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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2018-10-05 17:2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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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이론학교 1주차 쪽글 | 20181005 | 전주희


해러웨이, <마르크시즘 사전 속의 ‘젠더’ : 한 단어의 성 정치학>


젠더는 여성이 아니다. 젠더는 “다른 사회적 주체를 위한 장소”(262)를 만들기 위한 정치의 장이다. 


해러웨이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성을 사유하기 위해 도입된 ‘젠더’라는 개념이 발명된 장소를 재조명한다. 그곳은 자연적 ‘성’을 해체하지 않은 채 서구 형이상학 체계의 이분법의 자리이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전지구적으로 노동을 분할하는 체계안에 성과 인종이라는 항이 추가되면서 또한 그러한 분할의 토대가 되는 지점을 포착한다. 이로부터 젠더라는 개념은 기능주의적이고 본질주의적 개념으로 발명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젠더 개념을 다시 해체하고 재구축해야하는 정치의 장으로서 다시 사유해야한다는 점으로 재설정한다. 이를 위해 ‘차이’의 정치가 이야기하는 모든 주체의 해체를 페미니즘이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 모든 주체의 해체를 위해서라도 비가시화된 주체의 등장, 발견을 매개해야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이것은 스필러스의 주장대로 “다른 사회적 주체를 위한 장소”를 주인 주체의 해체의 과정에서 반드시 기입해야 하는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문제로 우리를 이끌게 한다. 이러한 아이러니, ‘여성’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동시에 해체하는 아이러니로 충만한 장소가 오늘날 ‘젠더’를 둘러싼 정치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해러웨이는 페미니즘 진영에서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젠더’ 개념은 2차 대전이후 자유주의 담론이 생물학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인 문제들을 ‘벗겨내기’ 위해 재도입된 사회/문화 이분법의 자유주의적 변용이라고 폭로한다. 

“젠더 정체성 패러다임에서 이룩한 자연/문화 구별에대한 해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직업적이고 지배적인 서양 엘리트들이 전쟁 이전의 생물학적 인종차별주의의 겉칠들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생명과학과 사회과학을 폭넓게 자유주의적으로 재정립하던 작업의 일부로 이루어졌다.”는 것. 이로부터 성을 사회적인 것으로 사유할 수 있게 했으나, 그것은 여전히 성-젠더의 이항범주를 반복하는 한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성이나 자연의 범주는 수동적인 것으로 여전히 남게 되는데, 이는 백인 중심의 인종주의 담론의 보편화, 세계화, 젠더화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여성’을 젠더로 결집하도록 만드는 동시에 단일한 주체로서의 정치적 실천을 촉구하지만, 이 또한 실천을 행하는 주체, 실천 앞에 이미 전제된 주체라는 근대적인 통념을 반복할 뿐이다. 이는 페미니즘이 비판하고 해체해야할 ‘여성’이라는 범주, 물질적인 환상으로서의 ‘여성’이라는 범주는 ‘젠더’로 재생산하는 오류를 범한다. 

따라서 ‘젠더’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의 곁에서, 서구 백인들과 함께 페미니즘적 인종주의 혹은 인종주의와 페미니즘의 결합을 가능하게 한 이론적 토대가 되는 역설을 낳았다. 그러므로 보다 발본적인 서구 인식론적 이항대립의 해체는 오늘날 페미니즘의 관건이 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경험은 결코 중재-없이(im-mediately) 접근할 수 없다.”(254) 이로부터 우리는 어떤 매개가 필요한데, 그것은 현대 페미니즘이 발견한 인종의 문제였다. 이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2항에 하나의 항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인종의 기입은 여성과 남성(그것이 젠더적으로 구성된 것이라 할지라도)의 이항을 해체하며, 억압의 장소이자 저항의 주체로 호명된 여성의 범주를 의문시하고 해체하며 “질문”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분할한 지구적 분업과 폭력의 결과로 당도한 복잡한 ‘인종’의 개념이다. 아프리카 흑인이라는 인종이 아니라 노예로서 팔려온 아메리카의 흑인이라는 문제적 범주의 도입은 인종의 자연적 통념을 동시에 해체한다. 

이로부터 오늘날 현대 정치철학이 내린 포스트모던한 결말, “차이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전용한다. 주인주체의 해체가 곧 모든 정체성의 붕괴는 아니다. “불안정하게 종속된” 주체들이 세계안에 거주하고 있다는 경험의 매개가 반드시 실천적으로 기입되어야 한다. 페미니즘적 경험과 인식, 인종에 대한 재사유는 우리를 ‘주체는 없다’라는 다소 낙관적인 선언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지배적 주체를 해체하기 위해서는 타자화된, 젠더화된 인종적 주체들의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각인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날 페미니즘의 과제는 주체의 해체가 아니라 “다른 주체들”의 출현을 지지하고 그들이 사회안에 거주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때 이 장소는 매우 불안정하며, 때로는 종속적인 장소 안에서 다른 장소를 기입시켜야 하며, 그런 의미에서 매우 모순적이다. 

오늘날 정치의 문제를 사유할 때 페미니즘적 경험, 이론, 실천이라는 ‘매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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