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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9주차 쪽글] 크리스테바와 푸코의 오류를 이해하기_쏠2018-12-04 21: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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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몸의 정치학

 

크리스테바는 “‘기호계가 기원적 모성의 몸 때문에 생겨난 언어의 한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크리스테바에게 기호계는 바로 문화의 관점에서, 더 정확하게는 다원적 의미와 의미의 비종결성이 지배적인 시적 언어 안에서, 근원적인 리비도의 다원성을 표현한다. 사실 시적 언어는 아버지 법을 파열하고 전복하고 대체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언어의 관점에서 모성적 몸을 회복하는 것이다.”(238p) 그러나 크리스테바의 이론은 그녀가 대체하고자 하는 아버지 법이 갖는 안정성과 재생산에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라캉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으나 그럼에도) 기호계는 변함없이 상징계에 종속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즉 상징계는 결코 도전받지 않는 위계의 관점에서 그 특수성을 드러낸다.”(238-39p) “크리스테바는 모성적 몸이 문화 자체보다 앞서 있는 일련의 의미들을 지닌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크리스테바는 문화라는 개념을 부권적 구조로 보호하고 모성성을 본질적으로 문화 이전의 실제로 보호한다. 모체에 대한 그녀의 자연주의적 설명은 사실상 모성성을 물화하며, 모성성의 문화적 구성과 변이 가능성에 대한 분석을 사전에 배제한다.”(240p)

 

“···크리스테바에게 시와 모성성은 부권적으로 허가된 문화 속의 특권적 실천을 재현한다. 그리고 이 실천은 모성 영역의 특징인 의존성과 이질성을 정신병의 영역 밖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이 본능적 이질성은 아버지 법 안에서, 아버지 법을 통해 재현되어야하기 때문에 근친상간의 금기에 전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상징계에서 가장 취약한 영역으로 남아있어야 한다. 따라서 부권적 법의 위치를 바꾸려던 시적-모성성의 실천은, 구문론적 요건에 복종하고 있어서 언제나 미약하게 그 법에 매여 있다. 따라서 완전한 상징계의 거부는 불가능하며, 크리스테바에게 해방담론이란 전혀 불가능하다.”(249p)

 

“···동성애가 정신병이라는 혐의는 아버지 법과 비록 빈약할지언정 여성적 에고의 토대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데서 온다. 그 에고는 모체와의 분리에 우울증적으로 반응한다. 따라서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여성 동성애는 문화 안에 등장하는 정신병이다.”(247p) “크리스테바는 분명 이성애야말로 친족과 문화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그녀는 레즈비언의 경험을 부권적으로 허가된 법을 수용하는 대신 택할 수 있는 정신병적 대안으로 규정한다.···레즈비언을 문화의 대타자로 투사하고, 레즈비언 발화를 정신병적 단어 소용돌이(whirl-of-words)’라고 특징화하면서, 크리스테바는 레즈비언 섹슈얼리티를 본래 인식 불가능한 것으로 만든다. 법의 이름으로 레즈비언의 경험을 이렇게 전술적으로 추방하고 축소하면서 크리스테바는 부권적-이성애의 특권이라는 궤도 안으로 들어간다. 이 근본적 비일관성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는 아버지 법이야말로 레즈비어니즘을 비합리성의 장소로 생산하는 메커니즘인 셈이다.”(251p)

 

아버지 법의 족쇄에서 해방된 여성의 몸은 여전히 그 법의 다른 체현으로 입증될 수 있다. 전복적 위치를 취하고는 있지만 그 법의 자기 증식과 확산 작용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피억압자의 이름으로 억압자를 해방시키는 것을 피하려면 법의 전체적 복합성과 미묘함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며, 법을 넘어선 진정한 몸이라는 환영으로부터 스스로를 치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전복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법의 관점 내부에서 온 전복일 것이다. 법이 스스로를 거스르는 작용을 하면서 예측하지 못한 자신의 변이태를 양산하며 나타날 가능성을 통해서 말이다. 이때 문화적으로 구성된 몸은 비로소 해방되어, 그 몸의 자연스러운과거나 기원적 쾌락이 아닌, 문화적 가능성이라는 열린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262p)

 

+세미나 이후 변화한 생각을 짧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시적 언어는 상징계의 언어와는 다른 정리되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말이라고 이해했다. 세미나를 하기 전에 시적 언어는 크리스테바에 따르면 여성의 언어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여성의 언어는 언제나 정리되지 않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의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적 언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정리되지 않은 말이기 때문에 상징계의 언어보다 열등한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적 언어는 열등한 게 아니라 더 기원에 가까운 언어를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 의심을 풀 수 있었다.

