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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3주차 쪽글] 세계화와 제국주의의 만남이 쏟아내는 재앙과 아래로부터의 대안2019-04-12 18: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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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2_3주차 쪽글

《혁명의 영점》(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갈무리, 2013) 2부_세계화와 사회적 재생산

《지구화 시대의 정의》(낸시 프레이저 지음, 김원식 옮김, 그린비, 2010) 6장_여성주의 상상력에 대한 지도 그리기(* 낸시 프레이저의 글은 미처 정리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세계화와 제국주의의 만남이 쏟아내는 재앙과 아래로부터의 대안 


《혁명의 영점》을 쓴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여성주의 운동과 반세계화 운동에 헌신해온 저술가이자 교사이며 투사이다. 저자는 이 책 2부를 통틀어 "제3세계"에서 세계화가 어떻게 수행되었는지 설명하고 이것이 재생산노동을 어떤 지위로 끌어내렸으며, 여성들은 그로 인해 어떤 타격을 받게 되었는지 서술한다. 또한 위로부터의 세계화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다루며 새롭게 구성된 경제 질서에서 여성주의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전망한다. 


저자는 첫머리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의 세계에서 신국제분업을 이룬 방식과 야만스러운 세계화 정책이 어떤 인도적 가면을 쓰고 이곳들을 수탈하고 노예화했는지 설명한다. 이때 저자가 든 중요한 사례는 아프리카의 상황과 그에 개입하는 미국/미군의 태도다. 예컨대 유엔은 1988년에 원조를 제공하는 공여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미국/미군은 이를 근거로 1992~1993년에 소말리아에 “희망복구작전”이라는 이름으로 군사개입을 정당화했다. 그 밖에도 모잠비크와 유고슬라비아 등의 촘촘한 사례들은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만남이 만들어낸 현대적인 얼굴, 즉 구조조정이 어떻게 제국주의를 수행하는지 잘 보여준다.


앞서 설명한 참혹한 구조조정 전쟁의 배경 위에서 저자는 세계화가 여성을 다루고자 하는 목표와  그 실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세계화는 여성들에게 특히 큰 파국을 몰고 온다. 여성의 필요에 무지한 남성 중심의 기관들이 세계화를 관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화가 성취하고자 하는 그 목표 자체 때문이다.” 세계화는 노동자들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사회적 재생산 과정에 대한 국가의 투자 중단에 의존하고, 그 폐해는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돌아왔다(그 폐해는 158쪽에 나열된 항목들 참조).


이런 상황에서 국제여성운동의 기본적인 과제는 “제3세계 부채”를 탕감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구조조정으로 황폐해진 공동체를 되돌려놓는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이다. 한편 유엔을 비롯한 대규모 비정부기구들이 세계화의 역사에서 제국주의의 하수인 노릇을 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운동의 대안은 이 기구들을 좀더 여성주의적으로 재편하는 것이 아니라 아르헨티나의 <5월광장 어머니회> 혹은 1973년 칠레 군사쿠데타 이후 이곳 여성들이 주도해 조직한 공동무료급식소 건설 투쟁처럼 반자본주의 투쟁의 흐름을 형성하는 것, 즉 아래로부터의 여성해방을 향해야 한다. 


9장에서 저자는 마르크스주의를 여성주의 관점에서 비평한다. 마르크스는 재생산노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자본주의가 착취하는 노동의 진정한 범위를 잡아내지 못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의 맹점을 만들어냈고 결국 운동에서 여성들이 이탈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재생산노동의 젠더화된 성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처럼 새 세대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라고 일컬어지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급진적인 재고를 촉발시킨 것은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가사노동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반란과 그후 전 세계로 확산된 여성주의 운동이다.


