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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4주차 쪽글] 섹슈얼리티와 페미니즘은 교차할 수 있을까2018-10-26 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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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이 저에게도 작동하고 있는지....

쪽글을 엄청 버벅거리게 되네요!


곧봬요!




페미니즘이론학교_4주차쪽글_20181026_임당



섹슈얼리티와 페미니즘은 교차할 수 있을까




  루빈은 ‘성을 사유하기’를 통해 섹슈얼리티 장치가 생애 속으로 침투해 위계화 시켜 놓은 섹슈얼리티의 정치적 분석를 다룬다. 푸코의 <성의 역사>에 대한 인용은 욕망을 생물학적인 것과 떼어내고, 욕망이 사회적 실천 속에서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방식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욕망이 자연적인 것이 아닐 때, 욕망이 대상과 만나는 방식의 이름인 섹슈얼리티 또한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결국 섹슈얼리티 또한 정치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섹슈얼리티의 위계화는 이상적인 섹슈얼리티와 이상한 섹슈얼리티를 구별해 내기 위해, 종교적 전통에서부터 법적 체계, 문화적 처분, 의학과 심리학까지 결합하여 작동되는 거대한 하나의 장치를 이루어 사람들의 생활 양식 안을 파고든다. 섹슈얼리티 장치는 이성애/정상위/가족 내/출산을 위한 성행위만을 정상의 범주에 두고, “비정상적인” 섹슈얼리티를 하는 집단을 새로운 인종으로 분리하고 탄압하고 낙인을 찍는다. 


  흥미로운 지점은 루빈이 섹슈얼리티 장치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으로 페미니즘에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섹슈얼리티 특유의 자체 이론과 정치는 새로이 개발되어야 한다.” “페미니즘의 개념적 도구들은 젠더 기반의 위계질서”(모두 352)에 대한 분석틀로써 개발되었으나, 섹슈얼리티가 쟁점이 될 때 페미니즘 분석은 섹슈얼리티의 사회적 조직 방식을 포괄할만한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탈>의 1장, ‘여성거래’에서 사용했던 분석틀이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정의에 따르면, ‘섹스/젠더 체계’는 여성이나 성소수자, 개인의 삶에 가해진 억압적 삶의 측면을 정의한다. 이들에게 가해진 “억압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조직하는 특정한 사회관계의 산물”(103)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도구인 것이다. 이는 여성에게 부과되는 억압이 자연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친족 관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이러한 친족 관계를 형성하는 중심에 여성을 거래하는 문화가 있었던 것이다. 여성은 관계를 연결지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 관계에서 이득을 보는 일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미니즘 운동은 “성차별주의 및 젠더를 만들어내는 사회체계의 제거를 목표”(139)로 한다. 


  궁금해지는 것은 섹슈얼리티 체계 비판이 페미니즘 비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5장에서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이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결론 무렵에서야 페미니즘 비판이 포괄할 수 없는 섹슈얼리티의 영역이 있으므로 둘은 다른 도구들이 필요하다고 말할 뿐이다. (선생님이 늦게 알려주신 12장에는 있을까? 연구실 가는 길에 더 읽어보아야 겠다.) 하지만 루빈이 구체적인 방법론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섹슈얼리티 억압의 역사 속에서 페미니즘이 섹슈얼리티 억압에 결합했던 과정은 이러한 판단을 내리기에 충분한 조건이 되는 듯 싶다. 


  페미니즘은 다른 이론과 운동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사회적 삶의 젠더 억압을 조직하는 분석을 해냈다. 이는 기존 이론으로는 볼 수 없었던 부분을 열어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페미니즘이 다른 억압 체계에 가담하거나 그러한 체계를 가리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페미니즘은 판단을 멈추어야 할 것이다. 루빈은 그렇다고 해서 페미니즘을 중단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페미니즘은 섹슈얼리티 비판을 통해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관점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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