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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7주차 쪽글] 이성애적 매트릭스를 생산하는 가부장제 구조의 이론2018-11-16 1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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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는 가부장제를 보편적인 남성 지배의 구조로 사유하려는 페미니즘의 시도를 비판한다. 가부장제가 자신이 역사적 구성물임을 은폐하고 보편화하려는 시도가 자기 물화인 것처럼, 페미니즘에서 가부장제를 보편적인 억압 구조로 간주하려는 태도 역시 또 다른 물화의 사례인 것이다.


 그리하여 버틀러는 가부장제를 구조로 전제하는 사상의 본류인 레비스트로스를 이론적 해체의 대상으로 삼는다. 주지하다시피 레비스트로스의 업적은 인류학의 오래된 수수께끼였던 근친상간의 금지를 개별적인 행위의 타부가 아닌 구조적인 관점에서 설명해냈다는데 있었다. 근친상간의 금지는 다름 아니라 족내혼을 금지하고 족외혼을 생산함으로서, 사회를 구성할 수 있게 만드는 (보편적인) 규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규칙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여성이 마치 선물처럼 한 부족에서 다른 부족으로 교환되어야 한다. , 레비스트로스가 상정하는 사회혹은 사회를 이루는 구조는 여성의 교환으로 이루어지는 남성들 간의 사회다.


 여성의 교환에 의한 족외혼으로 한 부족은 다른 부족과 구별되게 되지만, 즉 부족들 간에 차이가 발생하면서 관계를 맺게 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남성들만의 관계일 뿐이다. 이러한 관계의 구조 속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 여성과 여성의 관계는 사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게 된다. 버틀러가 보기에 레비스트로스의 구조를 근거 짓고 있는 근친상간의 금지는 하나의 환영으로 어머니와 아들 간의 이성애적 근친상간을 전제하고 있고, 이는 자연스러운욕망을 남성의 이성애로 설정하고 있다. 이처럼 레비스트로스의 구조는 이성애적 남성의 욕망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전제할 때야만 설립될 수 있다는 것이 버틀러의 생각이고, 이에 근거하여 가부장제를 보편적인 억압 구조라고 분석하고 있는 일부 페미니즘의 이론은 이성애적 매트릭스 내에서 사고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성애적 남성의 욕망을 전제하는 보편적 구조의 사상가로 라캉이 있다. 라캉은 팔루스를 중심으로 성차의 구조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전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유아는 어머니와 밀착된 이자관계 속에서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 즉 팔루스가 되고자(being) 한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한 것임을, 팔루스는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have) 것임을 알게 되고 팔루스가 되는 것을 포기한다. 이후에는 아버지의 법을 수용하여 자신도 아버지처럼 팔루스를 가지기를 욕망하며 상징계의 질서로 들어간다. 라캉은 이처럼 주체가 되는 과정을 팔루스를 중심으로 설명하면서, 프로이트가 생물학적인 성기(페니스)를 중심으로 설명한 것과 달리 팔루스를 의미의 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기호로 설명한다. 따라서 생물학적으로 남아나 여아나 관계없이 상상계의 단계에서 유아는 팔루스가 되고자 욕망하고, 상징계의 질서를 진입하게 되면서는 팔루스를 가지고자 욕망한다. 여기서 팔루스에 대한 태도, 즉 팔루스가 될 수 없음=거세를 인정할 때 남성=주체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버틀러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팔루스 중심의 구조에서 전제되어 있는 남성의 이성애적 욕망이다. 오이디푸스 단계를 거치면서 상징계에 진입하여 주체가 되는 과정을 구조로서 설명하기 위해서는 팔루스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팔루스는 아무리 추상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명칭 자체에서부터 남성적인 것이고, 무엇보다 유아가 어머니를 향한 근친상간의 욕망이 있다는 것을 가정해야만 한다. 이상하게도 그러한 근친상간의 욕망은 팔루스가 되고자 함을 통해 설명된다. 어째서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 팔루스가 되어야 하는가? 어머니는 왜 팔루스를 욕망한다고 가정되어야 하는가? 게다가 라캉은 남아 여아 상관없이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팔루스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처럼 설명한다. 여아는 왜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자 팔루스가 되기를 욕망해야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정신분석학은 답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버틀러가 보기에 프로이트-라캉의 정신분석학은 남성의 이성애적 욕망을 자연스러운 욕망 혹은 욕망의 매트릭스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레비스트로스든 라캉이든 보편적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서 근친상간의 금지를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금지는 사회 혹은 욕망의 구조를 생산하는데, 이는 모두 이성애적 성격을 띠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적 구조는 이성애적 욕망이 전제되어야 설명될 수 있다. 구조주의 인류학과 정신분석학이 제시하는 가부장제 구조라는 이성애적 매트릭스는 이성애적 욕망이 가장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전제되어야지 만이 설명될 수 있는 순환론적인 설명에 빠지고 있다는 것이 버틀러의 주장이다. , 보편적 구조로서의 가부장제 이론은 이성애적 매트릭스를 생산하고 있는 수행적 실천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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