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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 구백구십구 명의 착취를 합리화하는 데에는 단 한 명의 성공으로도 충분하다2019-03-29 14: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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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백구십구 명의 착취를 합리화하는 데에는 단 한 명의 성공으로도 충분하다


단감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2018)는 일본의 신자유주의 개혁이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동시대에 이루어졌던 여성 운동과는 어떤 관계를 맺는지 조목조목 따져보는 책이다. 1장에서 5장까지는 신자유주의 이후 여성의 삶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고용(2~3장), 출산 및 육아(4장), 교육, 결혼, 부모 돌봄(5장)의 차원에서 살펴본다. 매우 넓고 다양한 분야이나 우에노의 분석은 이렇게 요약된다. 신자유주의는 여성이라는 신분을 철폐하고 여성에게도 ‘능력에 따른 동등한 경쟁’의 가능성을 열어주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여성 간의 격차, 그리고 남녀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며 여성들에 대한 착취를 고도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가부장적 차별과 부담이 여전한 상태에서 “남성의 직위(종합직)”에 오를 수 있는 여성은 극소수였고, 그 외 절대다수는 훨씬 더 불안정하고 열악한 파견직으로 내몰릴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황에 취업이 어려워진 남자들은 이 고난이 여성들의 위협 때문이라고 여겼고, 여성들끼리도 성공하지 못한 여성은 그저 개인이 나약하고 무능하여 도태된 것 아니냐는 격차가 깊어졌다. 불황과 혼외 출산 금기의 사회에서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삶은 남녀 공히 정규직이 되어서나 가질 수 있었고, 저임금 불안정 노동을 하며 혼자 사는 여성들은 결국 연금으로 생활이 보장된 부모와 함께 살며 다시 그들의 돌봄을 떠안는 처지에 몰린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90년대 이후는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을 비롯하여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향상되어가던 시기인데 어떻게 이렇게 여성 노동의 주변화와 돌봄 노동의 착취가 고도화될 수 있었던 것인가? 이는 ‘기회균등’이라는 이름으로 아주 소수의 여성만은 성공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극도의 노력 혹은 극히 예외적 지원을 통해 그 모든 가부장적, 성차별적 부담을 뚫고 성공하는 한 사람의 여성을 구실로, 다른 여성들이 겪는 모든 차별과 착취는 그만큼 노력하지 않기를 ‘선택’한 개인의 책임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예외적 한 사람밖에 성공할 수 없는 구조는 ‘어쩔 수 없는 것’,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그래도 많이 동등해진 것’이 된다.


책의 서두에서 ‘지난 40년간 일본 여성의 삶은 나아졌는가?’하는 질문에 우에노는 ‘yes or no’라고 답했다. 이는 한 여성의 삶 중 이런 측면과 저런 측면에 대한 답이었을까, 아니면 이런 여성과 저런 여성에 대한 답이었을까. 만일 후자였다면, ‘yes or no’라는 마치 반반인 듯한 대답을 하는 데 필요한 yes의 여성은 과연 몇 명이었을까. 과연 이것을 ‘yes or no’로 정리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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