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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주차 쪽글] 페미니즘의 주체는 탈(脫)젠더 할 수 있는가?2018-10-12 16: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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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드 로레티스 젠더의 테크놀로지

1. 젠더 테크놀로지(The Technology of Gender)을 읽고.......


김혜민

 

페미니즘의 주체는 탈()젠더 할 수 있는가?

 

트위터, 페이스북 등 대중미디어를 통해 자생적으로 페미니즘을 배워온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의 주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은 언제나 핫한 이슈이다. 특히 여성으로 젠더화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남성중심적 가부장 사회의 억압의 산물임으로 그것을 적극적으로 부정하고 폐기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페미니즘의 주체라고 주장하는 집단이 있다. 이들은 주로 트위터와 같은 SNS 상에서 스스로를 래디컬 페미니스트라고 명명하는 이들이다. 레디컬 페미니스트들은 개별 여성들이 여성으로 젠더화된 모든 경험들을 부정함으로서 그 실천이 사회변동을 일으켜 종국에는 탈젠더화된 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테레사 드 로레티스의 젠더 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젠더 바깥에 존재할 수 있는 주체는 없다.

분명한 것은 어떤 사회적 실재도 그 섹스-젠더 체계(남성과 여성이라는 서로 배제적인 범주)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의미하는 바는 재현, 담론, 섹스-젠더 체계에 의해 그 재현, 담론, 섹스-젠더 체계 안에 재현된 공간으로부터 암시는 되지만 보이지는 않는 공간으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페미니즘의 이론의 비평적 부정성과 페미니즘 정치학의 긍정적 긍정성이라는 반대 방향의 두 겹의 긴장감은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역사적 조건인 동시에 그 가능성의 이론적 조건이다. 페미니즘의 주체는 거기서 젠더화된다. 다른곳에서 말이다.”

 

로레티스에 따르면 젠더는 실재 사회 관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이다. 이에 따라 여성을 비롯한 모든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젠더 이데올로기 장에 던져지고 필연적으로 젠더를 통해 주체로 구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젠더 체계 외부에 놓인 인간은 상상할 수 없다. 즉 젠더는 이 사회 속에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에게 가해진 조건이다. 그렇다면 젠더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에 따라 젠더화된 주체는 이데올로기 내부에 복속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로레티스는 이 지점에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과는 다른 관점을 취한다. 로레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튀세르의 주체가 완전히 이데올로기 안에 존재하면서도 자신은 그 외부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달리, 현재 페미니즘 내부의 글쓰기와 토론에서 등장하고 있는 페미니즘의 주체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안팎에 동시에 존재하고, 자신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그 나뉘어짐, 두 겹의 시선을 알고 있는 주체다.”

 

젠더가 이데올로기라면 페미니즘의 주체는 젠더 이데올로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주체는 스스로가 젠더 이데올로기에 공모할 수 있음을 늘 인지하고 의식하는 주체이기에 이데올로기의 안팎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로레티스는 페미니즘의 주체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분명히 주장한다.

 

로레티스의 관점으로 탈코르셋, 4B(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를 일컬음)등과 같은 실천들이 탈젠더화된 실천이라 믿으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탈젠더화된 사회를 꿈꾸는 이들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이같은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이 가지는 유의미한 지점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보지만 그것이 지니는 한계가 있다면 그들은 온갖 테크놀로지들을 통해 삶을 총체적으로 관장하면서 작동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단순화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일련의 운동과 실천을 통해 궁극적으로 자신은 이데올로기의 외부에 있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오히려 페미니즘의 주체라기보다 알튀세르의 주체에 더 적합한 자들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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