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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7주차 쪽글] 권력행위로서의 관용_쏠2019-05-10 19: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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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주차 쪽글

권력행위로서의 관용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2장에서 웬디브라운은 관용을 권력행위로 보고 이것의 의미, 대상, 작동방식대해 설명한다. 그러면서 웬디브라운은 관용이 언제나 특정한 관계 속에 놓인 담론적 실천이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66p)는 것을 강조한다. 관용은 시대마다 달라지는 관계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는 하나의 통치 양식이었다는 것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 형태가 달라지는 하나의 통치이성인 관용에 대해 더 깊이 파악하기 위해 웬디브라운은 관용의 의미에 대한 고찰은 관용의 통치성의 계보학에 의해 보충되어야만”(66p)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 각 시대별로 통치 양식이 달라지면서 관용의 의미 또한 어떻게 변해 왔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관용은 비록 원치 않는 것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지만, 이 고통을 참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혹은 어떻게 어느 정도 참아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어떤 사회적 위치를 함축하고 있다.”(59p) 그러므로 관용은 피지배자의 위치에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용을 실천하는 것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에 대해 결정권이 있는 사람 즉, 권력이 있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관용 속에는 이타성에 대한 적대와 규범화가 동시에 존재한다.”(60p) 고통을 감내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자가 자신이 보기에 불쾌하거나 혐오스러운 타자를 내부로 편입시키는 포용력이 갖춰져 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관용은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는 차이를 포용하는 덕이라기보다는, 그러한 차이로 재현된 위협을 관리하는 방식이다.”(62p)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는 대상의 타자성을 그대로 유지시키면서 계속 관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용의 대상은, 전체 내부로 편입된 후에도 여전히 표지된 채 남아 있다.”(63p) 이 대상의 위협적이고 이질적인 특성이 계속 유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용은 특정한 대상을 편입을 통해 관리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이들에게 외부인의 자리를, 더 나아가 정치체나 사회체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의 자리를 할당하는 행위”(63p)인 것이다. 관용을 통해 타자로 전체에 편입된 이들은 위협받는 전체와 동화 혹은 흡수 될 수 없고 끊임없이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관용에는 두 종류의 경계선 긋기와 하나의 자격 부여 행의가 포함되어 있다. 관용은 먼저 어떤 문제가 관용이 필요한 문제인가라는 유관성의 범위와 이 범위 내에서 어떠한 부분까지 수용이 가능한가라는 도덕적 범위를 구획한다. 자격 부여 행위는 이 경계선 내부에서 어떠한 행위가 관용되기 위한 조건들을 구체화하는 것이다.”(65p) 어떠한 문제를 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선을 긋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선을 긋는 것이다. 그런 다음 포용할 수 있는 정도 안에서 어떤 행위들이 용인 가능한지 조건을 만들어 낸다. 관용은 이런 방식을 통해 끊임없이 통치의 조건과 대상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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