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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주차 쪽글] 젠더 수행성으로서의 우울증, 젠더 불안2018-10-19 11: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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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 글이 너무 어려워서 정리를 해보고자 했는데.. 음... 과연...


있다 뵙겠습니다^^




페미니즘이론학교_시즌1_3주차쪽글_20181019_임당


젠더 수행성으로서의 우울증, 젠더 불안

주디스버틀러, 「우울증적 젠더/거부된 동일시」



  버틀러에 따르면 젠더화, 즉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은 성취의 문제다. 여기서 성취는 이성애적인 성취를 의미한다. “이성애로의 자리매김을 통해 젠더가 성취되고 안정되는 것이며 이성애를 위협하는 것은 젠더 그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라는 문화적인 논리”(357)는 프로이트 역시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곧, 젠더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이성애적 획득은 필수적이라는 의미이다. 젠더 불안이 존재한다면, 그것 역시 이성애적인 규범 바깥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 


  이성애로의 자리매김 과정에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자아의 젠더화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은 정신분석에서의 우울증적 동일시의 매커니즘이다. 이는 프로이트가 몇몇 텍스트에서 전개한 자아 형성과 멜랑콜리의 이론, 오이디푸스콤플렉스와 애착이론 등에 근거한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여아에게는 어머니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동성애적 욕망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여아가 “성공한” 여자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에 대한 성적 애착을 상실하고, 이성애적 욕망에 복무해야만 한다. 전제는 여자 아이가 젠더화 되기 이전에 이미 이성애적 욕망을 가지는 것으로 가정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성애와 동성애의 구별은 강제적이며, 오이디푸스와 근친상간 금기를 통해 산출된다. 


  멜랑콜리는 상실된 애착 대상에 대한 리비도 집중을 애착대상과의 동일시로 대체하는 과정이다. 애착 대상으로부터 거둬들인 것처럼 보이는 리비도 집중의 잔존물이 자아에 남아 그 자아를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우울증적 동일시는 애착 대상과의 합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상실한 대상은 자아 그 자체와 동연”(355)이 되는 것이다. 결국 “대상을 떠나보낸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대상을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위상을 외부적인 것에서 내부적인 것으로 전이시키는 것”(355)이다. 


  멜랑콜리의 매커니즘을 이성애 젠더화에 관한 위의 설명과 연결해 보면, 남성 혹은 여성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동성애 애착의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성애적 애착은 그 즉시 없어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애착은 슬퍼할 수도 없는 상실이자 청산될 수 없는 닫힌 열정으로 자아에 달라붙게 된다. 동성애적인 욕망을 배제시킴으로서 이성애를 달성할 수 있다고 할 때, 동성애적 욕망의 문은 닫아 걸린 채로 이성애적 젠더의 필수 요건으로 장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상실된 대상이지만 자아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며, 동성애적 욕망이 거기에 있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어떠한 효과를 가지는가? 


  버틀러는 젠더를 수행적인 것이라고 명명한다. “어떤 젠더도 행동, 제스처, 혹은 발화에 의해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젠더의 수행성은 젠더에 내적인 본질이 있다는 환상을 사후에 소급적으로 산출한다는 의미“(366)이다. 이는 수행성이 단지 주체의 표현양식과도 관련이 있지만, 어떤 무의식적인 측면을 포함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렇기에 젠더 불안은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이성애를 토대에 둔 문화조건 하에서 한 남자의 양가적인 욕망은 여성성을 거부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거부는 여성적인 욕망이 거기 있음을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의 욕망을 잘 가려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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