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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 기호학적 방법론을 통해 기술과학 사회가 구축해낸 질서를 분석하기 2019-09-27 18: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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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적 방법론을 통해 기술과학 사회가 구축해낸 질서를 분석하기


단감


도나 해러웨이의 <겸손한 목격자>는 기술과학의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어떤 의미를 구성하고 있는지를 탐구하는 책이다. 


그러기 위해 “1부 구문론: 페미니즘과 기술과학의 문법”에서는 이 세계를 구성하는 질서를 통사론의 은유를 통해 살펴본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진리를 구성하는 인식체계가 있으며 그 체계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기호를 통해 드러난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해러웨이는 기술과학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통사구조를 분석하며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연결관계들을 밝혀보고자 하고 있다. 가령 어떤 단어 뒤에 (c)와 TM이 붙는 형식은 재산권으로 동결된 자연적/사회적/기술적 관계의 구문론을 나타낸다.  (c)와 TM이 쓰이는 사회에서 저작권.특허권.상표는 특수하고 불균형적으로 동결된 과정이어서 사회공학적 생산 내에서 어떤 경우에는 허용되지 않는 지위를 다른 어떤 중개행위들과 행위자들에게는 준다. 따라서 (c)와 TM은 다른 어떤 특정한 형태로 세계를 등록하고 물질화하는 지식-권력 과정을 의미한다. 


또한 해러웨이는 비유작업을 통해 기술과학 질서 속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밝혀내고자 한다. 그는 아우얼바하의 말을 인용하며 “비유적 해석은 두 사건/두 사람의 연결관계를 확립하되, 첫 번째 것이 그 자신을 의미할 뿐 아니라 둘째 것도 의미하며, 반면 두 번째 것이 첫 번째 것과 연관되거나 충족시킨다 ... 이들은 둘 다 역사적인 삶인 흘러가는 시냇물 속에 포함된다”라고 설명한다. 즉 수행적 이미지들이자 거주가능한 공간인 비유작업을 통해 그는 기술과학에 있는 모든 물질적-기호적 과정들의 전의(tropes)적 성질을 명확하고 불가피한 것이라고 밝히고, 지식, 실천, 권력이라는 우주의 지도를 그리는 비유들 속에 우리가 살고 있으며 그런 비유들이 우리 속에 깃들어있음을 밝힌다.


2부는 의미론으로 기호와 기호가 의미하는 사물 간의 관계를 연구함을 표방하는데, 특히 흔히 쓰이는 과학용어가 실제로 가지고 있으나 은폐되었던 의미를 밝히면서 그렇게 새로운 의미를 밝혔을 때, 그 용어를 통해 구성되는 세계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용어 및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는 인간의 성격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탐구한다. 2부에서 단연 중요한 용어는 역시 ‘겸손한 목격자’이다. 겸손한 목격자란 겸손함을 가시화하기 위해 그 사람, 즉 실재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설명을 할 수 있는 목격자로서, 눈에 보여서는 안 되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성질(자기 불가시성)이라는 기이한 관습에 의해 구축된 강력한 ‘표시가 없는 범주’의 거주자이다. 자기-불가시성은 겸손이라는 미덕중에서도 구체적으로 근대적 · 유럽적 · 남성적 · 과학적 형태로, 실천히는 사람들에게 인식론적 사회적 권력이라는 화폐를 지불하는 겸손의 형태이다. 해러웨이는 이런 종류의 겸손이야말로 우리가 모더니티가 중시하는 미덕이라고 지적한다. 겸손한 목격자가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의견과 자신의 치우친 구체적 표현을 보태지 않으면서 대상 세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적법하고 공인된 복화술사임을 보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겸손한 목격자에게는 사실들을 확립시킬 수 있는 권력이 부여되고, 이를 통해 그는 증인으로서의 자격을 차지한다. 이제 그의 주관성은 객관성이 되고, 그만이 대상들의 명확성과 순수성을 보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은 개인의 ‘미덕’만으로 신빙성이 획득되지 않는다. 이렇게 실험적 생활방식은 공적, 객관적, 집합적이어야 힘을 키울 수 있고, 이를 위해서는 신빙성있는 공적인 것으로 기호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소재지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래서 실험실은 매우 정교하게 구속된 특이한 “공적인 공간”으로 진화하였고 결국 그곳은 겸손한 목격자 외에는 접근이 제한된 공적 공간이 되었다. 그리하여 ‘실험적 생활공간’에서 배제된 대표적 집단이 바로 여성과 기술노동자이다. 태생적 성차와 상관없이 사회적으로 의존적 지위에 있었던 여성은 ‘실험적 생활공간’에서 물리적으로도, 인식적으로도 존재가 배제되고 있었다. 여성은 겸손한 목격자가 될 수 있는 독립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기술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는 존재했으나 인식론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과학적 주체로서의 ‘겸손한 목격자’가 가진 의미를 따져보고 그 말이 가진 담론적 함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말이 또한 어떤 질서를 만들어냈는지를 살펴보면, 근대과학이 물질적.사회적.문화적 기술을 통해 ‘과학’이라는 지식체계를 만들어내며 거기에 ‘객관성’이라는 초월적 권력을 부여했으며 그 초월적 권력을 구축하는 주체인 ‘겸손한 목격자’로서의 권력을 지식인 남성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과학 언어에 담긴 비유적 의미를 탐구하면, 근대과학을 구성하는 지식 및 실천에 관한 재비유작업 속에, 젠더가 여러 다른 계층화된 관계 체계들과 엉켜 있는 상태로 위험에 처해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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