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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6주차 서평] 민주주의 살해하기 2019-05-03 1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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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차 서평 민주주의 살해하기

 

웬디브라운의 민주주의 살해하기는 정치, ,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이성이 민주주의 구성요소들을 조용히 해체하고 있는 과정을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의 경제적 합리성은 경제적인 공간과 활동을 넘어서 정치적 삶에도 침투하면서 민주주의의 용어, 정의의 원칙, 정치문화, 시민의 관습, 법 관행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주의적 상상력”(16)을 위협하고 있다. 웬디 브라운은 푸코의 논의를 빌어 신자유주의를 통치 합리성의 형태를 띠는 규범적 이성”(35)으로 해석하면서,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정치 합리성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나타난 국가와 주체, 그리고 그 관계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분석해내고 있다. 신자유주의 합리성의 문법과 용어가 만들어낸 주체의 경제화는 호모 폴리티쿠스를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대체할 뿐 아니라 정치영역을 경제문제로 치환하여 자유민주주의적 정의에 대한 논의를 삭제한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정책이 아닌 시장가치와 시장 지표를 삶의 모든 공간에 적용하는데, 행정적 형태로는 거버넌스라는 양식을 이용하여, 또 법과 교육의 영역에서 정치의 속성과 의미를 탈바꿈한다.

 

정치 영역에서 신자유주의 이성은 거버넌스라는 행정 양식을 이용하여 주체를 지휘하기 위한 환경과 구조적 제약 그리고 유인을 제공한다. 거버넌스에 대한 확정된 정의는 없지만, 공통적으로 네트워크화 되고 통합되고 협력적이고 동반자적이고 산재하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자기 조직적인 통치’(162)로 수렴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조직적인 통치는 하향식 명령과 강제를 수평적 네트워크로 대체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치를 경영 또는 행정의 영역으로 재인식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생활의 축소와 책임화를 야기한다. “책임화는 노동자와 학생, 소비자나 가난한 사람에게 경제적 번영과 생존을 위해 자기-투자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전략들을 파악하고 실행하라는 임무를 부과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책임화는 인적자본화의 징후이다.”(175) 신자유주의 거버넌스는 국가 및 기타 통치 중심의 탈중심화’(165)를 통해 권한을 위임하면서 책임화를 통해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 노력 차원의 문제로 축소시킨다. 놀라운 것은 신자유주의와는 무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적 목적을 가지고 탄생한 거버넌스가 신자유주의 이성의 실천적 전파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며, 민주주의적 생활의 필수요소인 법과 교육 역시 신자유주의와 결합하여 경제적 합리성을 전파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화 과정에서 법과 법적근거는 자본의 권리를 확보하고 경쟁을 구조화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정치적 권리와 시민권 그리고 경제 영역 안에 있는 민주주의 그 자체의 분야를 재구성한다.”(203) 2010년에서 2011년 사이 미국에서 일어난 네 가지 법적 결정 (시티즌 유나이티드 슈퍼팩 허용, AT&T 집단소송 각하, 공공 노조의 단체교섭권 무력화, 월마트 고용차별 집단소송 각하 등)은 신자유화된 법이 어떻게 자본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시민과 노동자, 소비자의 연대를 약화시키는지 보여준다. 특히 기업과 노동조합이 선거에서 후원금을 상한선 없이 쓸 수 있도록 한 시티즌유나이티드 판결은 과거에는 비경제적이었던 영역들을 시장으로 바꾸어 놓는데 크게 기여했다. 흥미로운 점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과정에서 거버넌스가 신자유주의 이성을 앞장서서 전파하는 것처럼, 시티즌유나이티드 사건은 민주주의의 시민의 권리가 기업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합리성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형식의 확장은 신자유주의 합리성과 결합하여 오히려 자유민주주의 핵심요소들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해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통치성 하에서 정치영역의 축소와 민영화는 단순히 시장영역에 머물지 않고, “모든 것과 모든 곳 그리고 특히 그 안에 속한 인간을 자본 투자와 가치 증대라는 관점에서 재규정”(238)하고, 그 결과 고등교육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오랫동안 인문 고등교육은 민주주의의 필수요건들을 충족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정치와 사법을 포함한 모든 공간에 침투하면서 교육기관은 투자자본수익률(ROI)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변모했다. 교육기관은 단순히 학생들을 인적자본으로 키워내는 것 뿐만 아니라, 비용을 낮추고 등록금을 통해 수입을 증대하는 형태로 대학자체가 기업화되고 있기도 하다. 나아가 교육기관의 신자유주의화의 위험성은 좋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제도를 만들 수 있는 인민이 먼저 존재해야만 한다는 역설에 있다.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에 필요한 교육을 받은 인민이 존재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교육에는 인민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신자유주의화에 저항이 포함된다.”(271)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 형식이 확장되는 과정을 역으로 이용하면서 우리의 세계관에 경제적 합리성을 심어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해체한다. 신자유주의는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통치 합리성의 형태를 띠는 규범적 이성”(35)으로 작용하는데, 핵심적인 것은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들을 개인이 책임져야 할 문제로 축소시키는데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열 경쟁사회에서 격차는 분명 사회구조의 결과이지만, 신자유주의 합리성은 문제의 범주를 개인으로 돌려낸다. 노력하지 않은 개인의 문제, 나아가서 노력해도 안되는 것은 개인의 운의 문제로 치환된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이러한 합리성이 당연한것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웬디 브라운의 민주주의 해체하기는 신자유주의 의식에 구멍을 냄으로써 신자유주의 합리성으로 야기된 무력함, 냉소, 슬픔의 문제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분석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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