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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시즌3_[1주차 쪽글]_‘겸손한 목격자’ 허물기_쏠2019-09-27 0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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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목격자허물기

 

겸손한_목격자@2_천년. 여성인간_앙코마우스를 만나다.쪽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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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나 해러웨이는 1<겸손한_목격자@_2_천년>에서 겸손한 목격자라는 개념을 통해 과학지식의 남성적 정체성은 마치 본질인 것처럼 보이게 구성된 것임을 밝혀내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다시 재배열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겸손한 목격자라는 용어는 과학 뿐 아니라 과학연구 설화 속에 있는 비유”(73)로 해러웨이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실재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설명을 할 수 있는 목격자는 눈에 보여서는 안 되며, 자신을 보지 못하는 성질(이후부터 자기-불가시성이라고 지칭하겠다-역주)이라는 기이한 관습에 의해 구축된 강력한 표시가 없는 범주의 거주자이어야 한다.”(76) , 실재를 속속들이 규명해 낼 수 있는 겸손한 목격자는 문화나 사회의 영역 속에서 어떤 특정한 대상으로 낙인찍히지 않을 수 있고 존재 자체가 곧 사회 질서나 규범과 동일한 사람인 것이다.

 

  과학지식이 원래부터 남성적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해러웨이는 공기펌프 실험을 예로 들면서 실험적 생활방식이 특별히 젠더화된 이유는 계층이나 가계/피부색이 무엇이었든 간에 여성이 때때로 존재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부재했다는 사실 때문이다.”(85)라고 말한다. 과학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배제됨으로서 과학지식이 젠더화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젠더는 언제나 관계이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존재들의 범주이거나 사람이 소유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젠더는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적합한 것이 아니다. 젠더는 국가, 세대, 계층, 가계, 피부색, 그리고 이외의 다른 많은 것에 의해 차별되고 다양하게 구성된 남성과 여성의 범주들(그리고 다양하게 배열된 전의들) 사이의 관계이다.(85)” 젠더는 다양한 범주들의 관계. 그렇기 때문에 실험적 생활방식과 모든 사회적 담론들, 여성에 대한 배제가 한 데 모여 관계를 맺으면서 과학지식이 남성적으로 젠더화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젠더화된 과학지식은 마치 원래부터 남성적이었던 것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남성은 지식을 공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겸손한 목격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다른 사람들의 공적인 불가시성이라는 희생을 치러야 어떤 사람들의 자기-불가시성이 생겨난다.”(104)는 것이다. 자기-불가시성이란 겸손한 목격자가 가질 수 있는 온전하게 객관적일 수 있는 성질이다. 이런 완전한 객관성은 타인의 희생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타인의 희생은 실험적 생활방식에서 배제되면서 과학지식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게 된 여성들이 과학이라는 공적인 장에서 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희생된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이 세계에 관한 사실이 되어버린 것에 의해 망라된다.””(104) 아무 의심 없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에 그냥 자연스럽게 포함된다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그런 망라들로 인해 젠더”,“인종”, “계층의 문법구조와, 세계가 무()기준에 의해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명명하기 위해 어색하게 시도된 이들과 유사한 범주들의 문법 구조가 밝혀진다고 생각한다.”(104) 희생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지배적인 사회에 포섭되는 것을 통해 이 사회가 구성되는 방식이 밝혀진다는 것이다. 해러웨이는 나는 무엇이 이 세계에 관한 사실로 간주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기술들이 기술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다시 재배열할 수 있도록 재건되어, 살만한 세상들을 다루는 문제들이 최고의 과학의 심장부에 가시적으로 놓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105)고 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겸손한 목격자는 타인이 있어야만 존재 할 수 있다. 이 관계를 분석하면서 보이지 않던 곳에 있던 자들 또한 보이는 곳에 위치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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