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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Annotation(선행연구 요약), 규식2018-12-13 17: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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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행연구

주디스 버틀러(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문학동네 2008)

② Judith Butler, Contingent Foundations: Feminism and the Question of "Postmodernism”, Feminists theorize the political. (Routledge 1992)

Fiona Webster, The Politics of Sex and Gender: Benhabib and Butler Debate Subjectivity, Hypatia, Vol.15(1), pp.1-22 (2000)

Martha Nussbaum, The Professor of Parody – The hip defeatism of Judith Butler, The New Republic, Vol.220, p.37(1) (1999)

 

+ 참고 예상 자료

- Judith Butler, Bodies that Matter. (Routledge 1993)

- Judith Butler, The psychic life of power.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7)

- Julie Mackenzie, Refiguring Universalism: Martha Nussbaum and Judith Butler – An Uneasy Alliance?, Australian Feminist Studies, Vol.24(61), pp.343-358 (2009)

 

 

1. 벤하비브와 누스바움의 버틀러 비판을 비교 검토

= ③, ④에서 벤하비브와 누스바움의 버틀러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

벤하비브: 버틀러의 수행적 주체, 행위주체성 개념, 사회-결정주의가 자율적, 자기-반성적, 자기-결정적 주체(벤하비브에게는 페미니즘 정치에, ‘the supremacy of heterosexist and dualist positions in the women's movement’에 대한 저항에 필수적인 주체)를 해체하고, (페미니즘적) 저항 정치의 급진성(혹은, 그 기반)을 약화한다.

(+ 웹스터는 1절에서 벤하비브의 버틀러 비판을, 2절에서 그에 대한 버틀러의 반박을 비교-요약 à 결론에서 벤하비브와 버틀러의 논쟁을 정리하면서, ‘버틀러가 개인과 그들이 구성되는 과정 간의 관계, 그 구성 과정에서의 간섭 지점을 규명하는 데 지나치게 적은 주의를 기울였다고 평가하는데, 적절한지 살펴 볼 필요 있음; 개인과 그 개인이 구성되는 관계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할 때, 이는 버틀러에서 (담론 및 문화적 조건들로부터) 독립된 관계항으로서의 개인이 제시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버틀러에서 개인이 구성되는 과정/단계와 개인은 불가분하고, 버틀러가 개인이 구성되는 과정을 (우울증적 젠더 구성, 이성애 매트릭스, 법 등의 개념을 통해) 밝히고 있다면, 웹스터의 평가는 타당한가? ‘구성 과정에서의 간섭 지점의 문제에 있어서도, 권력이 생산하는 주변적 정체성/권력이 전제하는 구성적 외부에 주목하여 매끈한 표면의 이성애, 정체성, 몸을 재의미화하는 것이 버틀러의 전략이라면, 버틀러가 그 간섭 지점의 문제에 무감하다고 할 수 있는가? 웹스터의 ‘Too little attention’이라는 표현이야말로 버틀러에게 지나친것 아닌가?

à 2.에서 『젠더 트러블』에 나타난 버틀러의 전략 제시한 후, 결론/평가에서 언급 가능할 듯)

 

누스바움: 버틀러가 제시하는 저항 정치의 형태인 ‘parodic performance’,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직접적 도움/보호를 제공할 수 없으며, (이는 ‘powerful tenured academic’에게나 가능한) ‘현실과 괴리된 대안일 뿐이다. 또한 ‘Universal normative notions’에 기초한 저항을 거부함으로써, 저항을 개인의 차원으로 격하함과 동시에 위험한 정숙주의(dangerous quietism)’에 매몰된다.

(+ 누스바움에 대한 비판은 2.에서)

 

- 공통점: 버틀러적 전복의 정치적 실효성/실질적 저항 가능성에 대한 비판(정도로 정리 가능)

- 차이점: 벤하비브는 정치적 주체의 정의 및 수립 가능성을 중심으로 버틀러적 전복(정치)을 존재론의 차원에서부터 흔들려 하고, 누스바움은 그것이 실현되는(실현될 것으로 보이는) 양상을 중심으로 버틀러를 비판

 

2. 버틀러에 가해진 이러한 비판들에 대한 반박의 자원을 『젠더 트러블』에서 찾기

= ①만으로도 버틀러의 전복 전략을 꽤 자세히 그려낼 수 있지 않은가? (특히 15, 6, 25, 34, 결론에서 그간 요약했던 내용 참조)

à 버틀러적 전복 전략으로는 실질적 저항’, ‘저항 가능한 주체의 수립이 정말 불가능한가? 그러나 '실질적저항, '저항 가능한 주체의 수립이란 무엇인가? 벤하비브와 누스바움의 저항/정치(및 그 주체)에 대한 주장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저항/정치(및 그 주체)의 상()에 대한 전제가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런 전제가 없어 벤하비브와 누스바움의 비판이 관념론의 혐의는 벗을 수 있다 하더라도, 버틀러가 과연 그들이 비판한 것처럼 저항적인 정체성의 수립/집단 행동 가능성을 (맹목적으로) 부정하는가?

à 『젠더 트러블』에서부터, (‘열린 집단'(p.114)에 대한 서술, 젠더가 구성된다는 주장이 젠더의 허구성이나 인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p.147)라고 밝히는 점 등에서) 버틀러적 정치의 기획은 꽤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ⅰ) 벤하비브-누스바움의 비판은 『젠더 트러블』에서 논의된 수준으로도 충분히 반박될 수 있다.

ⅱ) 그렇지 않다면, 『젠더 트러블』에서 빠진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보충될 수 있는가? ②를 비롯한 이후 저작에서는 등장하는가?

ⅲ) 벤하비브-누스바움이 반박될 수 있다 해도, 앞선 비교-검토 과정에서 『젠더 트러블』이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부분 있다면 어떤 것이며/이후 저작에서는 등장하는가?

 

3.

『젠더 트러블』 평가(③에서 웹스터의 평가 인용)

+ ②에서 보다 구체적/명시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제시 가능

(Contingent Foundations: Feminism and the Question of “Postmodernism”」에서 버틀러는 배제, 전제와 비체/외부 형성을 통해 이뤄져 온 주체, 토대 개념을 비판한다. 그는 구성된 주체가 하나의 고정된 기반이나 결과물 대신 재의미화의 끊임없는 가능성으로 이해돼야 함을 주장하며, 고정된 지시체로부터 주체를 해방시켜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행위주체성 개념 역시 재확립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주체 개념의 폐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 주체, 토대는 정치적 논쟁에 언제나 열려 있는, 열려 있어야만 하는 장으로 이해된다. 버틀러의 이러한 의도는 글 안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정의 시도, 주체의 죽음에 대한 재정의, 나아가 기존의 주체 이해를 넘어선 이후의 주체에 대한 인식 방향성 제시 등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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