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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장애여성, 교차하는 억압의 자리에서 저항의 교차성을 선언하다 2019-07-19 12: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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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불구의 정치_교차성으로_읽기.pdf (197.8KB)

서교연페미니즘이론학교시즌02. 신자유주의와 교차성 페미니즘 텀페이퍼

 

장애여성, 교차하는 억압의 자리에서 저항의 교차성을 선언하다

: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에 대한 교차성 페미니즘적 독해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1.탈규범적-비장성적 존재들의 정치

 

처음 그 선언문의 제목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쉽사리 잊혀 지지 않았다.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라니! 장애여성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20주년을 맞이하여 공표한 선언에서 자신들을 불구로 명명한다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었다. 그 동안 장애인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왔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장애인에 대한 인식론적 폭력에 대한 저항은 매우 중요한 활동이었다. 분명 불구장애자’, ‘애자’, ‘병신등과 같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계열의 언어이다. 장애인운동은 이러한 멸칭들에 치열하게 저항하여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스스로의 운동을 불구의 정치로 규정하는 그 선언문의 제목이 어찌 충격적이 않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충격은 단지 그간 장애인운동이 격렬하게 반대해왔던 장애인에 대한 멸칭을 장애여성공감이 20주년 선언문의 제목으로 삼았다는 것에 있지만은 않았다. 내게 이 선언문의 제목이 놀라왔던 또 다른 이유,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가장 강한 이유는 바로 이 선언문이 제시한 불구라는 단어에서 그 동안 장애인운동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한계를 돌파하는 힘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 한계란 장애인 역시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다는 보편적 평등 주장이 비장애인의 신체와 정신을 규범적인 것으로 승인하는 뜻하지 않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장애를 비장애라는 용어로 표현되는 정상성을 척도(measure)로 이해하며 여전히 세계를 비장애라는 규범적 신체와 정신을 기준으로 인식하게 하는 효과를 일으킨다.

그런데 시대와 불화하는 불구의 정치(이하 불구의 정치)불구라는 멸칭을 사용함과 동시에 그 불구라는 위치에서의 정치를 말하고 있다. 이렇게 불구라는 단어를 장애여성운동의 경험 속에서 전용하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규범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않기에 비정상적 존재이며, 그래서 차별과 배제와 같은 억압의 대상이 되는 것이 타당함을 입증하는 낙인인 불구라는 말을 자신들의 정치를 규정하는 말로 적극적으로 전용하면서 장애여성공감은 그 규범과 정상성 자체를 불안정화한다. 불구는 정상성의 척도에 입각해서 보자면 비정상적이고 무능력하여 쓸모없고 열등한 이들의 이름이지만, 자신의 존엄성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치적 주체의 이름이라고 불구의 정치는 되받아 말하고 있는 것(speaking back)이다.

불구의 정치는 다층적 의미에서 불구인 장애여성이라는 자리에서 이러한 정치를 모색한다. 즉 장애인이나 여성이라는 각각의 정체성으로 분리될 수 없는 혼성적 위치로부터 인권의 정치를 탐구한다. 이는 장애여성만이 아니라 비정상적이고 탈규범적 존재자로 규정되어 불구화된 또 다른 소수자들과의 만남, 연대와 긴장이 공존하는 만남 속에서 모색되는 정치이다.

그래서 불구의 정치는 그러한 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억압이 결코 하나의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다고 파악한다. 단지 비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의 배제,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 이성애자에 의한 비이성애자의 차별로 불구의 존재들에 대한 억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구의 존재들이 경험하는 억압은 다층적 억압이 교차하며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불구의 정치는 이 다차원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 단지 특정한 소수자 집단의 투쟁을 통해서 가능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억압이 교차적인만큼 저항 역시 다층적 소수자 집단의 투쟁이 교차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 교차 속에서 소수자 집단의 정체성 역시 지속적으로 변화된다고 불구의 정치는 말한다.

이 글은 장애여성인권운동의 현장에서 생산된 급진적 실천 담론으로부터 내가 받은 충격의 의미를 흑인 페미니즘 사상/교차성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공부를 통해 얻어낸 인식틀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해명하고자 하는 작업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미국 흑인여성의 경험과 투쟁이라는 정치적 맥락에서 벼려진 교차성 페미니즘이 한국이라는 또 다른 맥락으로 어떻게 번역되어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기 위함이다. 또한 이 작업은 장애여성공감이라는 장애여성운동단체의 활동이라는 한국사회의 구체적 페미니스트 장애인운동의 활동과 사고가 어떻게 교차성 페미니즘을 풍부화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시도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앞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또한 인권운동의 전선에 함께하는 연구자로 나의 이론적 작업과 운동에 한계로 작용해온 몰성적 관점을 장애여성공감의 선언문과 교차성 페미니스님을 통해 극복하기 위한 자구적 시도의 출발점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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