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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7주차 쪽글] 주체 생산과 국가 정당화 2019-05-10 19: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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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브라운은 <관용>을 통해 관용담론이 오히려 불평등, 배제, 갈등을 탈정치화하면서 주체생산과 국가 정당성 결핍을 보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4. 관용: 통치성 보편주의의 쇠퇴, 국가 정당성, 국가 폭력>을 통해 근대적 통치성에 대한 푸코의 분석과 한계를 지적하며, 관용이라는 통치성이 주체 생산, 조직, 동원 뿐 아니라, 이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문제까지 포함하는 것”(144)임을 분석한다. 정치적 담론으로서의 관용은 차이에 대한 적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종교적 규범들을 부과하는 행위이다. 관용은 그 대상을 주변적 대상으로 표지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자리잡게 함으로써, “위협받는 전체를 지속”(62) 시키면서 위협에 대한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동성결혼 찬반 캠페인과 9/11 이후의 이슬람 신도에 대한 부시 정부의 담론은 관용의 통치성이 집단적 실천들을 규율하면서 동시에 국가를 재정당화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관용의 핵심적 기능은 자유주의적 평등의 형식주의로 해결되지 않는 사회·문화·종교적 차이들을 관리하는데 적용되며, 관용담론 하에서 정체성과 차이를 둘러싼 논의들은 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근대 초기 관용이 국가 및 종교의 통치 위기에 대한 대응이었다면, 오늘날 확장된 관용의 범위는, 그것이 이제 국가와 종교의 문제를 넘어 국가와 종족, 국가와 문화, 국가와 섹슈얼리티 등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74) 나아가 관용담론은 강력한 국지적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이러한 제한된 정체성에 기반하여 진리를 개인적인 차원으로 한정하고, 특정한 믿음을 진리와 등치시킨다. 이렇게 국지적 정체성에 기반한 시민사회는 자연스럽게 주체를 생산·조직·동원 하면서 동시에 그 과정을 정당화한다.

 

주체의 생산과 국가의 정당성이라는 기능은 상반된 목적을 가진 것으로 보여지지만, 실제 실천에 있어 이 둘은 상호결합하여 작동한다. “국가에 의한 관용담론의 확산은 부분적으로는 국가 정당성의 결핍상황, 특히 국가가 보편적 재현을 체현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볼 수 있다.”(144) 배제된 집단으로 인해 국가 헤게모니에 위협이 발생하는 순간 관용담론은 오히려 이 집단의 지배를 재생산하는 국가의 역할을 다시 은폐하고, 갈등의 방향을 전치시킨다. 9/11 이후의 국가 안보 위기상황에서 이슬람 신도들에 대한 부시정권의 담론은 시민적 관용에 대한 공개적 호소와 동시에 국가적 차원의 위협에 대한 적극적인 폭력행위를 시작했다. 이러한 국가의 상반된 행위는 주체 생산과 국가 정당화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관용의 결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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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부족으로 다 쓰지 못했네요. 추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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