여성주의자들은 자본 축적에서 재생산과 여성의 가사노동이 가지는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마르크스의 범주를 재고하는 한편 자본주의의 발전과 계급투쟁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장을 펼쳤다. 제3세계 비평들이 주도한 이 같은 이론적 전환은 1970년대 초부터 여성주의 이론을 통해 급진화됐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유급계약노동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본질적으로 유급계약노동은 자유가 없는 노동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생산노동의 가치절하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의 저평가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 패러다임의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가사노동자를 배제하는 “총파업” 혹은 “노동 거부”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슬로건을 거부하는 실천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의 한정된 부분, 즉 가족 수당을 확보할 수 있는 조직된 남성 노동자만을 대표하며 굴절된 마르크스주의는 가사노동과 임금노동이라는 이중 굴레에 고통받는 여성 노동자를 대변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선진국 대도시로 이주한 남반구 출신 여성 이민자들이 해당 국가의 재생산노동을 점점 더 많이 책임지고 있다는 것도 중요한 쟁점이다. 재생산노동을 다른 여성의 어깨에 재분배함으로써 상업화하는 것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 이것은 오히려 가사노동의 위기를 확대하고 여성 사회 내의 새로운 불평등을 양산할 뿐이다. 저자는 이런 문제 앞에서 더 이상 임금노동 투쟁 혹은 여성들이 "작업장의 노동계급에 합류"해야 한다는 연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바라본다. 재생산노동이 사적인 문제로 가치절하되는 한 여성들은 언제나 남성보다 적은 권력을 가지고, 극도로 취약한 여러 조건 속에서 자본과 국가에 맞설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여성주의 운동은 재생산의 물질적 조건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고, 자본과 시장 논리 밖에서 재생산노동과 관련된 새로운 협력의 장을 창출해야 한다. 예컨대 토지 탈취, 도시농업, 공동체 차원에서 지원하는 농업, 빈집점거, 다양한 형태의 물물교환, 상호부조, 대안적 보건 창출을 통해 재생산노동을 해방적이고 창의적인 실험의 장을 전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경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지구화 시대의 정의》의 저자 낸시 프레이저는 뉴욕 뉴스쿨 사회과학 대학원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이 책 6장 "여성주의의 상상력에 대한 지도 그리기"를 시작하며 9.11 이후의 상황이 미국 젠더 정치에 가져온 어려움을 언급하면서 "오늘날 젠더 투쟁의 최전방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나 세계사회포럼과 같은 초국적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 장에서 저자의 목표는 여성주의의 제2의 물결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이 과정에서 떠오르는 진단을 통해 앞으로의 전망, 특히 초국적 배경에서 여성주의 정치의 국면을 전망하는 것이다.  


저자가 정리한 여성주의의 제2의 물결의 역사의 세 국면을 옮겨보자면 이렇다. 첫 번째 국면에서 여성주의는 1960년대에 발생한 커다란 동요로부터 출현한 다양한 ‘신사회운동들’과 밀접한 관계였다. 두 번째 국면에서는 정체성정치의 궤도에 진입했고, 세 번째 국면에서는 점차 새롭게 등장하는 초국적 공간에서 초국적 정치로 실행되는 중이다. 


신좌파의 급진주의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은 여성주의의 제2의 물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사회민주주의의 표준적 구조에 저항하는 신사회운동의 일부로 출발했다. 다시 말해, 제2물결은 정치적 관심을 계급 간 분배 문제에만 국한시켰던 경제주의적인 정치적 상상력을 변형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발생했다. 이 국면에서 여성주의자들은 상상력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젖히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중 하나가 ‘사적인 것’을 포함할 수 있도록 정치적인 것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후 신좌파가 쇠락하면서 여성주의가 가진 반경제주의적 통찰들은 의미상의 변화를 겪었고 문화적 차원의 문제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새롭게 출현한 정치적 상상력들에 선택적으로 통합됐다. 문화주의자들의 상상력에 영향받은 여성주의는 문화에 몰두하며 정체성정치의 궤도로 진입했다. 그러나 그때 전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압력 아래 국민국가에 기초한 사회민주주의가 해체되는 수순을 밟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문화에 중심을 둔 인정정치는 성공할 수 없었다. 정치경제학적이고 지정학적인 상황이 발발하는 와중에 정작 이 문제들을 소홀히 다룬 접근은 우파적인 맹목적 애국주의의 부상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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