또 글을 읽으면서 버틀러가 시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어쩌면 그 무시를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 푸코, 에르퀼린, 그리고 성적 불연속성의 정치학

 

  “푸코는 섹스를 기원보다는 하나의 결과로 간주하는 역담론을 끌어온다. 그는 육체적 쾌락의 기원적이고 연속적인 원인이자 의미였던 섹스대신에 담론과 권력이라는 열려 있는 복합적인 역사체계로서의 섹슈얼리티를 제안한다. 그 체계는 권력관계를 감춤으로써 그 관계를 영속화 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섹스라는 잘못된 이름을 생산한다. 권력이 영속화되면서 감춰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권력과 섹스 사이에 외적, 자의적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 이런 사법적 모델의 활용은, 권력과 섹슈얼리티의 관계가 존재론적으로 명료할 뿐 아니라 권력은 항상 오로지 성을 억압하거나 해방하는 작용만 한다고 가정한다. 성은 기본적으로 원형 그대로이고 자기 만족적이며 권력과는 별개라고 말이다. ‘섹스가 이런 식으로 본질화되면 그것은 권력관계나 자신의 역사성으로부터 존재론적으로 면책을 부여받는다. 그 결과 섹슈얼리티 분석은 섹스분석으로 격하되고, 역전되고 거짓된 이같은 인과론 때문에 섹스범주 자체의 역사적 생산에 대한 탐구는 배제당한다. 푸코에 따르면 섹스는 섹슈얼리티의 관점에서 맥락을 다시 설명해야 할 뿐 아니라, 그에 따라 사법 권력도 자신의 생산기제를 감추는 생산 권력이 산출한 하나의 구성물로 다시 생각돼야 한다.”(265p)


  푸코는 “‘이 서로 필연적 연관성이 없는 몸의 기능과 의미를 통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소멸된 결과는, 이분법 안에서 일의적 성으로 강제되었던 인식의 틀을 벗어나는 쾌락의 증식을 낳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이런 다양한 작용, 의미, 기관, 신체적·생리학적 과정들의 행복한 확산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푸코에 따르면, 에르퀼린이 살고 있는 성의 세계는 궁극적 의미로 의미화하지 않는 세계이다. ··· 사실 이것은 쾌락에 부과된 규정을 분명히 초월하는 쾌락이며, 여기서 우리는 성의 역사에서 자신의 분석이 대체하려고 했던 바로 그 해방 담론에 푸코 자신이 감상적으로 몰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푸코의 이러한 해방적 성 정치 모델에 따르면, ‘의 전복은 결국 기원적인 성적 다원성의 해방을 낳으며, 그 다원성이란 근원적 다형성이라는 정신분석학적 가정이나 도구적 문화로 인해 결국 억압당하는 근원적, 창조적, 양성적 에로스라는 마르쿠제의 개념과 그리 다르지 않다.”(267p) “푸코는 담론과 권력의 복합적 상호 작용으로 생산되지 않는 섹스란 없다고 주장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모든 특정한 담론/권력의 교환 결과가 아닌 본래적인 쾌락의 다원성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푸코는 법 앞의섹슈얼리티를 사실상 전제하는 전담론적 리비도의 다양성이라는 비유를 동원하고 있고, 사실상 섹스의 족쇄로부터 해방되기를 기다리는 섹슈얼리티를 불러온다. 다른 한편으로 푸코는, 섹슈얼리티와 권력은 동시 공존하는 것이므로 섹스를 긍정함으로써 권력을 반대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한다.”(268p)


  에르퀼린의 섹슈얼리티에 대해서 푸코가 서술하는 것을 보면, “푸코는 다양한 여성 정체성의 작동보다는 비정체성을 주장하면서, 에르퀼린이 여성 동성애라는 관습적 실천에 참여했다는 주장을 재빨리 거두어들인다. 에르퀼린이 여성 동성애라는 담론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은, 푸코로서는 성의 범주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273p)

  “에르퀼린의 성적 기질은 처음부터 양가성의 하나였으며, 앞서 논의한 대로 그/녀의 섹슈얼리티는 그것을 생산한 양가적 구조를 요약해준다. ··· /녀의 섹슈얼리티는 법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법의 양가적 산물이다. 그 법 안에서 금기라는 개념은 정신분석학적이고 제도적인 영역에 걸쳐 있다.”(283p) “에르퀼린의 쾌락과 욕망은 결코 사법적 법의 부여에 앞서 번성하고 증식하는 목가적 순수가 아니다. /녀는 완전히 남성적 의미화 경제의 바깥에 떨어져 있지도 않다. /녀는 법의 외부에 있지만 이 법은 자신 안에 그 외부를 갖고 있다. 사실 그/녀는 법을 체현한다. 칭호를 부여받은 주체로서가 아니라, 그러한 모반만을 생산하는 법의 기괴한 역량에 행해진 증언으로서의 법을 체현하는 것이다.”(2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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