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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1주차 쪽글] 흑인여성의 억압이 가지는 억압의 일반화2019-06-07 18:4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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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여성의 억압이 가지는 억압의 일반화


  • 전주희


교차성 페미니즘이 억압의 교차점을 드러내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목적은 중층적 억압의 비가시화를 가시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매우 표면적인 목적이거나 절반의 목적에 불과할 수 있다. 비가시적인 억압은 왜 보이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한 원인을 따져 물을 때, ‘단지 드러내는’ 작업의 표면의 심층에는 억압의 일반적 조건이라는 매우 핵심적인 질문이 놓여져 있다. 

즉 흑인여성의 억압에 주목할 때 우리는 흑인여성의 오래된 억압과 고통에 대해 공감하고 드러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왜 하필 흑인 여성의 억압은 특정시기에 특정형태로 비가시화되거나 과잉규정되는지, 이것을 권력의 작동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과제와 직면해야 한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는 흑인여성의 억압의 이미지들을 분석하면서, 이들의 억압의 이미지가 변형되어 왔으며, 이는 페미니즘의 운동에 대한 백래쉬 혹은 국가차원의 인구조절 과정에서 백인남성 가부장제를 재활성화시켜야할 필요 등의 새대적, 구조적 조건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 유모, 흑인가모장, 복지의 어머니 등등의 억압적 이미지는 노예제로부터 기원하는 흑인억압의 젠더화된 표현들임과 동시에, 각각 2차 세계대전 이후 백인여성과 흑인여성의 노동력 진출, 페미니즘 물결에 대한 백래쉬, 출산 및 인구통제를 위한 젠더화된 패턴, 미국 자본주의의 불평등과 빈곤에 대한 개인책임화의 메커니즘의 각 국면에서 활성화되고 창출된 이미지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억압의 교차성이라는 공간성 뿐만 아니라 억압에 대한 시간성을 도입한다. 그리고 이를통해 억압의 일반화된 조건으로서 ‘흑인여성’의 억압을 재위치시킨다. 

이러한 작업은 제도의 바깥에 존재하는 ‘타자’로서 흑인여성의 고유한 억압과 고통에 주목한다는 것을 넘어 제도와 정치의 한 복판에서 억압이 어떻게 생산되고 작동되는지를 보여준다. 즉 인종차별의 억압은 전체 인종을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성차별주의는 남성이 아닌 모든 성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가장 핵심적이고 약한 그룹이 타겟의 대상이 되며 이를 통해 복지정책을 축소하거나, 섹슈얼리티 통제를 강화하게 된다. 

이제 억압은 특정 집단에 대한 억압이 아니라, 이를 통해 억압한 자들 사이의 억압으로 전화한다. “흑인여성과 백인여성 둘 다 노예제의 지속에 중요했기 때문에 흑인 여성성을 통제하는 지배적 이미지들은 모든 여성에게 영향을 미쳤던 사회 관계를 은폐하는 기능을 했다”(134)는 분석이나 “중산층 백인여성은 흑인여성에게 일을 시키면서 자기들의 아버지, 남편, 아들이 누리는 인종적 계급적 특권을 자기들도 누린다고 생각한다.(136)는 진술을 보라. 

이는 억압당한 자들 내부의 분열, 흑인공동체 내부의 분열, 여성 내부의 분열을 통해 억압의 효율을 증진시킨다. 억압의 효율성은 억압에 대한 자기-억압의 구조를 재생산하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 

“흑인여성이 가장 깊게 느끼는 고통은 서로에게 받은 고통이다.”(167) 이는 억압의 진정한 목적이자 효과이다. 그리고 이것은 동시에 “흑인여성이 공통적으로 부딪히는 관념체계”(164)를 형성한다. 이것이 어떻게 저항의 가능성으로 전화될 수 있을까? 좀더 면밀한 분석이 수행되어야 하겠지만 한가지 중요한 것은 교차성이론의 핵심은 억압의 독특성이 아니라 억압의 일반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을 전제로 억압의 독특성을 분석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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