이성애 관계에서 주로 재생산된다. 이 젠더 차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홀웨이)

 

투여

어떠한 만족, 보상 때문에 스스로 기득권(권력)에 헌신하는 것. 개인이 어떤 담론(이성애, 여성)을 선택할 때는 스스로를 투여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성 테크놀로지를 통해 개인이 자신을 담론에 투여하도록 부추긴다. 

 

 

여성 억압적인 젠더(섹스-젠더체계)는 계속해서 문화적, 정치적으로 구성되어지고 재생산되고 있다.

이런 젠더를 이해하려면 문화, 정치적으로 구성된 자신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끊임없이 수정하고, 그런 과정에서 생성된 양식으로 젠더의 편향성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젠더를 다르게 상상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남성중심적, 남성 섹슈얼리티 담론에서 벗어나야한다.

이성애 담론=‘남성’과 ‘여성’의 강제적 사회관계

 

 

4 젠더의 구성은 젠더의 해체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담론의 외부에서 재현을 파열시킬 수 있는 잠재적 트라우마다 ?

젠더 트라우마 : 페미니즘으로 이 사회의 구조와 백인 남성적 특권이 파괴될지 모른다는 공포

주체를 해체하더라도 성적 차이와 젠더가 여성을 주체로서 구성했고, 억압해왔던 것을 이해하고 해야하는데, 남성 철학자들은 그것을 부정한다. ???

 

스페이스 오프(space-off) : 담론의 주변부, 제도의 틈, 사회적인공간, 모순적인 공간, 젠더가 다르게 구성될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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