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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프로포절]여성의 몸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넘어 ‘자율성’으로2019-01-18 10: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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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8.서교연_페미학교_프로포절_문화

 

 

여성의 몸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넘어 자율성으로

-박완서의 장편 서 있는 여자읽기

 

 

이 글은 박완서의 장편소설 서 있는 여자(1985)를 통해 당대 가부장제 사회의 모순과 그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려는 여성의 시도가 지니는 의미를 밝히는 글이다. ‘박완서(1931~2011)는 여성의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를 서사적 주제로 삼는 대표적 작가, 나목(1970)으로 등단한 이래로 소외되어 있었던 여성의 시점으로 일제식민지부터 한국전쟁, 1970년대의 개발독재 사회,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는 삶의 상황을 그려냈다.

서 있는 여자는 대중적인 관심을 끄는 결혼제도를 소재로 하여 한 가족이 겪는 불행을 그리면서 여성의 절망적 상황을 드러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를 짐작해보자면 이 작품이 정통문예지가 아니라 여성잡지에 발표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편 서 있는 여자가 한 시대의 지배적인 젠더 규범과 그것을 둘러싼 갈등이 잘 드러났으며, 동시대의 독자들에게 폭넓게 읽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문학 속에 재현된 젠더에 대해 연구할 때 빼놓아서는 안 될 작품다.

서 있는 여자의 중심인물인 연지는 숏커트에 청바지를 즐겨입고 대학졸업 후에 들어간 잡지사에서 일하는 직장여성이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그녀가 성장하기 까지 속해있던 가족에 대해 벗어던질 허물’, ‘헌집이라 부르면서 부모가 말하는 당대의 이상적인 결혼 규범과 거리를 둘 것을 선언하고, 남편(철민)에게도 두 사람이 절대적으로 남녀가 평등한 결혼생활을 하자고 약속한다. 그녀가 평등한 결혼을 강조하면서 남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때, 어머니의 결혼생활은 부정적 참조점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어머니의 결혼생활이 남 보기에 팔자 좋은여성의 것 같아도 속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머니의 결혼생활에 대해 굴욕적이라고까지 표현한다. 연지가 헌집이라고 말하는 그녀가 나고 자란 집은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가족 유형으로 아름다운 어머니와 학문에 열심인 교수 아버지 부부와 공부 잘하는 아들, 딸로 이루어졌다. 연지는 이러한 집에서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으면서 성장하였다. 사실 그녀가 말하는 새로운 집은 단순히 윗세대로부터 독립된 가정만이 아니라, 그녀가 어머니와 다른 여성이 되고자 하는 열망과도 연결된다. 하지만, 결혼 후에도 직장여성으로서 일하면서 결혼생활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집을 만들고 다른 여성이 되고자 했던 그녀의 시도는 당대의 가치관을 포기할 줄 모르는 남편, 양가 가족들, 그리고 사회(직장생활)와 부딪히고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좌절된다.

부모세대의 결혼에 대한 의식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는 것을 꿈꾸는 연지의 시도는 버틀러 식으로 말하자면, 에 대한 자율성을 선언한 시도로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쉽지 않는데 이는 그녀가 속박이나 굴레로 생각하고 벗어나고자 했던 기존의 전통적인 결혼과 가족에 대한 규범이 작동하는 형식에서 기인한다. 연지가 독자적인 삶을 선언하고 철민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살 것을 선언한 것은 가정내에서의 여성성에 대한 규범, 전통적인 결혼에 대한 규범 등으로 부터의 독립 선언을 말한 것이지만, 그녀가 벗어던지려는 규범들은 일방적인 강요와 복종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이성애적 가족을 이상으로 하는 당대의 젠더 규범은 구성원들 다수의 반복적이고 자발적인 수행으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이상적 규범과 권력이 결합되어 작동하고 있었고, 연지 역시 이러한 규범 밖이 아닌 이 작동 안에서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몸을, 어머니 혹은 그녀가 취재하면서 만난 여권운동가를 인식한다. 연지가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할 때 그녀는 여성에 대한 젠더 규범을 통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여성의 몸은 바로 이러한 규범의 실천 바깥에서 상상될 수 없는 것이기에, 독립된 개별화된 몸을 가지고 있는 듯이 독자적인 길을 말하는 자율의 방식은, 젠더 규범과 권력이 결합되어 작동하는 형식에 대해 간과했다는 점에서 불충분하다. 이 경우 결국 다시 근본주의적인 몸에 대한 관념으로 회귀하거나, 혹은 처음의 자율성에 대한 시도 자체에 대한 회의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단적인 예로 연지는 절대적 평등을 지키기 위해 그녀 스스로 만들었던 역할분담의 약속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흔들리며 다른 사람 앞에서는 여성적아내역할을 연기하고, 또 남편에게서 살림의 냄새가 나는 것에 대해서 매력이 없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이는 젠더 규범의 작동이 하루아침에 각성만으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결혼생활을 하려는 그녀조차 젠더 규범의 작동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소설 안에서 연지가 느끼는 혼돈은 여성적이라는 젠더 규범이라는 것이 단순히 일방적인 강요와 복종으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며 다층적으로 실천되는 형태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을 억압이라 느끼는 주체에게서 조차 그 규범의 작동은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이러한 그녀의 모호한 태도를 남편 철민은 이용하려 들고,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 파기되는데 주요한 빌미 중 하나가 된다.

