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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선행연구 요약 단감2018-12-13 22: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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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주제: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1) 등장인물 간의 관계에 전제되어 있는 이성애 매트릭스를 드러내고 (2) 그것이 재현되는 방식을 분석하여, (3) 이 영화의 중심 갈등인 늙음이 야기하는 정체성 혼란은 젠더화된 현상임을 밝힌다.

 

선행연구 분석

 

다음의 세 가지 선행연구는 모두 늙음을 인간(혹은 예술가)이 보편적으로 직면하는 문제라고 전제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문제를 겪고 있는 인물이 여성이며 그 인물이 다른 인물과 맺는 관계 역시 동일시, 질투 등 젠더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의미를 다루지 않은 채 갈등을 섣불리 인간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한다. 또 이 영화에는 섹슈얼리티적 측면이 완전히 탈각된 형태의 여성 동성애(헬레나와 시그리드)가 등장하여 늙음의 문제에서 젠더의 성격을 삭제하는 역할을 하는데, 선행연구의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헬레나와 시그리드의 관계를 동일시의 대상혹은 두 개로 나눠진 자아로만 다루고 있다.

 

 

한창호, <구름의 낭만주의>, <<씨네21>> 984(2014. 12. 23.), 씨네21 편집부.

 

한창호는 우선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이후 <실스마리아>)한때 시그리드였고, 여전히 시그리드이기를 바라는 베테랑 배우 마리아의 고통스런 자기인식의 과정으로 본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대조되는 듯 보이는 중년 헬레나와 자유로운 청춘 시그리드는 사실 서로 다른 게 아니라 하나의 정체성일 수 있다. 이렇게 헬레나와 시그리드 사이의 모호한 경계에 허구와 현실의 모호한 경계라는 층위가 더해진다. <실스마리아>에는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고 있으며 허구는 느닷없이 현실 속으로 침투해, 현실의 관습화된 스펙터클을 의문에 부친다.” 이렇게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불분명한 중에 마리아가 여전히 청춘 시그리드 역에 집착하며 늙어감에 불안해하는 자신을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는모습 역시 감춰지는 동시에 드러난다. 이렇게 연기를 하는 과정에서 마리아와 비서 발렌틴의 관계 역시 연극의 헬레나와 시그리드처럼 점차 역전되어 간다. 여기서 말로야 스네이크는 갑작스러운 결별과 출발을 예고하는 역할을 한다.

 

 

남다은, <소멸 중인 흘러넘침>, <<씨네21>> 988(2015. 1. 20.), 씨네21 편집부.

 

남다은은 영화에 등장하는 감독의 말을 인용하며 <실스마리아>를 젊음과 늙음의 관계가 배우가 배역을 재현하는 행위를 통해 형성되는 분신의 테마 안에서 어느 여배우의 내적 성장담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로 요약하는 것에 다음과 같이 의문을 표한다. “헬레나에 대한 마리아의 고통과 불만족은 나이든 여배우의 젊음에 대한 우울증적 갈망에 불과한 것인가?” 남다은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말로야 스네이크라는 초시간적이며 고유한 자연현상의 의미에서 찾고자 한다. “90여 년 전의 <말로야의 구름현상>과 지금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말로야의 구름 장면이 변함없이 감동적이라면 그건 그 아름다움과 기괴함이 시간적 연속성 안에서 변화나 보존 같은 말로 설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그것은 재현으로 포괄되지 않는 실재의 영역이며 좀 상투적인 표현이기는 해도 파멸(악천후) 직전의 타오름이다.” 그는 마리아 역시 이렇게 존재의 초시간성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헬레나를 나이든 시그리드로서 재현하는 것에 저항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헬레나에게서 절대적인 차이로서 존재를 증명하는 어떤 분위기를 찾지 못해, 아니 찾아내기 위해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란 신기루, 환영과 싸우며 언제 어딘가 나타날 실재를 영원히 찾아 헤매는 숙명을 짊어진 이들”, “평범한 우리가 그 신기루와 환영을 실재라고 믿으며 도취하고 감동하는 동안, 그들은 자신들의 소멸 중인 육체로, 궁극엔 죽음으로 그 실패와 대면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기에, “젊음에 눈이 먼 어느 나이든 여배우의 뒤늦은 깨달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찌할 도리없이 그 실패를 껴안는 과정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잔인하고 애잔한 영화적 헌사로 봐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김호영 저, <누구도 그냥 늙지 않는다>, <<영화관을 나오면 다시 시작되는 영화가 있다>>, 위고, 2017.

 

김호영은 <실스마리아>늙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의 치열한 투쟁 이야기라고 요약한다. 그는 마리아의 분투의 내용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세 명의 시그리드와의 투쟁으로 규정하며, “첫 번째 시그리드는 젊은 여비서 발렌틴이고, 두 번째 시그리드는 신인 여배우 조앤이며, 세 번째 시그리드는 20년 전 그녀가 연기했던 연극 속의 시그리드 혹은 시그리드 역을 맡았던 젊은 날의 그녀 자신이라고 설명한다.

이 투쟁은 월경의 유희라는 방식으로 행해진다. 이 영화에서는 허구와 실재, (상상)과 현실, 예술과 삶, 나와 타자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영역이 뒤섞이고 교차한다. 이 과정을 거쳐 마리아는 젊음을 떠나보내고 확실하게 늙음의 길로 들어서지만, (중략) 그로부터 잃어버렸던 정신의 자유를 되찾는다.

여기서 말로야 스네이크인생의 과도기에 찾아오는 먹구름 같은 시간을 표상한다. (중략) 홍역 같은 고통과 방황의 시간을 거쳐야 변화무쌍한 감정의 비구름 속을 통과해야 비로소 늙음을 맞이할 수 있다. 영화에서 마리아가 겪었던 시간은 그러므로 말로야 스네이크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거친 마리아는 비로소 여러 프레임을 넘나들 수 있는 월경의 존재’”가 된다.

그리하여 김호영은 이 영화가 비록 자신의 늙음과 쇠퇴를 인정하지 못하는 중년 여배우의 비애라는 진부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회피, 모멸감, 분노, 자기부정 등의 감정을 거쳐 마침내 자신의 늙음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을 그 어느 영화보다 섬세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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