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6주차 쪽글] 젠더 트러블 1장 요약문(수정 중)2018-11-09 17:48:24
작성자

여유 부리다가 글로서 완성을 하진 못 했습니다ㅠㅠㅠ

이번 주 내로 수정/완성해서 다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1장에서 버틀러는 기존 페미니즘 담론 내에서 쓰이던 섹스, 젠더, 욕망, 주체, 구성 등의 용어에 전제된 실체성들과 그들이 일으킬 배제의 가능성에 주목하면서, 페미니즘의 용어와 전략의 재전유를 통한 전복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섹스-젠더-욕망 사이에 이뤄지는 이분법 하의 체계적 연속성은 하나의 지배 담론으로서 주체를 생산하며, 주체들의 수행적 행위(담론적 실천)에 의해 그 내적 안정성이 다져진다. 『젠더 트러블』 1부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을 비롯한 본질에 대한 (우연적인 것일 수 밖에 없는) 가정들이 페미니즘 내에서조차 무비판적으로/무의식적으로 수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버틀러의 해체 시도가 최소한, 어떤 하나의 고정적인 도달 가능점을 그 목표로 삼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작업은 보부아르, 이리가레, 위티그, 푸코 등에 대한 비판적 검토를 거쳐 정교화되며, 본 요약문은 1장의 각 절을 거치며 버틀러의 전복(혹은, 전복 전략)이 구체화되는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버틀러는 정체성 정치의 배타적 관행에 의해 상정된 (페미니즘 주체로서의) ‘여성들이라는 범주의 안정성, 일관성이 초래하는 페미니즘의 이론적-정치적 전유 가능성의 필연적 한계를 비판하며 페미니즘 주체 논의에 계보학적 사유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 법 앞의 주체(근본주의적 주체 가정부터 비판 - 푸코 인용)

- 재현은 주체가 승인하는 범위까지 이뤄질 수 있다 à 어떤 재현이어야 하는가?

- 주체의 정체성이 정치성의 토대가 되어선 안 됨 = 배제에 대한 반대 ß 은폐된 배제 ß (페미니즘)계보학으로 밝혀내기

 

생물학은 운명이다에 반박하기 위해 도입된 섹스-젠더 사이의 전적인 단절은 이분법적 섹스 범주를 탈자연화하는 데, 그리고 그것이 강제적 질서로서의 이분법적 젠더 체계의 결과임을, 즉 섹스 역시 문화적 구성물임을 이해하는 데 실패했다.

- ‘단절’: 페미니즘 주체로서의 여성 범주 흔드는 데에는 어느 정도 성공 그러나 비구성적 섹스라는 또다른 본질주의 기각에는 실패

à 젠더 공식 어떻게 더 급진화해서 형이상학적 전제, -담론적 전제 전복할 수 있을 것인가?

 

분석-인식-상상 가능 영역을 경계 짓는 이분법적 지배 담론 하의 자유의지/결정주의와 결합한 젠더에 대한 구성적해석이 상정하는 전()문화적-생물학적 사실로서의 몸에 대한 이해는, 몸을 언제나 하나의 문화적 구성물로서 이해하는 방식이 제공할 수 있는 제공하는 담론의 기능적 경계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을 은폐한다. 

- 문화 이전의 실존으로서의 몸 이해 비판

- 담론: 상상의 한계, 경험의 한계 지음 à 이 분석 가능케 하는 처치 곤란한 장소(논쟁적 장소)

- 보부아르(주로 비판), 이리가레 등장(다음 절에서 비판) à 둘 모두 젠더 불균형’ 상황에서 주체/젠더 문제 도정 시도(버틀러는완전 구성주의)

à 보부아르에 이리가레 논의(남근로고스중심주의)의 특성 없진 않음

à 보부아르는 특히 정신-몸의 분리 유지하며 그 구분을 명시하는 데 실패 + 이리가레의 여성이 소거되는 체계는 아예 다름

 

그러나 남성적 의미화 경제로 제시되는 이리가레의 일의적 젠더억압기제는, 문화 역사적 맥락의 차이를 삭제하는 식민화 제스처로서의 그 한계가 보부아르의 이분법만큼이나 분명하며, 이러한 차원에서 반토대주의적 (연합)정치의 필요성은 더욱 강하게 요청된다.