그렇다면 버틀러식으로 말해 몸의 자율성선언이라고 할 만한 것을 그녀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러한 연지의 사례가 몸에 대한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이 실패한 사례로 기억할지도 모르나, 그렇지 않다. 그녀(연지)를 통해서 몸에 대한 자율성을 말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 경우 자율성을 시도하는 에 대한 이해를 간과했기 때문이지, ‘자율성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버틀러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자율성에 대해 투쟁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자율성을 얻기 위해 투쟁’(41)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다방면에서 자율성을 얻기 위해 투쟁하면서도, 당연히 신체적으로 서로에게 의지하고 신체 면에서 서로에게 나약한 존재들의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우리에게 부과되는 요구에 대해 숙고’(42)해야 한다.

그러니까 연지가 결혼과 연애에 대한 당대의 가치관에 저항한 것을 통해서 배울 것이 있다면 우리가 몸에 대해 자유를 말 할 때 그것이 이 세상에서 조건 지어진 사회적 형식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다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그것이 구성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담론과 규범들의 영향들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취약한 것이며 따라서 자율성을 말할 때에는 이러한 몸의 근원적 취약성primary vulnerability’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연지의 경우 그녀가 자율성을 말하는 것은 연지라는 단독자로서의 개인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해 자율성을 말하지만, 결혼생활을 자기만의 것’, ‘독자적으로 사는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이미 결혼이라는 단어 자체에 엄청나게 많은 사회적 규범이 덧씌워져 있다. 그녀의 경우에는 정신분석이 말하는 전형적인 오이디푸스적 이성애 가족 안에서 자란 여성에게 요구되는 젠더 규범에 대한 의존이 포함되어 있었고 더 크게는 1980년대 한국 사회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규범이 있었고, 이 규범의 수행으로부터 그녀가 자유롭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가 자율성을 말하는 방식에는 그녀가 위치한 자리의 맥락이 깊이 개입되어 있었고, 그녀가 자율성을 말하는 배경에 어머니에 대한 부정이 이미 선행된 것 역시 하나의 예이다. 그녀는 어머니가 조건 지어진 현실에 대해 보지 않고 그것을 어머니 개인의 결함으로만 생각했다. 물론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한 것에는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젠더 규범과 권력의 실천이 결합된 하나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자신이 놓여 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몸에 대한 시각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어머니의 몸을 공포나 혐오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녀 스스로는 어머니의 몸과는 다른 몸을 만들 수 있다고, , 자율적인 존재로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철민과 결혼하고 가정과 일을 양립하면서 그녀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진 모순들을 발견하며, 특히 임신중절 수술을 겪고 철민에게 폭력을 당하면서 통제되지 않는 몸에 대해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그녀에게 큰 시련이 되는데, 자신이 추구했던 부모세대와는 다른 방식의 결혼생활에 대한 계획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혼란에 빠지고,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을 잃는 위기를 겪기도 한다.

이 글은 한 여성이 당대의 결혼제도에 대한 가치관에 도전하는 경험을 분석하면서 버틀러가 말하는 몸의 취약성과 자율성 개념이 여성이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확인하고자 한다. 박완서의 소설은 이상화된 구호가 보지 못하는 현실 사회의 모순과 싸우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의 삶을 핍진하게 드러낸다. 소설 속의 그녀들이 사회와 부딪히고 때로는 자신의 내면의 모순과 대면하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성들에게 유의미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는 먼저 1)이상적 결혼 규범을 둘러싸고 어머니 세대와 딸 세대가 갈등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성의 자율성의 추구의 형식적 특성을 밝힌다. 다음에는 2)독자적 삶을 선언하면서도 불안을 느끼는 연지의 모습을 통해 젠더 규범의 다층성과 몸의 취약성을 밝힌다. 이어서, 3)딸 연지가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살펴보고, 연지가 부정적 예로 삼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오이디푸스적 가족모델의 구조화된 산물이었으며, 그녀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봉합하려는 아버지-남편의 공모 역시 이 가족모델에 기반하고 것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4)버틀러의 자율성에 대한 논의를 정리하면서 어째서 자율성에 대해 말할 때 여성이 아니라 을 통해 그리고 취약성을 바탕으로 한 자율성에 대해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

미리 결론에 대한 생각을 밝히자면, 버틀러에게 은 근본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연이나 물질 그 자체로서의 ’, 본질화된 몸과 거리가 멀다. 버틀러의 은 담론의 영향으로 물질화물질로서의 이다. 따라서 이 은 이미 이 사회의 담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을 통해 자율성을 말한다는 것은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소유관념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 외부(사회)에 의존하고 있는 취약성을 통해서 자율성을 추구한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을 조건으로 하여 자율성을 말할 때만이 이상화된 구호를 넘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취약성을 기반으로 한 을 생각한다면, 생물학적 여성이기 때문에 다 같을 수도 없으며, 혹은 을 통해 하는 구호 역시 맥락에 따라 다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연지라는 여성이 당대의 규범과 충돌하면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기만의 자율을 성취하는 모습은 몸의 취약성을 기반으로 한 자율성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문헌

박완서, 서 있는 여자, 세계사, 2012.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______, 조현준 역, 젠더 허물기, 문학과 지성사, 2015.

게일 루빈, 신혜수 외 역, 여성 거래, 일탈, 현실문화, 2015.

주디스 버틀러, 이은경 역, 우울증적 젠더, 거부된 동일시,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여이연, 2003.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아와 이드, 애도와 멜랑꼴리,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 여성성, 성의 해부학적 차이에 따른 심리적 결과」『프로이트 전집, 열린책들, ##.

 

새가정사, 결혼한 남녀가 어떻게 평등할 수 있나 - 박완서의 서있는 여자, 새가정 401, 1990

김양선, 박완서 소설의 대중성 연구 : 1980년대 여성문제 소설 다시 읽기,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54, 2012.3, 215-234

김은하, 1980년대, 바리케이트 뒤편의 성() 전쟁과 여성해방문학 운동, 상허학회, 상허학보 51, 2017.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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