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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1주차 쪽글_앙코마우스들을 과학기술의 ‘겸손한 목격자’로 불러들일 것2019-09-27 11: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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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차 쪽글_다나 J. 해러웨이, 민경숙 역, 1부 구문론: 페미니즘과 기술과학의 문법, 겸손한 목격자(1997), 갈무리, 2007

 

앙코마우스들을 과학기술의 겸손한 목격자로 불러들일 것

 

페미니즘 기술철학은 거짓 객관성 대신에 세계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생산해야 하는데, 해러웨이 식으로 말하면 상황적 지식이다. 1부는 마지 피어시의 소설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소설 속 사이보그가 깨달았듯 읽고 쓰는 능력은 필수적으로, ‘기술생명권력의 크로노토프 안에서 생사의 가능성을 결정한다. ‘읽고 쓰는 능력을 해러웨이식으로 말하면 상황적 지식이다. ‘상황적 지식은 어떻게 생산되는가. 18세기 보일의 실험실의 겸손한 목격자가 내세우는 객관성거짓 객관성이었다. 사이보그의 자매들을 과학기술의 겸손한 목격자의 자리에 불러들일 때에 가능하다.

현실 파악은 현실적인 것(the actual)과 비유적인 것(the figural)를 물질-기호적 세계의 구성 요소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40) 작업이다. 여기서 이 책에서 거듭 등장하는 비유’(형상, figure)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해러웨이는 아우어바흐의 단테 분석에 등장한 비유’(형상, figure)라는 개념을 가져온다. 아우어바흐는 단테의 목적이 애초에 기독교의 종말론적 시간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었으나, ‘비유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오히려 세속의 시간이 생생하게 그려진 것에 주목하고 이를 비유적 리얼리즘이라 하였다. 기독교식 비유 리얼리즘의 주요한 특징은 기원의 스토리와 목적론적 종말인데, 유전학과 정보과학의 담론들에서도 기독교식 비유 리얼리즘이 역시 넘쳐나는 것에 해러웨이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해러웨이는 기독교식 비유 리얼리즘비유라는 형식만 가져온다. ‘겸손한 목격자를 제2의 천년 말 그리고 신세계질서라는 성스럽고 세속적인 시간대에 위치시킨다.’(54) ‘겸손한 목격자는 앙코 마우스, 여성인간© 등이다. 이들은 사이보그적 존재로 유전기술의 산물로 실재하는 것이면서, 또 동시에 기술과학에 대한 비유이다. 이들을 겸손한 목격자의 자리에 놓는 것은 거짓 객관성을 말하는 이전 시대의 겸손한 목격자를 교체하고, 다른 이야기, 다른 읽고 쓰는 능력, 상황적 지식을 얻기 위함이다. 이 사이보그는 일종의 돌연변이이고 괴물로 잡종적인 환경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앞서 비판한 기독교식 비유 리얼리즘의 성격인 기원의 스토리나 목적론적 종말이 없다. ‘겸손한 목격자들이 읽고 쓰는 능력을 얻는 것, 그것이 곧 상황적 지식이다. 기이하고 불순한 겸손한 목격자들의 위치에서 출발하는 상황적 지식은 반영하지 않고 회절diffraction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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