- 보부아르적 이분법, 이리가레적 일원화 모두 한계 있음

- ‘여성을 비롯한 정치 주체 범주 설정에 있어서의 통일성 전제 = 차이의 배제

à 반토대주의 정치 필요, 언제나 열려 있는 논쟁적 장으로서의 정체성요구됨(매끈한 표면으로서의 규범성 탈피)

- 페미니즘 비평은 자체의 전체화 경향에 대해서도 자기 비판적이어야 한다.

 

  나아가 젠더 정체성과 성의 범주, 욕망에 관한 경험에 그리고 그들 간 관계의 일관성, 연속성이 전제하는 실체/본질의 형이상학은, 그 규범성이 금지-생산하는 특정한 정체성들에 의해 그 한계와 목적이 폭로되며, 자신이 불변적인 것으로 제시하던 정체성이 실상 규범 하의 행위에 의해 수행적으로 구성되는 것임을 내보이게 된다.

- 내적 일관성-통일성이 정체성이 아니다. 정체성은 규범적 이상이고, 일관성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는 인식 가능성의 규범들이다.

- 섹스-젠더-욕망 간의 일관적/연속적 관계와 불연속성/비일관성의 유령들을 금지하는 법이 불연속성/비일관성 오히려 생산

à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의 지속과 증식이 인식 가능성의 영역의 한계와 규제적 목적 드러내고, 젠더 무질서라는 경쟁적-전복적 matrix 펼칠 기회 제공

à 그럼 인식 가능성의 모태는? 섹스-젠더-욕망 간의 일관성은 어떻게 생산-재생산되나? = 이리가레/푸코/위티그 참조

à 권력의 장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섹스의 범주가 이해될 수 있는 서로 다른 길들을 제시(남근로고스 중심 담론 & 섹슈얼리티의 규제적 경제체제 & 강제적 이성애)

à 이들의 핵심: 그러한 패권적 언어 안에서 섹스가 하나의 본질로, 형이상학적 자기 동일성 갖는 존재로 이해됨을 주장

(ó 위티그의 인지 주체적 위상 가진 사람의 가정에서 보이는 실체의 형이상학 주로 비판됨)

 

회복 가능한 것으로서 섹슈얼리티를 이해하는 언어, 권력, 법에 관한 이론들이 현행적인 권력관계의 장 바깥을 지향함으로써 내포하는 해방 전략으로서의 한계는, 법에 의한 주체 생산에 있어 위치 변경과 간섭, 재의미화에 열린 반복 가능성을 전복 전략으로 전유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 위티그에게 언어는 중립적, 그 적용이 여성 혐오적 ó 이리가레에게 언어는 남성 의미화 경제에 속함, 다른 언어/경제가 필요

à 위티그의 초점은 언어-권력에 있고 이를 실천에 의한 변화에 열린 제도로 간주 

but 섹슈얼리티 자체 문제시 + 쾌락 경제 대안 요구 & 정신분석학을 뒤집으려했으나 해체하려던 규범화 모델에 종속되는 한계 보임

- ‘유물론적 입장과 라캉의 입장 차이는 회복 가능한 섹슈얼리티가 무의식의 양식 안에서 법의 '이전혹은 외부에 존재하는지, 아니면 성기기 이후의 섹슈얼리티로서 법의 이후에 존재하는지에 관한 규범화 논쟁에서 나타난다.' – 다형적 도착성의 비유는 둘 다 있음

ó 푸코: 섹슈얼리티는 권력과 동일한 시간에 펼쳐진다 - 주체는 금기를 통해 생산됨

+ 법도 사법&생산 기능 보이지만, 권력관계의 모태에서 발생하는 섹슈얼리티는 법 자체의 복사, 남성 동일시 경제의 획일적 반복 이상으로 이해될 수 있음 

à 섹슈얼리티가 권력관계 안에서 구성되면 외부/이전은 허구이다.

ó 이러한 섹슈얼리티 구성 방식의 인정이 권력관계의 무비판적 복제, 재생산을 의미하진 않음, 대신 주체의 위치 변경’/재의미화를 통한 법의 반복 가능성 제시됨

(Inevitable subversive operation of 'identification’ à 남근 중심주의의 가능성 재상연, 재분배 + 주체 개념이 어떻게 forcibly foreclosed 되어 왔는지 볼 수 있음)

 
댓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