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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선행연구 요약_문화 2018-12-13 22:3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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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3. 페미니즘 이론학교_선행연구요약_문화

 

우울증적 젠더멜랑꼴리양상 분석

 

이 글은 버틀러의 우울증적 젠더개념을 정리하고, 이 개념을 통해 한국소설에 나타난 우울증적 젠더멜랑꼴리(우울증)’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게일 루빈의 여성거래와 주디스 버틀러의 우울증적 젠더/거부된 동일시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루빈의 여성 거래라는 개념은 사실상 이제까지 인류를 설명하는 친족 제도라는 것이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들만의 관계였다는 점을, 버틀러는 동성애 금기가 우울증적 젠더를 생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 글에서는 우울증적 젠더라는 양상, 그러니까 근친상간 금기에 앞서는 동성애 금기가 생산한 이성애 매트릭스 안에서의 우울증적 젠더가 형성되는 방식을 정리하면서 특히 이 경우 여성이 배제되는 현상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앞서의 논의들을 봤을 때, 인류학도 정신분석도 여성의 사랑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못하는 듯 하다. 여성-여성은 물론이거니와 여성-남성간의 사랑도 없는, 이성애 없는 이성애 매트릭스였다. 따라서 이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울증적 젠더라는 양상이 여성과 만났을 때 어떻게 되느냐이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이론은 여성의 사랑 혹은 여성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미 언제나 늘 있었지만, 포착되지 않았던 우울증적 젠더의 사랑을 포착하는 눈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한국소설에서 우울증적 젠더멜랑꼴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남성들만의 관계

정신분석과 인류학은 젠더형성의 중요한 금기로 근친상간 금기를 든다. 버틀러는 이 근친상간 금기라는 설명방식은 그 이전에 선행하는 동성애 금기를 은폐하면서 이성애를 생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문제적인 것은 이성애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이성’‘도 없다는 것이다.(남성들간의 사랑은 은폐된 방식으로 있다.) 이성애에서 여성은 거래되거나 부정되고 혹은 거부당하며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인류학이 말하는 근친상간 금기여성 거래방식 자체가 여성 혐오를 이미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게일 루빈의 여성거래를 통해 근친상간 금기가 어떻게 여성을 억압하는 설명방식인지를 상기할 수 있다. 레비-스트로스가 친족을 설명하는 방식을 단순화하자면, 하나의 친족 공동체는 다른 가족 공동체의 여성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사회를 만든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누구와 결혼을 해서는 되고 안 되고를 배우는 일이다. 친족 체계에서 여성 교환은 단지 여성을 교환하는 것’(113)이 아니라 사회관계의 구체적 체계들 속에 있는 성적 접근, 가계의 지위, 혈통의 이름과 조상들, 권리, 그리고 사람들-남성들, 여성들, 아이들-을 교환한다.’(114) 이 교환이 문제적인 것은 권리가 불평등하게 귀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들은 언제나 특정한 권리는 남성에게, 그 밖의 다른 권리들은 여성에게 귀속시킨다.’(114)

여성 교환이 문제적인 것은 이 원리가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억압적이라든가 하는 것만이 아니다. 인류학의 설명 방식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이 설명 방식에서 여성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류학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이 방식에서 관계를 맺는 것은 남성들뿐이다. 여성은 그저 오고가는 하나의 증여물에 지나지 않는다.

 

2. ‘동성애 금기

또한 주디스 버틀러의 우울증적 젠더를 통해 여성이 어떤 식으로 거부되는지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버틀러는 프로이트의 애도와 멜랑꼴리, 자아와 이드를 비판적으로 읽으면서 프로이트의 설명에 숨어 있는 이성애에 대한 가정에 대해 지적한다. 프로이트는 최초의 아이들을 양성애기질을 가졌다고 가정하면서 이러한 아이들이 어떻게 이성애적 젠더를 형성하는 가를 성립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져오며, 이 해소를 남자 아이의 거세불안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일련의 서술에는 이미 모순이 있는 것이, 프로이트는 아이들을 양성성을 지녔다고 말하면서도 기질에 따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해소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아마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소의 결과가 아이들마다 다른 것을 염려(?)하여 기질이라는 단어를 덧붙였을지는 모르나, 이는 또 다시 본질주의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프로이트 그 자신의 논의에 대한 모순일 뿐만 아니라, 그가 말하는 양성애가 처음부터 이성애에 대한 전복적 의미가 될 수 없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버틀러는 프로이트의 설명에서 아이들이 콤플렉스의 해소를 근친상간 금기에 대한 위협 때문에, 그러니까 경쟁자인 아버지로부터거세 위협때문이라고 설명되지만, 이 역시 아버지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거세 위협때문이라고 비판한다. 다시 말해, 아이는 여자가 될까봐, ‘동성애로 오인 받을 까봐, 아버지를 동일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 아이에게는 근친상간 금기가 문제가 아니라 동성애 금기가 작동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버틀러의 설명을 따라가 보면, 사실상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된다. 아이는 처음부터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을지도...)

 

3. 거부되는 여성

그런데 여성성 혹은 남성성을 사후적으로 취득하는 방식에 대한 프로이트의 설명에서 우리가 비판적으로 가지고 와야 할 부분이 있어 보인다. 프로이트는 에고가 젠더화 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탄생을 말하는데, 이 젠더화 과정이 사랑의 대상에 대한 상실과 거부를 수반하는 것을 예리하게 짚어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초의 애정의 대상에 대한 상실과 거부의 원인을 동성애 금기가 아니라 근친상간 금기(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설명한 것은 버틀러의 비판을 통해 이미 살펴봤다. 앞서 버틀러의 비판을 요약했듯이, 그는 이 상실과 거부의 원인을 근친상간 금기로 설명했다. 그 보다 앞서 존재하는 동성애 금기에 대해 간과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동성애 금기가 작동한다는 것. ‘욕망의 이성애주의가 전제된 상태라는 것을 은폐했다는 점에서 문제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소에 대해 근친상간 금기보다 앞서는 동성애 금기에 대해 명확하게 조직화하지 못했으면서도, 동성애 금기가 젠더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 젠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는 문화의 논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는데, 버틀러는 이러한 방식 젠더 형성을 우울증의 기제로 설명하는 프로이트의 방식을 가져와서 우울증적 젠더라는 개념을 발전시킨다.

버틀러는 동성애에 대한 금기라는 억압적 명령이 젠더 형성에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바로 우울증적 젠더를 만든다고 지적한다. 여성의 경우를 볼까. 여성은 동성에 대한 애정은 금지되어 대상에 대한 상실에 놓인다. 이 경우 이 여성은 이 상실을 거부하고 자기 안에 내면화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내면화된 대상이 초자아가 되어 나를 비난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동성애 대한 사랑의 상실과 포기의 문제는 욕망의 대상과 목적 모두를 포기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이성애 대한 애정의 상실과 포기의 경우 욕망의 대상만 바꾸면 되지만, 이 경우에는 목적도 부정되는 것이다. ‘억압적인 법이 동성애를 배제하고 또한 이성애를 허가로서’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이성애 정체성은 젠더 우울증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게일 루빈, 신혜수 외 역, 여성 거래, 일탈, 현실문화, 2015.

주디스 버틀러, 이은경 역, 우울증적 젠더, 거부된 동일시,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여이연, 2003.

___________, 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아와 이드, 애도와 멜랑꼴리,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 여성성, 프로이트 전집열린책들, ##.

 

(추후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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